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깔아준 얼음 위 자유로운 문법으로 미끄러지며
'북'에 대한 여러겹 이미지, 한촌의 의미 없이 좋은 삶 사유
"지나친 의미 추구는 시 쓰기에 오히려 큰 방해가 된다"
'당신의 장롱과 당신의 옷을 분리하고 당신의 부엌에서 당신의 수저를 떼어내고 면사무소에 가서 이름을 지웠어요// 저는 이제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되었어요/ 문법을 잊고 마음껏 미끄러질 수 있게 되었어요/ 쨍한 코 끝으로 연못 위에 문장을 쓸 수 있게 되었어요' _ '연못 위에 쓰다' 부분
| ▲ 전라도에서 40여 년 살다가 5년 전 고향인 경북 예천 내성천변에 집을 지어 돌아온 안도현 시인. 그가 이곳에서 누린 삶을 새 시집에 담아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당신을 보내고 난 뒤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이 자신을 결박하고 돌아누워 얼음장을 깔아준 덕분'이다.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아서 좋은 단어들 의미 없이 녹아버릴 돌멩이들'이지만, 이제 '문법을 잊고 마음껏 미끄러질 수 있게 되었'다. 울음을 누르며 '쨍한 코끝으로 연못 위에 문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안도현 시인이 펴낸 12번째 시집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문학동네)는 어머니를 여읜 뒤 '문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소회로 시작한다.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물 한 장만 주셨던 아버지는 안도현이 갓 20대에 접어들 무렵 돌아가셨다. 당시 42세였던 모친 임홍교 여사에게 4형제 중 장남이었던 도현의 무게는 절대적이었다. 그렇게 40여 년, 장남은 모친과 형제들과 더불어 한 세월을 조심조심 건너왔다. 전라도 땅에서 여인을 만나 아이들 낳고 오래 살다가, 5년 전 고향인 경북 예천 내성천변에 집을 지어 돌아와 새 소리를 들으며 풀을 뽑는 삶을 살고 있다. 어머니는 새 집을 미처 보지 못하고 떠났다. 올 초에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던 일도 정년을 2년 앞두고 그만두었다.
이렇게 달라진 환경은, 다르게 만든 시인의 의지는, 이번 시집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4부에 걸쳐 71편을 수록한 새 시집은 틈틈이 스며드는 어머니와, 그가 오래 그리워하고 지향해 온 '북'(北)의 이미지가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다. 이 두 축 사이를 자연 속에서 꽃밭을 일구고 풀과 씨름하며 길어 올린 사유와 함께, 모든 것을 접고 한촌에 내려와 소일하는 태도에 깃든 명징한 시편들이 채우고 있다.
-두툼한 시집이다.
"시를 쓰는 사람은 시를 쓸 때 즐겁지 않다. 여러 가지 고려해야 될 것들이 있고, 독자들이 시를 어떻게 읽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이번 시집 시들을 쓸 때는 조금 힘이 나고, 독자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약간 위로도 되는 것 같았다. 즐겁게 쓴 시들이다."
-무엇이 시 쓰기를 즐겁게 만들었나.
"전주에서 예천 고향으로 돌아와 쓴 시들이다. 고향이라기보다 본향이라고 해야 되나, 아파트 허공에서 내려와 땅에 살게 되면서 처음으로 쓴 시들이라 더 신났던 것 같고, 그 사이에 코로나19도 지나가고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착지하고 살면서 시인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무게가 의외로 가벼워졌다. 시인으로서의 책무보다는 대상을 들여다보며 시가 되는 지점을 고민하고 공유하는 과정들이었다. 보통은 시인이 언어를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언어를 따라 가는 쪽이었다. 언어가 가자는 대로 그냥 따라 가니까 훨씬 자유로워졌다. 나는 첫 행에서 두 번째 행으로 넘어갈 때 힘들어 한다. 그동안 행과 행을 건너가거나 연과 연을 건너갈 때 스스로 규격을 만들어 놓고 그 틀 안에 시를 집어넣으려고 했다면, 이번에는 그런 걸 훨씬 들어낸 상태에서 썼다."

엄마 생전에 당신이 좋다던 땅 '여기 저기 헐어서' 사 드렸고, '야들아 너들 여놔(넣어놔)'라며 통장에 쌈짓돈 남기고 그 땅으로 엄마는 가셨는데, 봄이 와서 돌아본 엄마의 봉분 주변은 난만한 꽃과 연록으로 화려했다. 엄마가 바람났다고 대거리를 하는 시인은 '엄마가 간신히 불구덩이를 벗어나/ 최첨단 화장로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에도 '처음이지, 엄마?/ 시원하시겠네, 정말'이라고 짐짓 억지를 부린 터였다. 꾹꾹 다스리던 통증은 '나만 몰랐다, 한 뼘 남짓 평평한 돌을 들어 올릴 때마다/ 돌 밑의 검은 흙이 울던 것을'이라는 절창, '통각(痛覺)'으로 확장된다.
'북천은 바로 거기에 있어요 북천은 손 뻗으면 닿는 거기에 있어요 북천은 만질 수는 없지만 보이는 곳에 있어요 북천을 가지고 갈 수도 없고 쌓아둘 수도 없지만 북천은 부서지지 않고 흘러내리지 않고 물렁거리지 않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요 북천은 비누처럼 미끌거리고 대파처럼 맵싸하고 비스킷처럼 바삭거려요 이 의미 없이 좋은 북천' _ '북천' 부분
안도현은 '북항'이라는 표제로 시집을 낸 적도 있거니와, 이번 시집에는 '북천' '북문' '북촌' '북행' '북산' '북당' '북벌' 같은 시들이 짬짬이 포진해 있다. 이데올로기가 개입된 '북'의 이미지에서부터 남쪽의 처처에 있는 '북'과 어머니의 처소를 이르는 '북당'에 이르기까지, '의미 없이 좋은', 백석의 시편들이 인도하는 먼 곳의 자작나무숲으로까지 확장되는 '북'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북'이라는 이미지에 집중한 이유는?
"북은 동서남북의 그 방향을 가리키는 북인데 한국 사람들은 좀 다른 의미, 다른 뉘앙스가 있는 북으로 받아들인다. 우선은 남북이 분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북조선의 북이 있고, 그 북은 이데올로기를 함유하고 있는 거라서 여러 가지 오해와 편견들을 몰고 오는 말이다. 알다시피 '북' 자는 방향을 가리키는 북도 있지만, 패배하다 할 때도 북 자를 쓰고 달아나다 할 때도 북 자를 쓰지 않나. 의미가 아주 다양한 그런 언어인데, 남쪽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남북 관계는 살아났다 없어졌다 한다. 예전처럼 '조국은 하나다' 같은, 당위성에 호소하는 그런 목소리를 지금 낼 수 있는 때도 아니고, 그립다고 말하는 것도 너무 옛날 방식이고, 그래서 우리 남쪽의 현실적인 문제와 북쪽에 대한 생각을 다시 버무려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의미 없이 좋은' 배경은?
"시에 들어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일을 사람들은 시를 읽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살아보니 어떤 대상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세계관이나 메시지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시도 언어가 주는 느낌으로 대할 때도 있고, 사람을 만날 때도 느낌으로 만날 때가 있다. 지나친 의미 추구가 시 쓰기에 오히려 굉장히 방해가 된다. 의미 없어도 좋은 게 얼마나 많은가. 의미 없다는 말은, 김현 선생이 말했던 것처럼 문학이라는 것은 무용한 거, 다 쓸데없는 거라는, 바로 쓸데없기 때문에 사람들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말과 통한다."
'나는 손톱 밑에/ 검은 새를 키울 수 있게 되었어요/ 풀어놓았던 새들이 아침마다 찾아왔거든요// 장갑을 벗고/ 풀의 밑동에 손가락을 넣고/ 마당에 나가 식전에 두어 시간 풀을 뽑았죠/ 그리하여 나는 손톱을 얻었어요/ 대지의 멱살을 잡아 풀뿌리를 통째로 들어내면서'_ '손톱' 부분
'풀을 뽑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쇠뜨기/ 애기똥풀/ 개비름/ 개망초/ 도꼬마리// 이름을 한번 불러준 다음 이름을 덜어냅니다/ 이 못된 족속들,/…/ 풀과의 관계,/ 풀에 대한 예의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나는 풀 뽑으러 이 세상에 왔습니다' _ '풀 뽑는 사람'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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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도현은 "그동안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를 써 보지 못했다"고 후회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까매진 손톱 밑에 검은 새를 키운다는 발상이 흥미롭다. 풀도 생명인데 너무 타박하는 거 아닌가?
"봄 여름에는 해가 부옇게 밝아오기 시작하기 전에 2시간 이상 거의 매일 풀을 뽑는다. 풀을 뽑다 보면 계절마다 돋아나는 종류도 다 다르고, 뽑아 올렸을 때 달고 있는 흙의 무게나 모양도 다르다. 농작물을 수확하기 위한 풀 뽑기가 아니라 나에게는 놀이 같은 것이다. 풀 뽑는 일로 일상을 사는 시인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 풀을 뽑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건 복이다. 풀을 뽑을 때만큼은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다. 풀이 그냥 한두 개 돋아나는 게 아니라, 이 놈들은 인해전술로 쳐들어오기 때문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된다."
안도현은 "그동안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를 써 보지 못했다"면서 "거꾸로 말하자면 너무 시에 어떤 의미를 욱여넣으려 했던 것 같다"고 자책했다. 그는 "이번 시집은 조금 말을 줄여도 될 걸 너무 주절거리지 않았나 싶다"면서 "앞으로는 말과 마음을 더 줄여야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촌에 내려가 풀을 뽑으며 살아가는 그가 '세계를 구하는 방법'.
'세계는 눈보라가 구할 것이니/ 세계를 쳐들어서 어깨에 떠메고 가는/ 저 눈보라가 세계를 옮길 것이니/ 처음부터 세계는 없었으니/ 세계를 놓쳤다고 할 수도 없다/ 세계가 없었는데/ 세계가 보인다고 말하고/ 세계를 들어 올릴 거라고/ 크게 소리치던 날들은 끝났다/ 눈이 그치면/ 고양이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창고에 뚫린 구멍을 찾아 막자/ 사다리를 빌려와/ 창고를 구하자' _ '어떻게 세계를 구할 것인가' 부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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