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는 중국식 명칭' 단정 사례 많지만 근거 불명확
황해 명칭은 1737년 유럽에서 발행된 지도에 첫 등장
중국 역사서엔 청나라 말에 이르러서야 처음 나타나
'유럽에서 온 Yellow Sea를 황해로 번역·사용했을 것'
지난 5일 한중 정상 회담이 열린 후 일각에서 한반도 서쪽 바다 관련 소문이 퍼졌다. '네이버 지도 등에서 서해 표기가 황해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회담 후 정부 방침에 따른 조치'라는 의혹 제기와 '서해가 중국식 표기인 황해에 잠식됐다'는 등의 주장이 이어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복귀를 주장하는 극우 성향의 '윤 어게인' 집회에서는 서해를 황해로 표기하는 것은 주권 포기라는 주장도 나왔다.
논란이 일자 네이버 측은 적어도 2010년부터 지도에 황해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회담 후 서해를 황해로 바꿨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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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10월 10일 인천항의 석양. 물감을 칠해 놓은 듯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뉴시스] |
황해는 한반도 서쪽 바다를 가리키는 정부 공식 명칭이다.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명칭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서해라는 말을 쓰면 안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늘날 서해라는 표현은 일상에서 황해와 자연스럽게 병용되고 있다. 국어사전에도 표준어로 등재돼 있다.
이번 논란에서 두 가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황해를 공식 명칭으로 정한 것은 현 정부가 아니라는 점과 관련된 것이다. 황해는 장면 정부 때인 1961년 4월 국무원(국무회의 전신) 고시를 통해 표준 지명이 됐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5년 외무부, 문교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 회의 끝에 황해가 공식 명칭임을 재확인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황해 표기는 주권 포기'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황해를 공식 명칭으로 정한 지난 정부들도 비난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공격은 극우 세력이 '중국의 하수인' 격으로 몰아가는 현 정부 및 중국에 집중됐다. 이번 논란이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확산된 혐중 정서와 무관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서해·황해 표기 논란은 극우 세력에 한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황해 표기를 서해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적어도 20여 년 전부터 제기됐다. 극우 세력 준동이 문제가 되기 이전부터 논란거리였다는 말이다.
그런 주장을 펼친 여러 사람의 글을 읽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황해를 중국식 명칭 또는 표현으로 단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황해는 중국의 황허가 토사를 운반해 누런 바다가 됐다는 의미의 중국식 표현이니 고유 명칭인 서해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형이다. 황해는 중국인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 사항을 살펴보면 사실로 볼 수 있는 것과 그렇게 보기 어려운 것, 사실인지 불명확한 것이 섞여 있다.
먼저 전근대 한국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 고려사 등의 사료에 서해는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서쪽 바다를 황해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황해가 아닌 서해가 한반도 주민들에게 익숙한 명칭이었다는 얘기다.
황해라고 쓴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1419년(세종 1년) 왜구가 황해를 거쳐 평안도까지 이르러 명나라 경계를 침범하려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만 이때 황해가 서쪽 바다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황해도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다.
중국에서는 황해 명칭을 오래전부터 사용했을까? 그렇지 않다. 역사학자 김보한의 2013년 논문(한국 중심 '環韓國海' 해역의 설정과 역사적 전개)에 따르면, 중국 역사서에서 바다를 황해로 지칭한 사례는 청나라 말기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가 돼야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이 황해를 황허와 관련된 자신들의 고유 명칭으로 여겼다면 나타나기 어려운 현상이다.
황해 명칭은 유럽인이 만든 지도에 처음 등장한다. 프랑스의 지도 제작자 당빌(D'anville)이 만들어 1737년 발행한 '조선왕국전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지도에 한반도 서쪽 바다가 'Hoang-Hai ou Mer Jaune'('황해 즉 누런 바다'라는 뜻)로 표기돼 있다.
서양 최초의 한국 전도(全圖)였던 이 지도는 그 후 제작된 지도들의 모델이 됐다. 역사학자 김차규는 2015년 논문(당빌의 「조선왕국전도」와 확대 재생산된 조선전도들의 의미)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서양의 거의 모든 지도가 당빌의 지도 형태를 따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유럽에서 만들어진 지도에서 황해 표기(프랑스어 'Mer Jaune', 영어 'Yellow Sea')도 늘어났다.
김보한은 황해는 서구 해양인이 창조한 해역 명칭이라고 판단했다. 서양에서 'Yellow Sea'를 먼저 사용했고, 청나라 말에 서양 지도와 그 제작 기법이 동아시아에 전래되면서 'Yellow Sea'를 황해로 번역해 사용했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시발점인 당빌의 지도에 황해 표기가 등장한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당빌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등이 보내온 자료와 기존에 유럽에 있던 동아시아 자료를 비교 검토해 '조선왕국전도'를 만들었는데, 어떤 자료를 근거로 황해라는 명칭을 썼는지 불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한상복은 1991년 중국에서 열린 황해 관련 심포지엄에서 당빌이 조선 8도 중 하나인 황해도에서 황해라는 명칭을 가져다 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닷물 빛깔에서 비롯된 이름이 아닐 것이라는 추정이다. 다만 현재 황해도 유래설은 누런 바다색 유래설에 비해 소수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황해는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된 명칭이 아니다. 중국인이 아니라 유럽인이 만든 지도에 처음 등장해 유럽을 중심으로 해서 퍼진 명칭이다. 바다색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설에 힘이 실리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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