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왜 "이리 떼"라는 낡은 표현을 썼을까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6-01-15 17:28:39
내란 우두머리 혐의 결심 공판에서 '특검=이리 떼'
'이리 떼',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리'도 마찬가지
'붉은 이리 떼' 형태로 과거에 북한 비난에 쓰이기도
적대적 대북관과 극우 유튜브 영향으로 발언했을 수도

윤석열 전 대통령은 13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특검을 맹비난했다. 그 과정에서 특검이 "어둠의 세력과 더불어민주당의 호루라기에 맹목적으로 달려들어 물어뜯는 이리 떼"라는 주장도 했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마무리하는 결심 절차가 재개된 13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주장의 타당성 여부와 별개로 '이리 떼'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하나는 '이리 떼'가 근래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리 떼'는 고사하고 '이리'라는 말이 사용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이리는 영어로 wolf, 즉 늑대를 말한다. 전근대부터 wolf를 가리키는 단어로 쓰였다는 것이 문헌으로 확인된다. 늑대라는 단어는 19세기부터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리가 늑대보다 더 오래전부터,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된 단어라는 얘기다.

오늘날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늑대라는 표현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이리는 그렇지 않다. 21세기 들어 이리라는 단어가 사실상 사라진 듯해 아쉽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한국인들에게 이리는 동물 명칭일 뿐 아니라 지명이기도 했다. 전북 익산시의 옛 명칭이 이리시다. 1973년 수출 자유 지역 지정,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 등으로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알려진 곳이었다. 그런데 1995년 익산시로 명칭이 바뀌면서 한국 사회에서 이리라는 말을 들을 일이 더 줄어들었다.

다른 하나는 '이리 떼'가 한국 현대사에서 오랫동안 특정한 맥락에서 많이 쓰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쓰일 때는 보통 '붉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곤 했다.

'붉은 이리 떼'는 냉전 시대에 북한을 비난할 때 쓰인 원색적인 표현 중 하나였다. '북괴', '붉은 괴뢰', '김일성 괴뢰 도당', '공산도배' 등과 함께 시민들이 일상에서 지겹도록 접해야 했던 표현이었다.

1987년 6월항쟁을 계기로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붉은 이리 떼', '북괴' 등 북한을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표현은 언론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2000년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 등을 거치며 한반도에서 이전보다 긴장이 완화된 것도 변화 배경 중 하나였다.

하지만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근래에도 극우 성향 인사들의 유튜브 채널 등에서 '붉은 이리 떼'라는 표현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의 말은 그의 세계관과 의식 수준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이리 떼" 주장에서 '붉은 이리 떼'라는 지나간 시대의 유물을 떠올리는 이유 중 하나는 윤 전 대통령의 적대 위주의 대북관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냉전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대북 강경 정책을 주도해 '과거 회귀'라는 지적을 받았다. 12·3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기 위해 평양에 무인기를 투입해 북한의 군사 도발을 유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도 하다.

 

윤 전 대통령이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2024년 출간한 회고록 초판에서 "극우 유튜버의 방송에서 나오고 있는 음모론적인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체포되기 직전 관저를 찾은 여권 관계자들에게 "요즘 레거시(전통) 미디어는 너무 편향돼 있으니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고 권유했다는 사실도 알려진 바 있다.

 

적대 위주의 대북관과 극우 성향 유튜버들의 극단적인 주장이 윤 전 대통령 내면에서 합류한 결과 '붉은 이리 떼'와 이어지는 "이리 떼" 발언의 토양이 형성된 것 아닐까? 물론 "이리 떼" 발언과 '붉은 이리 떼' 표현이 어느 정도 관련돼 있는지는 윤 전 대통령 본인만이 알 것이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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