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제철 음식 대신 열두 달 선보이는 제철 책"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4-02-08 17:18:27
'읽을, 거리' '선릉과 정릉' 펴낸 김민정·전욱진 시인
시를 축으로 산문집 매달 펴내는 '시의적절' 시리즈
"사람과 사랑, 이 계절에 어떤 의미 있는지 돌아봐"
"책을 만들면서 선배와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았어"

시인들이 열두 달 중 한 달씩을 맡아 신작시를 축으로 일기, 편지, 메모, 에세이를 매일 한 꼭지씩 곁들이는 산문집이 출간됐다. '난다' 에서 펴내는 이른바 '시의적절' 시리즈가 그것인데, '시詩의 적절함'으로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제철 음식 대신 제철 책 한 권'을 선보인다는 취지다. 그 첫 주자로 이 시리즈를 기획한 김민정 시인이 1월의 책 '읽을, 거리'를 선보였고, 전욱진 시인이 '선릉과 정릉'으로 2월을 이어받았다.

 

▲산문집 '시의적절' 시리즈를 기획한 김민정 시인. 첫 주자로 자신이 나서서 1월의 책 '읽을, 거리'를 펴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김민정 시인이 '읽을거리라 쉽게 뱉고 보니/ 읽을 만한 내용일 리 만무해/ 겁도 나고 부끄러움도 앞서/ 만만한 게 사이에 쉼표라고/ 둘 가운데 끼우고는 냅뒀다'고 서문에 밝힌 '읽을, 거리'는 10년 만에 내는 산문집이다. 1월 1일 첫날은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는 후배의 이혼 상담 '일기'로 시작해, 1월 31일 마지막 날은 가야금연주자 황병기의 기일에 맞춰 생전에 나눈 '인터뷰'로 끝냈다.

편집자로 살고 있는 김민정 시인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 일정을 빼곡히 적어넣은 다이어리에 그날그날 만난 사람에 대힌 메모도 잊지 않거니와,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날짜와 연결된 경우들이 많다. 1월 3일은 개그우먼 박지선(1984.11.3~2020.11.2)을 만났던 날이었다. 1월 3일 자리에는 박지선 인터뷰를 실었다.

2018년 1월 3일 수요일. 용산 CGV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걸어다닌 오늘. 사람들 다가와 찍자 하는 사진 속 너는 '개그우먼 박지선'에 최선을 다하느라 한결같이 친절했고 예외 없이 다정했지. "언니가 바쁘셔서 얼굴 보자고 하기도 미안. 건강만 하셔 언니. 시간 되면 그때는 꼭 언니가 먼저 내 스케줄 물어봐줘." 우리가 말없이 만났을 때까지 그때까지 지선아, 나는 너에게 계속 묻고 있을게. 

 

1월 9일 '에세이'는 직장 후배 서유경(1983.1.9~2023..2.18)의 생일에 맞추었다. 삼십대 후반 월요일 퇴근 후 늦은 밤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생을 마감한 후배를 떠올리며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 그 일생을 말로 재는 줄자가 있다면 그 눈금의 시작과 끝을 간다와 갔다로 표기해도 필시 억지는 아니리라'면서 '나는 살아 너에게 가고 있는데 너는 죽어 어디로 갔을까'라고 썼다.

 

 

 

이들 외에도 죽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 산문집에도 자주 보인다. 1월 11일은 허수경(1964~2018)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출간으로 독일에서 귀국한 허수경 시인과 문학동네시인선 론칭 기자간담회를 함께 한 날로 기록됐다. 김민정은 "행사가 끝난 후 수경 언니는 박찬일 셰프가 해주는 음식을 감탄과 경탄을 곁들여 깨끗이 다 비웠지. 아주 천천히, 오늘이 마지막일 것을 잘 아는 사람처럼."이라고 떠올린다. 문인수(1945~2021) 시인의 시집 '쉬!' 교정지를 덮은 뒤 쓴 일기에서는 고인의 첫 시집 '시인의 말'을 기록한다.


1월 21일 에세이는 삼 년 전 중증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빠의 휠체어 이야기. '어느 새벽 아빠의 기저귀를 갈다 휘청하고 주저앉았을 때 어둠 속 반짝이는 이를 드러낸 바퀴와 눈이 마주쳤을 때 테 모양의 둥근 바퀴라 하는 이것을 처음으로 만든 이는 가히 천재구나 감탄을 한 적이 있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가 못하는 일을 잘하는 존재라 할 적에 이를 무조건 천재라 이름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내게도 꿈이 하나 생겨버렸다. 가히 휠체어 밀기의 천재랄까!' 1월 28일 '노트'는 낄낄대면서 보다가 간호사에게 지적당한 아빠의 일기장.

오후에 민정이가 배를 마사지하는데 란간(별안간) 배가 풀려서 대변을 390그램 보았다. 민정이에게 미안했다. 수북한 배가 쑥 들어갔다. …아빠 똥을 해결해준 보약 같은 큰딸. 힘이 좋아서 손이 매워서 배를 누르는데 방귀가 줄줄 나왔다. 민정이가 정화조 냄새가 난다고 했다. 간호사 오기 전에 향수 뿌리라고 했더니 걔는 참 아끼는 게 없어 너무 팍팍 뿌렸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는 김민정 시인의 글은 시어도 그러하지만 과감하고 거침없는 편이다. 지난 6일 밤 서울 합정동에서 지난해 말 산문집 '듣는 사람'을 펴낸 박연준 시인, 2월의 책을 낸 전욱진 시인, 사회자 겸 5월의 책 예정자 오은 시인, 김민정 시인 들이 참여해 설날맞이 북토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연준 시인이 이번 책에 수록된 김민정의 신작시 '어느 때 여느 곳 호두를 붙좇는 밤 있어-메트로놈'을 낭송했다. '눈 오는 밤/ 호두나무 테이블을/ 호두기름으로 닦고 있는 일/ 그런 일…' 

 

▲설날을 앞두고 6일 서울 합정동 카페에서 열린 '난다 신년 북토크'. 왼쪽부터 오은·박연준·김민정·전욱진 시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 산문집의 시들은 시적 완성도를 계산하기 전에 그냥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사람과 사랑이 1월에 저한테 어떤 의미로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떠올렸을 때 호두가 있었어요. 어떤 시인이 아무 설명도 없이 큰 자루에 호두를 담아 보내왔는데, 삶이 너무 힘들어 혼자 우두커니 있을 때 뭔가 내 몸을 쓰면서 잊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닦아내는 건데, 닦으면서도 밝아지는 게 있더라구요. 호두 이야기를 완성할 수는 없지만 설명할 길 없는 사람의 힘듦과 마음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김민정은 "시의적절이라는 말은 쓰기 어려운 표현인데 시기 적절하지 못하면 건방진 말이 되기 때문"이라며 "다행히 시가 있어서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시인들마다 특징이 다르겠지만 저는 시를 마음대로 갖고 놀았다"면서 "긴 인터뷰나 에세이나 일기들을 먼저 배치하고 나중에 간을 맞추듯 물렁물렁한 공 같은 시를 계속 자리를 바꾸어 이리저리 배치했다"고 덧붙였다. 박연준 시인은 "김민정의 시에는 겹이 다른 나이테가 계속 보인다"면서 "시원스럽게 읽혀서 쉽게 씌어진 것 같지만 무언가가 있어서 읽을 때마다 다른 걸 보게 된다"고 곁에서 말했다.

'시의적절'의 2월을 맡은 전욱진 시인은 "2월은 존재감도 희미하고 할 말도 많이 안 하는 조용한 느낌이 있다"면서 "제가 바라보는 대상들이 불러주기를 바라는 이름을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채워나갔다"고 말했다. 표제작으로 뽑은 '선릉과 정릉'도 죽음의 이미지와 이어져 있다. 

마음을 앓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 살려면 먹어야지, 식당을 찾아서// 옆의 사람이 오늘밤 죽을까봐/ 하루종일 붙어 있을 작정이다/ 타고 있는 불을 숲에/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 삼켜야만 하는 다른 많은 죽음이/ 우리에게는 아직 더 많은 죽음이/ 준비되어 있다 거의 말할 뻔했다// 다만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말자/ 누군가 했던 말을 내가 꺼냈을 때/ 곁의 그는 몸에 불이 붙은 채/ 여름을 걱정하는 사람 같았다 _'선릉과 정릉' 부분

 

▲2월의 책을 펴낸 전욱진 시인. 그는 "절망과 싸우느라 한데 뒤엉켜/ 부둥키고 뒹구는 내 모습을 보며/ 나 혼자는 그걸 사랑이라 한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 시와 비슷한 상황이 실제로 있었어요.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는데 죽으려고 한다고… 왜 저에게 그 얘기를 해주고 싶은지 몰라서 당황했지만 살려면 먹어야 된다고, 밥을 먹이러 찾아다니고 금세 떠나면 안될 것 같아 곁에 있어주고 그랬죠. 정말 새삼스럽지만 우리는 무덤 안에 들어가 있잖아요? 선릉과 정릉, 이 두 개의 무덤처럼 그냥 걸어다니는 무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민정은 "맑게 얘기하니까 오히려 서늘하고 투명하게 다 말해준 사람처럼 보였는데 책장을 덮고 나면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은 질긴 느낌이 든다"면서 "죽음의 이미지가 많이 있는데 저의 경우는 죽음과 맞서 완전히 싸우고 불지르는 의도성이 다 보이지만, 슬쩍 지나갔는데 죽음 냄새가 확 나면 이런 분들에게는 전전긍긍 쩔쩔매게 된다"고 거들었다.

2월의 '부록'으로, '차례대로 귀에 넣으면 누군가의 한 시절이 완성된다'며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강조한 플레이리스트 '음악들'을 덧붙인 전욱진은 "김민정 선배가 책을 만드는 과정 자체의 즐거움이 그대로 옮겨져왔다"면서 "같이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욱진의 '믿는 사람'.

그때// 천천히 내 앞에 굴러오는 작은 공/ 나는 모르는 체하며 지날 수 있고/ 수풀이 있는 데로 내던질 수 있다// 그러나 눈빛을 먼저 건네고 있는/ 그들이 아무쪼록 받을 수 있도록/ 포물선을 그리게 잘 던져주는 것/ 이곳에서 나의 기쁨이란 이런 것// …// 그 사람은 내가 다가온다 말하고/ 나는 그 사람이 내게 온다 말한다// 눈이나 비처럼/ 하나하나 온다는 것// 이곳에서 나의 슬픔이란/ 이런 것이다  _'믿는 사람' 부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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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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