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시 노래' 헌정 앨범…"노래는 끝나지 않았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4-12-11 14:57:35
박범신 문장으로 만든 '진채밴드'의 시 노래 헌정앨범 출반
'폐암일기'로 교감해온 작가에게 바치는 응원의 벅찬 노래
"존경과 사랑을 담아 문장 안에서 노래를 발견하는 여정"

소설가 박범신의 문장들이 노래의 날개를 달고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인디밴드 '진채밴드'의 리더 정진채 씨가 박범신의 소설과 시에서 선별한 문장들을 가사로 삼아 곡을 만들고 노래해 박범신 헌정앨범을 내놓았다. 박범신과 10여년 전부터 협업해온 이 앨범에는 정진채가 작곡한 13곡이 담겼다.  

 

▲ 헌정 앨범을 기념하는 자리에 나란히 선 소설가 박범신과 진채밴드 리더 정진채(오른쪽).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지난 8일 대전 대흥동 카페에서 박범신 팬클럽 '와사등'과 '소사모' 회원들이 헌정앨범 출반 기념 자리를 마련했다. 다양한 직업군의 박범신 열성 독자들 7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정진채의 노래를 중심으로 회원들의 축하 자리가 이어졌다. 이날 박범신은 "고향의 후배 뮤지션이 내 문장을 재해석해서 작곡하고 직접 노래해 단독 앨범으로 만들어서 특별히 다정하고 행복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 여름 폐암이 재발해 3기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인 박범신은 팬클럽 모임 방에 올리는 '폐암일기'에서 불과 열흘 만에 이승을 떠난 친구의 아내를 애도하면서 "나의 뒷모습은 고즈넉하고 다정하고 무엇보다 단정했으면 좋겠다"고 썼다. 이날 헌정앨범 기념 모임은 박범신의 독자와 팬클럽 회원들이 그의 투병에 힘을 불어넣는 자리여서 그 의미가 각별했다. 박범신은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노래와 환호가 "항암제보다 더 큰 치유의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나는 시를 쓸 줄 모르지만/ 가령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 평생 아침이 제일 쓸쓸하다고/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빠져나가는게 그렇게 힘들다// 시를 쓸 줄 모르기 때문에 나는 한낮으로 가려고/ 오늘 아침에도 갑옷을 입는다/ 쇠 단추를 채우고 쇠 지퍼를 올리고 시인을 갑옷 속에 숨긴다// 비내리는 저녁이 오면 그리운 그대에게 가서/ 모시 식탁보가 깔린 식탁 위에서 가시 많은 생선으로 눕는다// 시인다운 아침을 맞는 건/ 내 평생에 꿈이었다고 시인다운 아침은 꿈이다/ 작은 관절들과 어깨뼈가 쇠단추 갑옷에 눌려/ 내려앉는 소리가 난다"(박범신, '시인' 부분)

 

▲ 박범신 헌정앨범에 수록된 곡들 일부와 앨범 표지. [진채밴드 제공]

 

이번 헌정 음반에 담긴 노래 중 박범신과 정진채가 공통으로 꼽은 '최애곡'은 '시인'이다. 박범신은 "산문은 일종의 논리 중심, 한낮의 문학인데 비해 시인으로 사는 건 갑옷을 온전히 벗고 더 자유로운 본성으로 사는지라, 그렇게 살고 싶었지만 산문의 세계에서 살아왔다"면서 "시인"이란 노래를 들으면 매번 눈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세상에선 논리의 구조(소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오직 감성에 기대어 노래하는 마음, 노래하는 가인으로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헌정 음반에는 '시인' 외에도 '서시(숲)' '소설에게' '명주바람' '봄의 예감이 넘치는 어느날 횡단보도 앞에 우두커니 서서' '은교' '눈물' 주름' '유리' '길' '4월' '황홀' '길 위에서 죽은 W씨에게-부엔까미노' 등 13곡이 수록됐다.

박범신은 "50대가 작가의 전성기라는 한강의 수상 소감대로라면 나는 그 시기를 지나 19년이나 흘러간 작가"라면서 "새벽에 선잠이라도 깨면 두 가지 생각에 내몰린다"고 썼다.

"하나는 내가 바친 헌신과 노력에 비해 세상에서, 혹은 문학판에서 과도하게 얻어냈을지 모르는 여분의 축복에 대한 마음의 빚이고, 다른 하나는 그때 그곳 그 시간대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하는, 한없이 우매하고 한없이 가벼운 내 존재에 대한 자책이다. 양쪽 길이 아프다. 때맞추어 폐암이 와서 글을 쓰지않을 핑계가 되어주니 폐암에게 고마울 뿐이다."(폐암일기 '몇가지 단상' 부분)

 

▲ 헌정앨범 기념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박범신. 그는 "다음 생에는 산문의 논리 구조에서 벗어나 노래하는 가인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10년 전 박범신 논산 집필관 개관 공연에서 인연을 맺은 정진채는 "박범신 작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은 앨범"이라며 "그의 문장에 기대어 그 안에 숨어 있는 음악들을 발견해내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인디밴드 리더로 '시 노래' 만들기에 정진해 온 정진채는 "그의 문장은 그 자체로 시이고, 음악이어서 곡을 쓰기가 좋았다"면서 "아름다운 문장을 가사로 노래할 수 있다는 건 시 노래의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범신의 다짐 같은 물음. 

"어떤 그리움이 내 가슴 깊은 심지에 남아있을까. 연애가 아직 다 끝나지 않은걸까. 저 강물 너머, 가을의 끝엔 폐암 이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몇가지 단상' 2024.10.)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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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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