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둘러싼 보험업계-의료계 '총성 없는 전쟁'

안재성 기자 / 2023-05-30 16:46:41
손해율 급등에 보험사 실손보험 지급 심사 강화…거절 사례 급증
"보험업법 개정안으로 상세한 데이터 획득…보험금 누수 막을 것"
"보험사 지급 거절로 병·의원 '몸살'…개정안 통과는 치명타"
"보험업법 개정안 논란은 핵심이 '돈'이다. 자신의 수입을 지키려는 의료계와 실손의료보험 적자를 해소하려는 보험업계의 '총성 없는 전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30일 "이 전쟁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지난 16일이 아니라 작년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실손보험 활용한 비급여 진료로 돈 쓸어 담은 병·의원 

병·의원들이 비급여 진료에 실손보험을 적극 활용한 점이 전쟁의 발단이었다. 국내 진료는 국민건강보험 보장 여부에 따라 크게 급여와 비급여 진료로 나뉜다. 

필수 의료 등 급여 진료는 건강보험이 보장하고 저렴한 진료 혜택을 위해 정부가 가격도 통제한다. 비급여 진료 가격은 자유시장에 맡겨져 있다. 

의사들은 당연히 비싼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비급여 진료를 선호한다. 세칭 '피안성'으로 불리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의 인기가 높은 것도 비급여 진료 종류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싼 진료비를 낼 수 있는 소비자들은 한정적이므로 의사 모두가 돈을 잘 벌 수는 없었다. 그런 구도를 단숨에 바꿔버린 게 실손보험이었다. 

실손보험은 가입자 수가 약 4000만 명에 달해 제2건강보험으로 불린다.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진료행위라면 소비자들도 부담이 한결 덜하다. 병·의원은 "이 진료는 실손보험금이 지급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환자들을 설득했고, 환자들은 응했다. 

결국 비급여 진료 횟수와 금액이 폭증했다. 흔히 알려진 백내장, 도수치료 뿐 아니라 피부병, 성장치료, 언어치료 등 다방면의 비급여 진료에서 실손보험금이 청구됐다. 

특히 피부과에서는 아토피, 피부건조증, 지루성 피부염 등 질병 치료뿐 아니라 여드름 제거 시술 등에도 실손보험금을 요구했다. 사실상 피부미용을 실손보험으로 처리한 것이다. 

물론 실손보험 약관에 '생활에 불편을 끼칠 정도로 심각한 경우에 한해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그쯤은 병·의원도 다 파악하고 있다. 의사들은 "매우 심각하다"며 진료비 청구서를 작성해 환자에게 건네줬다. 환자는 이를 근거로 보험금을 청구했다. 

피부과 개원의 A 씨는 "최근 몇 년 간 각종 비급여 진료에 실손보험이 광범위하게 이용됐다"며 "개원 몇 년 후 빌딩을 세운 의사까지 나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전문의는 최소 연봉 수 억 원이다", "일반의가 피부과에서 레이저만 쏴도 세전 월 1000만 원 이상씩 번다" 등의 소문도 실손보험을 활용한 비급여 진료에서 비롯됐다. 

▲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로 보험업계는 실손보험금 누수 방지를 기대한다. 반면 의료계는 병·의원 수입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로 인해 실손보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매년 실손보험료를 두 자릿수씩 인상해도 위험손해율이 130%를 넘나들었다. 

견디다 못한 보험사들은 실손보험금 누수 방지로 움직였다. 금융당국도 찬성했다. "비급여 과잉의료 항목 보험금 지급 기준을 정비하겠다"는 2021년 12월 당시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이 전쟁 개막을 알렸다. 

"개정안 통과 시 실손보험 손해율 급감할 듯"

실손보험금 누수를 막는다는 건, 곧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겠다는 뜻이다. 금융당국 승인을 얻은 보험사들은 작년부터 다수의 실손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기 시작했고 올들어 거절 비중이 상승했다. 보험사들은 실손보험금을 청구한 가입자에게 현장 실사나 제3자 의료자문 동의를 요구했다. 

현장 실사는 보험사 직원이 해당 병·의원을 방문해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지는 걸 의미한다. 제3자 의료자문 동의는 보험사가 파견한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는 걸 말한다. 둘 다 환자와 병원 모두에게 달갑지 않은 요구인데, 거절하면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 거절로 대응했다. 실손보험금 지급 거절 횟수가 증가하자 실손보험을 믿고 비급여 진료를 받는 환자들이 감소했다. 

보험사들은 한 술 더 떠 가입자에게 "X월 X일부터 OO분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습니다"란 내용의 문자·카톡을 발송했다. 분야는 피부 진료, 성장치료, 언어치료 등 다양했다. "보험금 주지 않을 테니 비급여 진료받지 말라"는 엄포였다. 소비자 B 씨는 "지금까지 자녀의 언어치료를 실손보험으로 처리했는데, 앞으로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아무 이유 없이 통보성 메시지를 보내면 금융당국에서 제재한다"고 말했다. 보험사의 모든 행위는 금융당국과 사전 합의가 되어 있다는 얘기다. 

피부과 개원의 A 씨는 "개원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고 올해 초 개원했는데, 보험사들이 연달아 실손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바람에 어려운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실손보험금 지급 거절이 너무 많아 병·의원이나 환자들의 소송 사례도 급증 추세"라고 전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심사를 받으며 전쟁은 달아오르고 있다. 보험업계는 "소비자 편의성 증대"라며 찬성하고 의료계는 "개인 의료정보가 유출된다"며 반대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모든 서류를 병·의원으로부터 직접 받을 수 있게 되면, 철저하게 검증해 부풀린 금액을 잡아낼 수 있다"며 "실손보험금 누수가 대폭 감소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병·의원에서 보험사로 넘어가는 데이터 중계기관을 심평원으로 하는 건 핵심 사안"이라며 "심평원이 막대한 비급여 진료 데이터를 얻게 되면 급여 진료뿐 아니라 비급여 진료까지 통제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실손보험금 누수 방지는 곧 의사 수입 감소다. 의료계 관계자는 "개원의들 사이에서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 시 수입이 크게 줄어들 거란 공포심이 매우 크다"며 "요새 분위기는 사생결단 수준"이라고 했다. A 씨는 "의사들 좋은 시절은 다 간 듯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KPI뉴스 / 안재성·황현욱 기자 seilen78@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안재성 기자

안재성 / 경제부 기자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