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악재 덮친 한국 경제, 돌파구는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5-10-06 09:00:36

3500억달러 선불 요구에 韓美 협상 공회전…"내년으로 넘어갈 듯"
건설경기 부진·내수 침체 심각…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확장재정은 필요…AI 등 미래 기술·인력 투자해야"

대내외 악재가 동시에 덮치면서 한국 경제가 위험에 처했다. 당장의 현실보다 미래가 더 어둡다는 게 큰 두통거리다.

 

한미 관세협상은 몇 개월째 도돌이표만 지속될 뿐,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수출이 핵인 한국 경제에 우울한 소식이다.

 

건설경기는 극도의 부진에 빠졌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덕에 살아나는 듯 하던 소비도 한 달 만에 다시 고꾸라졌다.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대 초반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500억 달러 선불'은 불가능한 요구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말 미국이 한국에 부과 중인 상호 관세율을 낮추는 대신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의 내용에 기본적으로 합의했다. 정부는 무역합의를 이룬 것과 8월 한미 정상회담 성과 등을 자축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세부 사항에서 이견이 너무 커 합의가 안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국 정부는 투자금 대부분을 대출과 보증으로 메꾸겠다는 입장이나 미국 정부는 당장 현금으로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대미 투자를 위한 펀드를 조성한 뒤 해당 펀드에 한국 정부가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송금하란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한국이 미국에 투자할 금액 3500억 달러는 선불"이라며 현금 요구를 분명히 했다. 3500억 달러는 한국 외환보유고의 80%가 넘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5일 KPI뉴스와 통화에서 "3500억 달러 선불 요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차라리 관세를 내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같은 인식이라 미국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은 공회전만 하고 있다.

 

정부는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를 요청했으나 미국은 고개를 젓는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통화스와프 체결을 낙관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세부 사항 합의 없이 덜컥 3500억 달러 투자 약속을 한 게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자연히 협상은 길어질 전망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관세협상이 내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예측했다.

 

▲ 경기 평택항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뉴시스]

 

만약 내년에도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한국 경제가 입는 타격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557억 달러로 전체 흑자 규모(518억 달러)를 뛰어넘었다. 대미 무역을 제외하면 적자란 뜻이다.

 

협상에 성공해 상호 관세율이 15%로 내려간 일본, 유럽연합(EU) 등보다 높은 관세를 물면서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건 힘든 일이다. 특히 협상 실패는 단지 상호 관세 25%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부터 의약품에 품목별 관세 100%를 부과했고 반도체에도 고율 관세를 예고했다. 한국의 핵심 수출품인 반도체에 고율 관세가 매겨지면 충격이 무척 클 것으로 우려된다.

 

김상봉 교수는 "내년까지도 관세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연간 경제성장률을 0.5~0.6%포인트 가량 낮추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짚었다. 안 교수는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 초반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8%다.

 

고조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수출뿐 아니라 내수도 각종 악재에 시달리며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무엇보다 건설경기가 극히 부진한 게 경제 체력을 갉아먹고 있다. 지방에 미분양이 쏟아지면서 건설사들이 몸을 사리는 추세다. 8월 건설기성(통계청 집계)이 전월 대비 6.1% 줄어드는 등 올해 내내 건설투자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한은은 건설경기 침체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1.2%포인트 후퇴시킬 것으로 추산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사고에 대한 처벌·규제를 거듭 강화한 점도 악재"라면서 "이재명 정부 집권 후 중대재해 사고로 멈춰선 건설현장만 248곳에 달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건설경기는 내수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지속적인 건설경기 부진은 내수 침체를 야기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8월 소매판매(전월 대비 –2.4%)가 부진하면서 민생회복 소비쿠폰 덕에 살아나는 듯 하던 소비도 '반짝 효과'에 그치는 양상이다.

 

안 교수는 "수출 부진이 내수에도 마이너스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이미 설비투자가 부진한 양상"이라고 했다.

 

동시에 원·달러 환율은 뛰고 있으며 물가는 불안하다. 김상봉 교수는 "우리나라는 물가 지표에 집값이 제외돼 정확한 통계라 할 수 없다"며 "집값을 포함하면 물가상승률이 2%포인트 가량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월 대비)은 1.7%로 안정적이다. 그러나 여기에 2%포인트를 가산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 된다.

 

경기는 침체 모드인데 물가는 불안하니 스태그플레이션 염려까지 나온다. 김상봉 교수는 "한국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 미래를 위한 투자를 제안한다. 김상봉 교수는 "확장재정은 필요하나 소비쿠폰보다는 기술과 인력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영익 교수도 "인공지능(AI)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립증권리서치사 더프레미어 강관우 대표는 "정부가 약속대로 증권시장 활성화에 진력해야 한다"며 "증시가 오르면 '부의효과'로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자산 가격 상승이 소비 진작으로 연결되는 걸 부의효과라 한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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