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이끈 국무령이 3등급? 독립유공자 서훈 체계의 아이러니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6-02-12 16:48:55
이상룡·이회영 등 20인 서훈 상향 요구 '만인소'
이승만 집권기엔 초대 대통령·부통령에게만 서훈
1960년대부터 대규모 서훈…졸속 시행 등 논란
분단, 친일 미청산 관련 문제는 민주화 후 개선
기존 서훈 등급 격상과 관련된 일부 문제는 여전

'제8차 영남만인소 집행위원회'(이하 위원회)가 11일 경북 안동에서 출발해 서울 광화문까지 상소를 받들어 올리는 행사를 열었다. 안동 유림이 중심이 돼 발의한 이 위원회의 명칭은 조선 후기에 1만 명 안팎의 유생이 연명해 모두 7번 올린 집단 상소인 만인소에서 유래했다.

독립유공자 20인에 대한 서훈 재평가, 등급 상향 등을 요구하기 위해 연 행사다. 독립유공자 서훈에는 건국훈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이 있다. 그중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장(1등급), 대통령장(2등급), 독립장(3등급), 애국장(4등급), 애족장(5등급)의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

위원회가 재평가를 요구한 20명은 다음과 같다. 김동삼, 김상옥, 나석주, 박은식, 신석구, 이동녕, 이동휘, 이봉창, 이상설(이상 2등급), 이상룡, 이회영, 김교헌, 나철, 박상진, 서일, 송진우, 최재형, 홍진(이상 3등급), 이육사(4등급), 윤희순(5등급). 

 

▲ 이상룡은 일제 강점기에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을 위해 싸운 항일 투사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다. [국무령이상룡기념사업회 홈페이지 갈무리]

 

이들 대다수가 독립운동사에서 비중 있게 거론되는 인물이다. 예컨대 이상룡은 일제 강점기에 이회영, 김동삼 등과 함께 만주에서 독립운동 기지 건설과 독립군 양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대통령제에서 국무령제로 바뀐 1925년에는 초대 국무령으로서 임정을 이끌었다. 위원회 쪽에서는 그러한 이상룡이 임정 법통 계승을 헌법에 명시한 대한민국에서 3등급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독립유공자 서훈 등급 관련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계속 나왔다. 광복 직후부터 이 사안을 순리대로 다루지 않으면서 쌓인 문제 중 일부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립유공자 서훈은 광복 4년 후인 1949년 시작됐다. 그해 이승만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에게 '1등 건국공로훈장'(지금의 1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해당, 이하 훈장 명칭은 현재 기준으로 표기)이 수여됐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과 부통령에게만 훈장을 안긴 이상한 모양새였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승만 정권 12년 동안 이것이 유일한 한국인 대상 독립유공자 서훈이었다. 독립에 기여했다고 공식 인정된 한국인은 초대 정부통령뿐인 상태가 내내 유지됐다.

외국인에 대한 서훈은 이뤄졌다. 그중 한 명이 장제스다. 중국 국민당 정부 수반으로서 한국 독립운동에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1953년 장제스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수여했다. 그러나 정작 장제스와 손잡고 독립을 위해 싸운 임정 주석 김구에 대한 서훈은 없었다.

한국인 서훈은 1960년대 박정희 집권기부터 대규모로 진행됐다. 광복 후 17년이 지난 1962년 독립유공자 204명에 대한 서훈이 이뤄졌다. 김구, 안창호, 안중근 등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이 추서됐다. 임정 국무령 이상룡, 이회영 등에게 3등급 서훈이 이뤄진 것도 이때다.

이성우 논문('독립유공자 서훈의 역사와 제도화 추이')에 따르면 2021년까지 수여된 건국훈장 1·2등급 서훈의 60% 이상이 이때 이뤄졌다. 그런데 단 4일간 네 차례 회의만으로 심사와 선정을 마치고 명단을 발표했다. 군사 작전을 전개하듯이 졸속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이 때문에 명단 발표 후 문제가 제기되자 재검토해 다시 발표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3·1968·1970·1976·1977년에도 독립유공자 서훈을 진행했다. 부정기적으로 띄엄띄엄 실시한 것이다. 학계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독립유공자 서훈에 소극적이었고 정치적 필요에 따라 시행한 면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테면 1962·1963년 서훈에는 19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부에 대한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얘기다.

박정희 집권기에 형성된 독립유공자 서훈 구조의 근저에는 분단으로 인한 과도한 이념 갈등, 그리고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긴 문제가 놓여 있었다.

그로 인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서훈 대상에서 배제됐다. 납북된 인사들도 그러했다. 김규식도 그중 한 명이다. 임정 부주석이었고 광복 후 이승만, 김구와 더불어 '우익 3영수'로 불렸음에도,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납북된 탓에 오랫동안 서훈이 이뤄지지 않았다.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사가 독립유공자로 둔갑하는 일도 있었다. 독립유공자를 심사한 이들 중 몇몇은 훗날 친일 행적이 드러나 '친일인명사전'(2009년 발간)에 등재되기도 한다.

서훈 등급의 적정성 논란도 계속됐다. 일제 강점기에 이승만의 비서였고 주로 미국에서 외교 활동을 한 임병직도 그런 경우로 꼽힌다. 유신 독재 시기인 1976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이 수여됐는데, 공에 비해 과도한 서훈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1987년 6월항쟁을 거쳐 민주화로 나아가면서 이러한 문제들 중 일부는 개선됐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서훈이 이뤄졌다. 김규식에게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이 추서되는 등 납북된 인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일 행적이 확인된 이들의 독립유공자 자격은 박탈됐다. 1996년 언론인 서춘 등의 서훈이 박탈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잘 알려진 장지연,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김성수, 초대 내무부 장관 윤치영 등의 서훈이 취소됐다.

일부 문제가 개선된 것과 달리 서훈 등급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원인 중 하나는 기존에 부여된 서훈을 격상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상훈법에 '동일한 공적에 대해 훈·포장을 거듭 수여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간 알려지지 않은 공훈이 새롭게 확인돼야만 등급 상향을 시도할 수 있다는 뜻인데, 충족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다.

격상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들어 유관순(1962년 3등급→2019년 1등급), 여운형(2005년 2등급→2008년 1등급), 홍범도(1962년 2등급→2021년 1등급)의 서훈이 격상됐다. 상훈법을 고려해 세 경우 모두 기존 서훈은 그대로 두고, 별도 공훈(유관순 열사의 경우 '국위 선양')을 근거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해 격상하는 우회로를 택했다.

유관순 열사의 서훈 승격 당시 이를 반기면서도, 다른 독립유공자들 쪽에서도 추가 서훈을 요구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공로가 혁혁한 이상룡과 이회영도 격상 이전의 유관순 열사와 같은 3등급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간 이뤄진 독립유공자 서훈을 이제라도 전반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 후 제기됐다.

그러나 기존 구조는 그대로 유지됐다. 그런 가운데 위원회의 독립유공자 20인 재평가 요구가 제기됐다. 이대로라면 또 다른 재평가 요구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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