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출신 프랑스어 집필 작가의 번역 생각과 어휘 풀이
자신만의 사유가 투영된 개인사전에 녹아든 소설과 삶
"아름다움의 발견, 희망 없는 인간이 이룰 최후의 승리"
외국어로는 외설스러운 말을 해도 외설로 느껴지지 않는다. 외설스러운 말도 외국어 억양이 들어가면 코믹하게 들린다. 외국 여성과는 외설스럽게 놀기가 어렵다. 외설은 조국애의 가장 깊은 뿌리다. _외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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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후 2주기를 맞은 '참은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 그는 체코에서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이후 1990년대부터는 프랑스어로만 작품을 집필했다. [민음사 제공] |
연전에 타계한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1929~2023)는 모국어야말로 진짜 내밀한 감정과 유대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고 강조했다. '외설은 조국애의 깊은 뿌리'라는 역설이 가능한 배경이다. 쿤데라는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이래 체코에서는 그의 작품이 금서로 묶인 현실에서 '느림'(1990) 이후로는 모든 소설을 프랑스어로 집필했다. 그는 체코어로 쓰인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이 세계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의 '왜곡'에 대한 불만과 슬픔을 내내 토로했다. 외설조차 조국애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사유의 배경이다.
쿤데라가 번역 과정에서 원본에 충실하지 않고 '재미있게' 하게 위해 번역자가 주관적으로 수식하고 자신의 작품인양 착각하는 과정에 괴로워하자, 그의 망명을 도운 프랑스 편집자 피에르 노라가 "그렇다면 자네가 중요시 하는 말들, 자네를 골치 아프게 하는 말들, 자네가 애착하는 말들을 모은 자네의 개인 사전을 써 보면 어떻겠나"라고 제안했다. 쿤데라는 이 제안에 매료됐고, 그 결실로 '89개의 말'을 발표했다. 쿤데라 사후 피에르 노라는 여기에 덧붙여진 12개의 말을 합쳐 101개의 말을 '프라하, 사라져가는 시'와 함께 출간했다.
쿤데라 사후 2주기를 맞아 국내에 소개된 그 책 '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가는 시'(김병욱 옮김, 민음사)는 그가 생각하는 어휘들에 대한 까다롭고 명철한 시각을 드러내면서 소설과 소설가, 삶에 대한 사유까지 흥미롭게 담아낸다. 우선 그는 번역에 왜곡이 많은 것은 오류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원문에 대한 불충실이 체계적"이기 때문이라고 특유의 어법으로 분석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번역은 여자와 같다고. 아름답거나 충실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좋은 영어 테스트를 만들고자 하며, 그래서 그 텍스트가 자기 텍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으려 하고, 나 대신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 편의를 위해서, 그는 곳곳에 적어도 자신이 만든 단어 하나 정도는 덧붙이고, 내가 싼 구문을 체계적으로 뒤엎는다. 내가 고칠 수 있는 건 의미론적 왜곡들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그는 "번역은 충실할 때만이 아름답다"면서 "참된 번역가를 만드는 건 충실성에 대한 열정"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가장 신뢰하는 프랑스어 번역가 프랑수아 케렐의 말을 빌려 "좋은 번역이라면, 그게 번역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인사전의 첫 단어 'Amusant_재미' 해설에서도 "재미가 있는 건 좋지만, 재미있게 하는 건 그리 좋지 않다"고 시작하는 배경이다.
그가 생각하는 '번역자들'이란 중요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보수도 적고, 제대로 된 평가도 좋은 대우도 받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일을 하도록 요구한다"면서 "모든 면에서 저자와 동등한 수준에 있을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저자에게 완전히 종속되어 있기를 요구하는데 그것은 끔찍하다"면서 "그들은 바로 우리가 세계문학이라는 초국가적 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유럽의, 서구의 겸손한 건축가들"이라고 그들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농담'에서 보여주듯 체제와 개인의 농밀한 삶의 엇갈리는 지점과 존재의 자유를 구가했던 쿤데라의 관능적인 어휘들도 흥미롭다. 쿤데라는 'Excitation흥분'이라는 어휘를 '쾌락'과 구분한다. 그가 생각하는 '흥분'은 "즐거움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고, 열정도 아닌 것"이며 "흥분은 에로티시즘의 토대요, 그 가장 깊은 수수께끼요, 그 키워드"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작중인물 대사를 빌려 "인간 성생활의 시작에는 쾌락 없는 홍분이 있고, 그 끝에는 흥분 없는 쾌락이 있다"고 말하거니와, 그가 보기에 에로티시즘이란 단순한 육체의 기쁨을 넘어서는 '의미 이전의 떨림'인 셈이다. 관능을 언어로 옮기는 쿤데라의 어휘는 대단히 섬세하다.
"그녀의 몸은 소극적인 저항을 멈췄다. 에드바르트는 감동했다!" ('우스운 사랑들') 나는 이 '감동했다'라는 말이 마땅찮아 수도 없이 이 말에서 멈추어 섰다. 체코어로는, 에드바르트는 '흥분했다'이다. 하지만 '감동했다'도 '흥분했다'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적절한 말을 찾아냈다. "에드바르트는 꼴렸다!"라고 해야 했다. 왜 이렇게 간단한 생각이 좀 더 일찍 떠오르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이 말이 체코어에 없기 때문이다. 아, 참 부끄러운 일 아닌가. 내 모국어가 꼴릴 줄도 모르다니! _꼴리다
흥분과 쾌락 사이의 기계적이고 동물적인 반응이 '꼴리다'인 셈인데, 체코어에는 적당한 표현이 없다고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그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바람둥이가 두 부류, 즉 서정적 바람둥이(여성에게서 자신의 이상을 찾는 부류)와 서사적 바람둥이(여성에게서 여성 세계의 무한한 다양성을 찾는 부류)로 나뉜다는 얘기가 나온다"면서 "유감스럽게도, 서정과 서사에 대한 이러한 개념이 프랑스인들에게는 너무도 낯설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나는 프랑스어 번역판에서 서정적 바람둥이를 낭만적 호색한으로, 서사적 바람둥이는 방탕한 호색한으로 만드는 데 동의해야만 했다"고 썼다. 그는 "서정은 자신을 고백하는 주관성의 표현이고, 서사는 세계의 객관성을 포착하려는 열정에서 비롯된다"면서 "최선의 해결책이었지만, 조금은 슬픔을 금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생각이 투영된 사전의 어휘들에는 그의 소설론이 녹아 있다. 그에게 '아이러니'는 소설의 본질이다. 소설의 '진실'은 숨겨져 있으며, 말해지지도 않았고 말해질 수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선과 악이 명확히 구분되는 단순화된 세계상을 바라지만, 소설은 이 뿌리 뽑을 수 없는 욕구를 거스르며 우리에게 인간의 본질적 모호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설이란 "작가가 실험적인 자아(등장인물)를 통해 실존의 중요한 주제들을 끝까지 탐구하는 위대한 산문 형식"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초안草案에서 작품까지 나아가는 길은 무릎으로 기어가는 길"이라는 노르웨이 시인 홀란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작품'과 여타 사사로운 글들의 차이를 적시한다. 창작의 고통 없이, 성찰 없이 완성된 텍스트는 결코 '작품'이 아니라는, 고통을 통해 태어난 글만이 예술의 경지에 가 닿을 수 있다는 말은 글쓰기의 고통에 늘 함몰돼 있는 이들에게는 위로의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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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란 쿤데라는 "소설은 본질적으로 아이러니의 예술"이라며 "그 소설이 발하는 빛은 세월이 흘러도 어두워지지 않는다"고 썼다. [위키미디어] |
여러 흥미로운 어휘 풀이에 이어지는 장문의 산문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 詩'는 쿤데라의 프라하 찬가, 혹은 비탄의 헌사로 읽힌다. 그는 "1968년의 러시아의 침공은 60년대 세대 전체를 쓸어내 버렸고, 더불어 그 이전의 현대 문화 전체를 쓸어내 버렸다"면서 "우리의 책들은 프란츠 카프카나 체코 초현실주의자들의 책들과 같은 지하실에 갇혀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쿤데라가 "죽은 자가 된 산 자들과 두 번 죽은 자가 된 죽은 자들이 나란히 갇혀 있다"고 덧붙인 배경에는 프랑스 망명 이후 그의 모든 책이 체코에서 금서가 됐고 카프카로 상징되는 프라하의 지적·문화적 역량이 지워져버린 사태가 자리 잡고 있다. 1989년에 이르러 이른바 '벨벳혁명'으로 체코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는 혁명에 성공했다.
카프카 전문가들은 카프카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는지 아닌지를 놓고 많은 논쟁을 벌였지만, 쿤데라는 희망은 없다는 쪽이다. 그는 다른 게 있다면 "카프카는 삶이 불가능한 그런 상황조차도, 기이한, 검은 아름다움으로 발견한다"는 것인데 "아름다움, 그것은 더는 희망이 없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후의 승리이며, 예술에서의 아름다움이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것이 발하는 돌연한 빛"이라고 말한다. 쿤데라는 그 빛의 미래를 믿는다.
위대한 소설들이 발하는 그 빛은 세월이 흘러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인간은 늘 인간의 실존을 망각하기에, 소설가들이 이룬 그 발견들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부단히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_아름다움(과 인식)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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