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2025 노벨문학상 "묵시록적 공포의 한가운데에서 예술의 힘을 확증"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5-10-10 06:26:04

노벨문학상 수상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종말론적 세계 속에서 긴 호흡 문장으로 희망을 찾는 고투
'예술만이 끝을 견딜 수 있다'는 숭고한 신념을 높이 평가
"인간이 빚어낸 아름다움, 희망과 더 나은 세계 향한 열망"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은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László Krasznahorkai)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작품 세계를 "묵시록적 공포의 한가운데에서 예술의 힘을 다시 확증하는, 강렬하고도 예언적인 작품 세계"로 평가하며 수상의 의미를 전했다. 그의 문학은 난해하고 도전적인 문체, 종말론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정서, 그리고 인간 존재의 불안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탐구로 정의된다. 

 

▲ 2025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그의 문장은 절망 속의 기도처럼 아름답다. 그의 긴 문장들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며, 바흐의 푸가처럼 현실의 리듬을 반복한다. [Déri Miklós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크러스너호르커이는 1954년 1월 5일 헝가리 남동부의 작은 도시 줄러(Gyula)에서 태어났으며,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법학과 헝가리 문학을 공부했다. 그의 학위 논문은 망명 작가 샨도르 머라이의 작품을 연구한 것이었다. 그는 이미 2015년에 헝가리 작가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계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았다.

절망의 영원한 원: 데뷔작 '사탄탱고'


1985년에 출간된 그의 첫 소설 '사탄탱고(Sátántangó)'는 헝가리 문단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직전인 1980년대 헝가리의 암울한 배경, 즉 버려진 집단농장에서 살아가는 빈민들의 절망적인 삶을 그린다.

소설의 핵심 사건은 모두가 죽은 줄로 알았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 이리미아시와 그의 동료 페트리나가 귀환한다는 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희망 혹은 최후의 심판을 전하는 메신저처럼 받아들이며, 절망적인 삶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푼다.  '사탄'의 기운은 그들의 노예적 도덕성과 거짓된 카리스마 속에 깃들어 있으며, 모든 인물은 절망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이리미아시는 사실 공산당에 부역하는 정보원이었으며, 그의 귀환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닌, 체제에 유린당하고 고통의 악순환에 포박되게 하는 '절망의 묵시화(默視畵)' 과정이었다.

'사탄탱고'는 독특한 형식 실험을 보여준다. 작품의 제목처럼 '앞으로 여섯 스텝 뒤로 여섯 스텝'을 밟는 탱고의 스텝에 맞춰, 1부가 1장에서 6장으로 순차 진행된 후, 2부는 역순으로 6장에서 1장으로 맺어지며 영원한 악순환을 이루는 순환 구조를 취한다. 소설 첫머리에는 카프카의 경구인 "그렇다면 나는 기다리느라 그것을 놓치겠지"가 인용되어, 작품 전체의 절망적 운명을 예언한다. 이 소설은 벨라 타르(Béla Tarr) 감독과 협업하여 1994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
 

▲ 국내에는 '알마' 출판사에서 꾸준히 단독으로 번역 출간해온 6종이 소개돼 있다. 왼쪽부터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서왕모의 강림' '세계는 계속된다' '라스트 울프' '뱅크하임 남작의 귀환'.

 

묵시록의 대가와 거대한 고래의 사체


크러스너호르카이는 두 번째 주요작 '저항의 멜랑콜리(The Melancholy of Resistance, 1989)'를 통해 미국 비평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으로부터 "현대 문학의 묵시록의 대가(Master of the Apocalypse)"라는 극찬을 받았다. 손택은 이 소설을 "가장 오싹한 상태의 황량함에 대한 해부서이자, 그 황량함에 대한 저항의 지침서"라고 평했다.

이 작품은 카르파티아 산맥의 골짜기에 위치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광기와 불안의 서사를 펼친다. 마을에 거대한 고래의 사체를 전시하는 기괴한 유령 서커스단이 도착하면서, 폭력과 파괴가 번진다. 이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어마어마한 거수(巨獸)'인 고래는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Leviathan)과 포개지며, 동시에 마을 전체를 광기로 몰아넣는 트로이 목마 같은 예술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소설 속에는 질서와 혼돈의 투쟁, 공포의 확산이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보여주는 꿈결 같은 장면과 그로테스크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등장인물 중 하나인 벌루시커는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성스러운 바보'의 전형으로, 세상과 격리된 음악학교 학장 에스테르 죄르지와 기묘한 우정을 나눈다. 이 소설은 서구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암울한 역사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으며, 벨라 타르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소설 제목에 들어간 단어 '멜랑콜리'는 정작 책 속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표지 밖에서' 독자를 지배하는 '두려움과 슬픔'의 개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과 동양으로의 여정


크러스너호르카이 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길고, 구불구불하며, 마침표가 거의 없는 문체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서술은 한 문장으로 한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 허다하며, 영문판 번역가는 이를 "느리게 흐르는 용암 같은 서사"에 비유했다. 작가 자신은 마침표를 "문장 사이의 인위적인 경계"로 보고 거부하며, 이는 현실이 멈춤 없이 흘러가는 문장과 같다는 신념을 형식적으로 구현한다. 이 문체는 읽기에는 고된 수고가 따르지만, 집중을 견뎌낸 독자에게는 도취되는 문학적 체험으로 돌아온다.

세 번째 주요작인 '전쟁과 전쟁(Háború és háború, 1999)'에서 그는 헝가리 국경을 넘어 세계로 시야를 확장했으며, 뉴욕을 무대로 삼기 위해 미국 시인 앨런 긴스버그(Allen Ginsberg)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후의 걸작인 '뱅크하임 남작의 귀향(Baron Wenckheim's Homecoming, 2016)'은 망명에서 돌아온 인물을 통해 고향에 대한 애착이 결국 '환상'이자 '안정성에 대한 욕구'와 관련된 것임을 보여주는 '고귀한 클리셰'에 대한 탐구였다.

2000년대 이후 크러스너호르카이는 중국, 일본 등 동양으로 눈을 돌리며, 그의 종말론적 세계관에 동양의 사유를 통합했다. '서왕모의 강림(Seiobo There Below, 2008)'은 그 결과물로, 피보나치 수열에 따라 배열된 17편의 단편집이다. 이 작품은 아름다움과 예술 창조의 본질을 탐구하며, 일본 신화 속 서왕모(Seiobo), 3000년마다 불사의 열매가 열리는 정원을 지키는 여신 전설을 모티프로 삼아 '예술의 창조'에 대한 은유를 펼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동양 미학(모노노아와레, 와비사비)을 기독교적 초월미학과 융합하려고 하며, "미적 체험의 좌절과 눈멂"이라는 주제를 변주한다.
 

▲ 크러스너호르카이 라슬로 캐리커처. [노벨상 홈페이지 캡처]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가


크러스너호르카이는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그의 최신작인 묵시록적 대작 '헤르슈트 07769 (Herscht 07769, 2021)'에서도 폭력과 아름다움이 '불가능하게 함께 있는' 역설을 증명한다.

그의 문학적 위치는 클로드 시몽, 토마스 베른하르트, 주제 사라마구, 로베르토 볼라뇨 등과 비교되지만, 특히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에 이르는 중앙유럽적 부조리와 그로테스크 계보 속에 자리한다. 소설가 W.G. 제발트는 그의 통찰력의 보편성이 고골의 '죽은 혼'에 필적하며, 현대 저작의 자잘한 관심사들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평가했다.

크러스너호르카이는 "종말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그 속에서 살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회 질서의 허약함을 투명하게 꿰뚫는 시선과 예술의 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동시에 보여준다. 노벨위원회는 그의 문학이 세계의 파괴 속에서도 예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며, "예술만이 끝을 견딜 수 있다"는 숭고한 신념을 품고 있음을 높이 평가했다. 절망적 세계를 그려온 그가 상정하는 아름다움은 역설적으로 희망에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붙잡을 수 없고, 다만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 희망과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열망으로 빚어진 창조물이다."_ 'The Yale Review' 2025.

 


·1987년 독일 유학. 이후 몽골, 중국, 미국, 일본 등 다양한 지역을 넘나들며 생활.
·1989년 '저항의 멜랑콜리 (Az ellenállás melankóliája)' 출간.
·1992년 '우르가의 죄수 (Az urgai fogoly)' 출간.
·1993년 '저항의 멜랑콜리'로 독일 베스텐리스테 문학상 수상
·1998년 헝가리 산도르 마라이상 수상
·1999년 '전쟁과 전쟁 (Háború és háború)' 출간.
·2003년 '북쪽에서 언덕, 남쪽에서 호수, 서쪽에서 도로, 동쪽에서 강' 출간.
·2004년 '천국 아래 파괴와 슬픔 (Rombolás és bánat az Ég alat)' 출간. 헝가리 최고 권위 문학상인 코슈트상 수상.
·2008년 '서왕모의 강림 (Seiobo járt odalent)' 출간.
·2013년 '사탄탱고'로 전미도서상 번역문학상 수상
·2015년 헝가리 최초로 인터내셔널 맨부커상 수상.
·2016년 '뱅크하임 남작의 귀환 (Baron Wenckheim's Homecoming)' 출간. 이 소설로 전미도서상 번역문학상 2회째 수상(2019)
·2021년 오스트리아 유럽 문학상 수상.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 (헝가리 작가로는 2002년 임레 케르테스 이후 두 번째)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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