[기자의 눈] 정부의 반복되는 부동산 PF '정신승리'

유충현 기자 / 2024-03-22 17:28:27
만기연장 해줘도 PF 연체율 증가…정부는 "안정적 상황" 정신승리만
'시장원리 따른 부실정리' 실천 미룬 정부…고름짜기 고통은 국민 몫

원래 많았는데 더 늘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잔액(지난해 말 기준)이 135조6000억 원이다. 

 

실제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이보다 크다. 행정안전부 소관이라 집계에서 빠진 지난해 새마을금고 PF대출 잔액이 16조 원 수준이었다. 저축은행의 토지담보대출(약 10조 원)과 PF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유동화증권 발행잔액(약 42조 1000억 원)도 더해야 한다. 전부 합치면 어림잡아 200조 원이다.

 

대출 규모 자체보다 무서운 것이 연체율이다. 2.7%로 은행대출 평균 연체율(0.38%)의 7배다. 그나마 시중은행의 부동산PF 대출 연체율이 꽤 낮아(0.35%) 평균을 끌어내린 것이 이 정도다.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6.94%, 여신전문사는 4.65%다. 증권사는 연체율이 13.73%에 달한다. 빌려준 돈 7분의 1정도는 제때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정부가 PF를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과 보증을 동원했다. 대주단에게는 만기연장을 종용했다. 일부 브릿지론 사업장에는 듣도보도 못한 '이자후불제' 특혜까지 제공했다. 그런데도 PF대출 잔액과 연체율이 계속 오른다.

 

위험한 상황인데 금융당국은 태평해 보인다. "연체율이 소폭 상승했지만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사상 최악이었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숫자를 제시했다. '그때보다는 낮으니 괜찮다'고 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사례를 비교대상으로 삼아도 될까.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며 외환위기 때 지표를 비교대상으로 들이미는 격이다. 

 

일종의 정신승리에 가깝다. 평년에 비하면 지금 수치로도 충분히 무섭다.

 

정부는 또 미분양이 많지 않으니 안심하라고 한다. 금융위기 당시 미분양이 16만6000호였다. 지난 1월 기준 미분양이 6만3755호니까 얼핏 생각하면 그럴듯 하다. 하지만 미분양 통계는 건설사의 신고자료를 합산해 집계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시기에 과소집계되는 경향이 있다. 

 

과거와 달리 정부는 건설사의 미분양 주택을 아직 사들이지 않는다. 만약 공공매입 계획을 발표한다면 미분양 신고가 급증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때때로 잠재적인 부실 지표는 한번에 치솟기도 한다. 2009년 말 여신전문사의 PF 대출 연체율이 그랬다. 2009년 3.4%에 불과했던 것이 이듬해 곧장 17.7%로 점프했다. 1년새 무려 14.3%포인트 오른 것이다. 

 

가까운 예시로는 얼마전 자본잠식에 빠진 태영건설 사례도 있다. 재무제표상 문제가 없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완전자본잠식으로 바뀌었다. PF 우발채무를 주채무로 반영하면서 생긴 일이다. 이런 일이 또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정부의 'PF 정신승리'는 처음이 아니다. 작년 9월 상반기 부동산 PF대출 연체율이 2.17%로 나오자 "연체율 상승 추세가 둔화되고 있다"며 낙관했다. 당시에도 연체율의 상승폭을 볼 것이 아니라 '2%를 넘겼다'는 점에 주목하고 경각심을 가질 시점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게다가 잠깐 낮아졌던 연체율 상승폭은 다시 확대됐다. '상승폭 둔화'를 낙관의 근거로 들었다면 반대로 상승폭 확대됐을 때 '위기 신호'를 줬어야 이치에 맞는 것 아닌가. 

 

뭘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정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작년 3월 금융위는 "부실 사업장은 시장 원리에 따른 매각·청산을 통해 새로운 사업 추진주체를 확보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천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금리인하가 떨어지길 기다리기라도 하듯 만기 연장으로만 버텼다. 

 

정부는 지난해 말에야 겨우 부실사업장에 대한 '옥석가리기'를 시작했다. 정신승리를 하면서 부실 사업장 정리를 차일피일 미룬 사이 PF 대출 규모와 연체율은 계속 증가했다. 정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고통은 국민 모두의 몫이다.

 

▲ 유충현 경제산업부 기자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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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현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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