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탄식 없이 슬퍼하고 변명 없이 애도하는 긍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12-22 09:12:40
열두 번째 소설집 '목소리들' 펴낸 이승우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을 위한 애도 아닌
자신의 슬픔을 지우기 위한 탄식이 아닌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의 간절함
"그냥 미안하다고 말해주면 안 돼, 엄마?"

-간절함이 없으면 반복할 수 없습니다. 물을 뿌리는 것은 지우기 위해서이지만, 반복적인 물 뿌리기는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우지 않기 위한 것임을 모르겠습니까? 어떤 반복은 기원이고 부름입니다. 지우는 것이 아니고 새기는 것입니다.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불러내는 것입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에서 특히 각광을 받는 소설가 이승우. 새 소설집에는 회한과 죄책감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탄식이 가득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여자가 길가의 소화전 밸브를 열고 차들이 오가는 길 바닥을 끊임없이 솔로 문지른다. 지우고 또 지운다. 경찰이 달려와 제지하지만 여자는 막무가내이고, 경찰의 말을 들어보면 한두 번 되풀이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낯선 남자가 나타나 경찰에게 말한다. 당신들은 무례하다고, 그분이 하던 일을 하게 하라고.

여자가 기를 쓰고 반복적으로 씻어내는 자리에서는 뺑소니 사망 사고도 있었고, 길이 뚫리기 전에는 그곳이 묘지였으며 인근에서는 전쟁통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처형도 했다지만, '사람 사는 데서야 늘 무슨 일인가 일어나는데 어쩌라는 거냐'고 경찰은 화를 낸다. 소설 바깥 현장에서도 들었던 낯설지 않은 말이다. 낯선 이가 말한다. 여자의 행위는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우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간절함이 없으면 반복할 수 없다고. 이승우의 열두 번째 소설집 '목소리들'(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첫 번째 단편 '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의 풍경이다.

이 단편은 이후 전개되는 회한과 죄책감으로 아픈 이들 이야기에 비하면 서막에 불과하다. 이상문학상(2021) 수상작으로 뽑혔던 '마음의 부력'에서는 밖으로 떠돌던 마흔일곱 살의 형이 갑자기 죽었다. 어머니는 나를 죽은 형의 이름으로 부르고, 형을 도와주기 위해 나에게 돈을 갚으라고 억지를 부린다. 경증 치매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어머니의 (의도된) 착각에 편승해 형의 배역을 수용한다.

-내가 느껴 온 것처럼 어머니가 수시로 느껴왔을,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느끼게 될 깊은 회한과 죄책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상실감과 슬픔은 회한과 죄책감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상실감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것들에 의해 더 또렷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단지 장남이 아닌 동생 야곱을 사랑했을 뿐인데, 큰아들 '에서'는 상처를 받았다. 그 정황을 아는 야곱이 행복하진 못했으리라고 이승우는 본다. 어머니 리브가 또한 큰아들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야곱을 더 사랑했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떠안게 된 마음의 고통이 없을 리 없는 것인데, 뒤늦게 소설 속 동생 또한 어머니의 그 회한을 간파한 것이다.

표제작 '목소리들'에서는 동생 '준호'가 낡은 중고 승합차 안에서 죽는다. 시종 어머니와 형의 목소리만으로 전개되는 이 단편에서 어머니는 그 중고차를 준 사람을 원망하고, 동생의 전화를 받지 않은 형을 책망한다. 동생은 동업하던 친구에게 사기당하고 가게와 집을 다 뺏기고 그러고도 되레 사기꾼으로 몰려 쫓겨 다닐 때 집에 들렀다. 어머니는 그 애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상을 차려 묵묵히 먹였다. 아들은 '엄마는 입으로 말하는 대신 몸으로 더 자주 말했다'면서 '엄마는 자식을 사람들 앞에 내세울 수 없어서 속상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엄마가 왜 이러는지 알아. 엄마는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거잖아. 엄마의 방식으로 자기를 벌주고 있는 거지. 자기를 괴롭히기 위해 남들을 탓하면서, 남들에게 돌릴 수 없는 책임을 물으면서, 자기를 지목하고 있는 거잖아. …그런데 엄마, 왜 그래야 해? 엄마가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미안하다고 말하면 안 돼? 준호한테, 그리고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주면 안 돼, 엄마?

'물 위의 잠'에서는 집 나갔던 형이 강가에서 죽었다. 유럽에서 폭발 참사에 가족을 잃은 여자가 몽유병 환자처럼 산책하다가 강가에 누워있던 그가 사라진 사실을 신고해 죽음을 알린다. 형은 고향에 이르기 전에는 진정으로 잠들지 못하는 오디세우스의 병사들처럼 어디서도 한순간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동생은 생각한다. '애써도 안 되는 일이 있더라'던 형의 말을 떠올리며. 여자가 말한다. '그 사람은 잠을 자야 했어요.' 

 

▲이승우는 "탄식 아닌 슬픔이 없고, 자기 방어 아닌 애도가 없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전화를 받(지 않)았어야 했다'에서도 죽은 '형배'에 대한 죄책감은 이어진다. 갑질과 성추행 혐의를 받는 그가 유일하게 소통했던 나는 징계위원회에 차출돼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뒤늦게 그가 죽은 뒤 걸려온 그의 전화를 받은 게 문제였다. 그가 죽기 전 남긴 음성이 고스란히 들려온다. 나는 생각한다. ' 필사적으로 달아나던 나는 붙잡혔고, 붙잡혔으므로 추궁을 받을 것이다. 나에게 자유가 있을까. 자유가, 나에게 있어야 할까.'

"제 마음의 풍경이 이 소설들을 쓰는 동안 좀 복잡했던 것을 그때그때 토로한 건데,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견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죠. 가까운 사람의 부재에 대한 죄책감이나 죄의식이라는 게 우리 삶, 세상살이의 토대가 돼야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남은 사람 내면의 황폐함을 복잡한 심리, 자기 변명, 애도의 형식을 띤 생존의 목소리들로 표현했어요.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의 마지막 행보, 그런 것들도 자꾸 마음속에서 상상의 형식으로 복원돼 그려졌어요."

전화로 만난 이승우는 "세상을 떠난 이의 마지막 행보란 저에게는 집으로 가는 것인데 그 집에 돌아가도 집이 아니거나 결과적으로 집에 이르지 못한다"며 "집이라는 게 건물이 아니라 어머니로 상징되는 인격체와 동일시하면서 이 세상에서 마지막에 이른 사람의 걸음걸이도 그려보았다"고 덧붙였다. 그 소설이란 '공가'와 '귀가'를 말하는 것인데, 이 두 단편의 집은 철거 지역의 빈 집들이다. 남자가 오래 밖으로 떠돌다 돌아온 집은, 시끄러운 집에서 도피하는 여자가 가끔 깃들어야 집에 가까워지는 그런 집이다.

-그녀가 내 어깨를 잡고 처마 밑으로 움직일 때 느꼈던 것을 나는 그때 느꼈다. 가슴 한쪽이 울컥거리는 증상. 마음이 물로 가득 차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안도감.… 자기 연민이나 슬픔 같은 것이 스르르 퍼져 나가서 꽉 막힌 마지막 골목에 아련하게 빛을 내는 것 같은, 마지막이 길게 늘어나는 것 같은, 한없이 더 늘어날 것 같은, 그런 거.

회한과 비탄은 소설들에서 내내 이어지지만 그나마 집 가까이에 이르러 희미하고 아련하게 '빛'이 느껴진다. 그것을 매개하는 것은 '연민'이다. 소설 속 남자는 '우리는 자기 연민의 투사를 연대라고 느끼는 게 아닐까' 짐작한다. 

 

▲이승우는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자신만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성경에 보면 '긍휼'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죠. 불쌍히 여긴다는 말보다 긍휼히 여긴다는 말이 좋게 느껴져서 저는 그말을 많이 쓰는데, 연민에 조금 초월적 의미가 담긴 표현처럼 느껴져요. 긍휼히 여긴다는 거는 성스러운 느낌이 들거든요. 어떤 사람의 처지에 반응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유한성, 숙명적인 외로움, 존재 자체에 대한 긍휼한 마음 같은 것들이 있어요. 그걸 달리 표현하면 연민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과거의 회한에 얽매여 자신을 내내 괴롭히는 것 또한 지나친 것 아닐까. 다른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자신에게도 베풀면 안될까. 이승우는 정작 현실에서는 "자기 자신만 너무 불쌍히 여기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너무 당당하고 떳떳하고 거침이 없는 태도들이 갈수록 더 심해지면서 타인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랄까,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종의 연작소설처럼 같은 주제들이 아프게 변주되는 이 소설들 말미에서 이승우는 '슬픔은 탄식과 섞이고 어떤 애도는 종종 자기방어술과 구분되지 않는다'면서 '탄식 없이 슬퍼하고 변명 없이 애도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고 썼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사람은 가련하지만 부끄러운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 생각에서 아주 멀리 가지는 못했습니다. …'이해받으려는 간절함' 이 아니라 '간절함을 이해하는' 글의 저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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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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