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작아 보이는 순간"을 기록하다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3-05-12 11:08:03
[인터뷰] 제12회 온빛사진상 수상자 최형락 사진가
2년 연속 우크라이나 전쟁 실상 카메라에 담아
전쟁에 굴하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모습에 초점
"침략군 죽음에까지 슬픔 느끼는 모습이 인상적"
국내 유일의 다큐멘터리 사진상인 온빛사진상의 무대는 우크라이나였다. 수상작은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실상을 담은 일련의 사진이다. 

이 상의 주인공은 프리랜서 사진가 최형락(43) 씨. 지난달 하순 열린 제12회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온빛혜윰프로젝트상을 받은 최 사진가를 15일 오전 서울 상도동에서 만났다.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해 3월 초. 그는 "고통은 기록되어야 한다"며 자비로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갔다. 우크라이나 접경국인 폴란드·슬로바키아·헝가리를 보름간 넘나들었다. 그러면서 수많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만났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취재 제한으로 정작 우크라이나에 들어가지 못했다.

▲ 지난해 3월 폴란드 메디카 국경 검문소의 우크라이나 난민. [최형락 사진가 제공]

지난 3월 중순 다시 우크라이나를 찾았다. 이번엔 다큐엔드뉴스코리아와 협업해 취재 허가를 받았다. 25일 여정 중 17일을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 

수도 키이우를 시작으로, 외곽의 부차·이르핀·호스토멜·보로디앙카를 돌아보았다. 전쟁 초기 러시아에 점령됐던 부차·이르핀은 러시아군 소행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부차에서 만난 주민의 전언은 뭉클했다.

"부차에서 한 아저씨를 만났다. 피란 갔다 오니 총탄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집 앞에 불탄 탱크가 있고 그 안에 러시아군 여러 명이 죽어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한 병사의 신분증 사진을 내게 보여줬는데 앳된 얼굴의 2002년생이었다. 아저씨는 '이게 전쟁이다'라며 젊은이를 투입해 죽이고 죽게 만드는 권력에 분개했다. 피해자이면서도 침략군 병사의 죽음에까지 슬픔을 느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정 후반부엔 러시아 국경 근처인 북부 도시 체르니히우의 외곽 마을 슬로보다에 주로 머물렀다. 러시아에 한 달여 점령됐던 이곳에서 최 사진가는 여러 주민을 만났다. "포격으로 머리가 날아간 사람" 얘기를 하는 할머니, 파괴된 집을 보여주며 울먹이는 여성 등등. 또 불타 망가진 탱크 같은 격전의 잔해를 곳곳에서 접했다. 식량 창고가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집마다 땅속에 작은 식량 창고가 있다. 보통 1~1.5평, 커봤자 2평 정도다. 러시아 점령기에 마을 사람들은 러시아군에게 집을 내주고, 한 달 넘게 창고에서 지내야 했다. 2평 창고에서 9명이 자야 했던 가족도 있는데, 앉아서 기대어 잠을 청해야 했다더라. 추운 때였는데 난방도 안 되는 곳에서. 화장실도 허락받고 다녀야 했다고 한다."

여덟 살 꼬마 일리야는 최 사진가의 손목을 잡고 마을을 안내했다. 사격 자세를 흉내 내며 "여긴 러시아군이 총 쏜 곳", "저긴 우리가 숨었던 곳"이라고 알려줬다. 한 웅덩이 앞에 데려가선 "그냥 연못 아니에요. 포탄 떨어져 생긴 거예요"라고 했다.

최 사진가는 일리야를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감당하게 될 트라우마 문제 때문이었다. "지금은 괜찮아 보이지만 전쟁, 점령의 어두운 기억이 마을 사람들에게서 사라질 수 있을까.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 괴롭힐 수도 있지 않을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법. 격전지는 포화에 휩싸여 있지만, 러시아군이 패퇴한 슬로보다에선 다시 한 해 농사가 시작됐다. 전쟁 중에도 땅을 일구는 모습을 최 사진가는 카메라에 소중히 담았다.

"전쟁은 총알과 미사일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으로도 기록되어야 한다. 보통의 매스컴 취재는 미리 결론을 짓고 그것에 부합하는 장면들을 찾아다니느라 여유가 없기 마련인데, 그러지 않으려고 애썼다. 빈 마음으로 간 덕에, 감자를 심으려 땅을 일구던 발렌티나 할머니 같은 슬로보다 사람들의 일상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 지난달 우크라이나 북부 도시 체르니히우 외곽 마을 슬로보다에서 발렌티나 할머니가 감자를 심기 위해 밭을 일구고 있다. 발렌티나의 집은 포격으로 완전히 부서졌고 집 뒤뜰에는 불탄 러시아군의 탱크가 남아 있다. [최형락 사진가 제공]

최 사진가는 인터뷰 말미에 사진 몇 장을 보여줬다. 주로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남녀가 어울려 즐겁게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키이우 테아트랄나 역의 일요일 오후 풍경이다. 매주 일요일 이렇게 춤췄는데, 전쟁 때문에 중단됐다가 올해 초 재개됐다. 촬영하던 내가 지칠 정도로 춤이 2시간 넘게 이어졌다. 활력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봄은 춤을 추어야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감자를 심으려는 할머니와는 다른 차원에서 전쟁에 굴하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최 사진가에겐 "전쟁이 작아 보이는 순간"이었다.

최 사진가 홈페이지에 가면 우크라이나 현장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

최 사진가는 2009~2021년 프레시안에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영주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과 밀양 송전탑 사태의 기록으로 2015년 개인전 '두 마을 이야기'를 열었다. 2022년에는 12명의 사진가가 참여한 세계 분쟁 지역 사진전 '금지된 현장'에 함께했다.

▲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테아트랄나 역에서 춤추는 시민들. [최형락 사진가 제공]

▲최형락 사진가. [최형락 사진가 제공]

KPI뉴스 / 탐사보도부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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