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 나가는 남자의 몸에 새기던 부적 같은 문신
일제강점기 배경 밟아도 스러지지 않는 귀소본능 그려
잊힌 어휘와 전라도 사투리 활용 판소리 율조로 담아
돗바늘 묶음으로 찌를 때마다 새빨간 핏물이 방울방울 맺혀 흘러내렸다. 순금은 얼른 그 피를 속치마 자락으로 꾹꾹 눌러 빨아들였다. 새하얀 속치마 자락에 선홍색으로 번지는 무늬를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찔리는 사람과 찌르는 사람이 함께 울었다. 속치마 하얀 바탕은 점점 빨갛게 변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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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복된 연재 중단과 병고의 터널을 통과하며 오랜 시간 붙들고 있던 장편을 완간한 소설가 윤흥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3·1절을 앞두고 30여 년 장정을 마친 윤흥길 장편 '문신'(전5권·문학동네) 의 '부병자자(赴兵刺字)' 장면이다. 긴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러 '순금'의 남편 '춘복'이 징용으로 끌려가기 전 아내가 그의 몸에 문신을 새기는 대목이다. 젊은 남자가 전쟁터로 나가기 전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부적의 의미로, 만에 하나 죽는다 하더라도 나중에 시신이라도 얼른 알아볼 수 있도록 몸에 문신을 새기는 풍습이 '부병자자'였다.
한 땀씩 바느질할 적마다 순금은 마음속으로 기도의 말을 꼬박꼬박 붙이곤 했다. 신춘복씨 몸에 기도가 새겨지는 중이었다. 돗바늘 가는 길 따라 비원과 소망의 기도 소리가 차례로 그의 몸속에 흘러들고 있었다. 우람차고 튼실한 그의 몸 자체가 장문의 절절한 기도문이자 거대한 기도의 탑이 되어가고 있었다.
순금은 동네 사람들에게 놀림받던 어린아이 같은 남편의 몸에 자신의 절절한 기도를 새긴 셈이다. 이 대목을 쓰기까지 윤흥길은 30년 넘게 걸렸다. 1989년 서문을 쓴 이래 연재 지면이 두 번이나 사라졌고, 2019년 3권까지 낸 후 곧 완간하겠다던 소설은 다시 병고를 세 번이나 치른 끝에 이제 힘들게 끝을 맺게 된 것이다.
소설은 가상의 전라도 공간 '산서면'의 만석지기 지주 최명배의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일제강점기 말기를 살아냈는지, 당시의 풍성한 어휘와 사투리를 동원해 세밀하게 축조해낸다. 최명배를 중심으로 폐병쟁이 맏아들 '부용'과 사회주의에 경도돼 일제에 끌려갔다가 겨우 나와 사찰 대상인 둘째 '귀용', 집안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딸 '순금', 이들의 어머니 관촌댁이 주요 인물이다.

여기에 동네 바보 머슴 '춘풍'이 1권부터 마지막 징용에 끌려가기 전까지 소설을 관통하는 역할을 한다. 부모가 어엿하게 호적에 올려준 이름 '신춘복'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불러주는 동네 사람들은 없었다. 그냥 속없는 춘풍이였다. 앉아도 춘풍, 일어서도 춘풍이요 가도 춘풍 와도 춘풍, 비를 맞아도 눈을 맞아도 춘풍이일 뿐이었다. 춘풍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뜬금없이 노래를 부른다.
님은 보고 잪으지요오 해는 꼴딱 넘어가지요오 노잣돈은 똑 떨어졌지요오 괴얄띠는 안 끌러지지요오 똥은 매랍지요오……
가사는 그때마다 뒤죽박죽이지만 콧물을 총알처럼 쏘는 재주와 함께 이 노랫가락이 그의 상징이다. 순금이 일제 말단 관료에게 겁탈당할 뻔 했을 때도 이 노래를 부르며 나타나 구조를 했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 쓰고 똥물을 마실 정도로 매타작을 당한 인물이다. 만석꾼집 딸 순금이 동화와 소설의 사연을 건너 보국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춘풍이와 혼인하거니와, 이는 이 소설의 중심 모티프인 '부병자자'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완간을 계기로 기자들과 만난 윤흥길은 "한민족의 귀소본능과 기독교인의 본향을 향한 귀소본능을 같이 연결시켜 구상한 작품"이라며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건 만날 때마다 큰 작품을 쓰라고 강조한 박경리 선생님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를 관통해 광복 이후까지 이어지는 큰 골격을 구상했지만 이후 얼크러지면서 규모가 축소돼 지금의 결실을 맺게 된 것인데, 박경리 선생의 '큰 작품'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하소설 쓰기가 버거운 터에 왜 이리 힘들게 큰 작품을 쓰라고 했는지 묻자 박선생은 "큰 작품은 긴 작품이 아니고 인간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인간이 사는 사회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진실을 바라보는 그런 작품"이라고 정의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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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흥길은 "각양 각색의 문학작품이 골고루 나올 때 그 나라의 문화 풍토가 풍요해지고 큰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서사를 따라가는 재미도 충분하지만, 무엇보다도 당대의 전라북도 지역 사투리와 윤흥길 특유의 해학이 판소리 율조로 전개되는 흐름이 큰 특징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한땀 한땀 문신을 새기듯 축조해나간 공력이 돋보인다. 일제의 토지조사를 이용해 땅을 빼앗고 사갈스런 협잡으로 만석지기가 되어 떵떵거리는 최명배의 말.
따른 집안들 죄다 망조가 들어도 우리 최씨 집안만은 절대로 꺼울러지들 않게코롬 왜놈 붕알 뙤놈 붕알 개릴 것 없이 그저 아무 붕알이나 닥치는 대로 틀어잡고 늘어지는 거여. 그것보담도 더 기특헌 효행은 세상에 없는지 알란 말여, 이 열 질 똥통에다 장아찌 박어뿔 인간들아!
최명배와 관촌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설 내내 시종 구사하는 다양한 '욕'들은 악인을 악인 그대로 뾰족하게 받아들이게 하지 않고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해학의 힘을 발휘한다.
이 꼬추장 단지에다 슥 달 열흘 대그빡을 처박어놔도 시연찮을 놈, 이 능지처참으로 초벌 징치헌 연후에 부관참시로 재벌 징치헐 놈들, 원산대호 아갈머리에 열두 번도 더 물려갈 년, 산적꽂이를 혀서 간짓대에다 대롱대롱 매달고는 비바람 눈서리 맞혀서 얼렸다 녹였다 허기를 슥 달 열흘 계속혀도 시연찮을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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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윤흥길은 크리스찬의 '본향'을 향한 귀소본능을 '문신'의 인물들에도 투사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당대의 어휘들을 풍성하게 되살려 판소리 율조로 그 시대를 복원한 미덕이 크다. 시종 푸지게 나오는 '욕'들은 모두 채집한 것인가.
"전라도 욕이 좀 걸쭉한 편이다. 어린 시절 이웃집에 욕쟁이 아주머니가 있었다. 저작권이라도 주장할법한 온갖 욕을 했는데, 그 기억에서 출발해 남녀 인물에 따라 제 나름대로 만들기도 했다. 혹 독자들이 오해할지 모르나 저는 욕쟁이는 아니다. 이번 소설은 마음 먹고 불친절하게 잊힌 어휘들을 끌어내고 사투리들을 그대로 활용했다. 읽기 힘들지 모르나 한 작품의 특색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작업이었고, 저는 상당히 기쁘게 생각한다."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와 힘들었던 점은?
"이규태의 '한국인의 의식구조'에서 처음 '부병자자'를 알게 됐는데 6·25 때 동네 청년들이 몸에 문신을 하던 모습들이 생각났다. 아울러 다큐에서 징용 갔던 한국인이 부르던 '밟아도 아리랑'을 접하고 한국인의 귀소본능에 관심을 기울였다. 자료를 많이 확보해 어려움은 없었는데, 오히려 사투리를 구사하는 일이 힘들었다. 정확하게 전라도 특정지역 사투리를 완전하게 구사하기는 힘들어서 가상공간을 설정했다."
-독자에 대한 불친절을 감수할 정도로 작가의 의지를 관철했는데 이즈음 후배들에게 특별히 조언할 말이 있을까.
"한 나라나 사회의 문화적 경향이 패션화하는 거는 굉장히 반대하는 쪽이다. 어느 해 여름 길거리에 오랜만에 나섰더니 여자들이 새카만 복장을 하고 있어서 놀랐다. 까만 패션이 유행이라고 하더라. 작가 개인의 성향이나 문학관이 다르다면 백인백색의 소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대세를 이루는 흐름이 한 나라의 문화 풍토를 석권하는 건 굉장히 잘못된 것이다. 각양 각색의 문학작품이 골고루 나올 때 그 나라의 문화 풍토가 풍요해지고 큰 수확을 거둘 수 있다. 그래서 저는 젊은 후배 작가들에게 작품을 이렇게 써야 되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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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흥길은 "창작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나는 연명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시간이 흘러 이력이 쌓여감에 따라 작품 세계가 더 깊어졌다고 생각하는가.
"젊었을 때부터 소설이라는 것이 어떤 문제를 다뤄야 하는지 많이 생각했다. 순수와 참여 논쟁이 심했는데, 저는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다 중요하다는 쪽이었다. 사회가 물이고 인간이 물고기라면 물고기 없는 물도 의미가 없고, 물이 없는 물고기도 죽을 수밖에 없다. 사회와 인간이 문학 속에서 같은 비중으로 다뤄져야 옳다는 문학관을 지니고 오랫동안 작품을 쓰다 보니 긴 생명력을 지닌 셈이다."
'필생의 역작'이라는 수식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윤흥길은 "다음 작품 자료를 챙기고 있고 내년부터 다시 집필에 들어갈 예정"이라면서 "다음 작품을 쓰기 전까지는 이번 작품이 필생의 역작인 건 맞다"고 답했다. 그는 "소설을 못 쓰니까 살 맛이 안나더라"면서 "창작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연명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고 덧붙였다. '황국신민'인 줄 알았다가 된통 당한 최명배가 춘풍이 콧물처럼 내지르던 욕들 중 하나.
예라, 이 똥물에 재운 연후에 가마솥에 처옇고 불땀 좋은 참나무 장작불로 슥 달 열흘 고아대봤자 반분도 안 풀릴 오사리잡놈들 같으니라고!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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