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끝나 사고 흔적 사라져…주변인 "사고 몰라"
기소된 14건 중 첫 판결…원청 대표에 집유 3년
"취지 못 살린 온정주의" vs "산안법보다 강한 형량" 19일 경기 고양시 모처에 위치한 중소건설사 온유파트너스 사무실. 이 회사는 최근 법원 판결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처벌 1호'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하청을 준 건설 현장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기자가 이날 찾은 사무실에 불은 켜져 있는데 문은 잠겨 있었다. 노크에도 반응이 없었다. 문 앞에서 회사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고 신분과 취재 목적을 밝혔다. 사무실 안에 있던 남성은 "관심 없습니다"라고 한마디만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기자가 지난 12일 이곳에 처음 왔을 때도 회사 측은 똑같은 반응이었다. 다만 일주일 전엔 남성이 "그 건과 관련해선 인터뷰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라고 전한 것만 달랐다.
이 회사를 찾은 건 하청을 줬던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 때문이다. 사고는 지난해 5월 14일 고양시의 한 요양병원 증축 공사 현장에서 일어났다.
당일 오후 1시 46분쯤 고정 앵글 묶음을 윈치(반자동 도르래)로 올리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5층(16.5m 높이)에서 하청 노동자 김모 씨가 묶음을 건물 내부로 당길 때 앵글이 벨트에서 빠졌다. 94.2kg의 묶음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 반동으로 김 씨도 추락했다. 38분 뒤 김 씨는 인근 병원에서 숨졌다. 향년 48세.
묻힐 수도 있는 죽음이었다. 추락사는 건설 현장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재해 조사 대상 사망 사고의 41.6%(644명 중 268명)가 추락사였고 사망자의 53%(341명)가 건설업 종사자였다.
그러나 김 씨 죽음은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지난해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이다.
지난 6일 관련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14건 중 처음으로 김 씨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1호 기소 사건은 아니지만, 피고인들이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면서 재판이 빠르게 진행돼 '1호 판결'이 나왔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 김동원 판사는 6일 판결에서 원청인 온유파트너스 정모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원·하청 현장소장에게도 징역형(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원·하청 업체 및 원청 안전관리자는 벌금형을 받았다.
원청 대표의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피고인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건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다. 원·하청 책임자들은 △작업장 상태 사전 조사와 작업 계획서 작성 △추락 위험이 있는 곳에 설치한 안전 난간을 임시로 해체할 경우 추락방호망 설치 △추락방호망 설치가 곤란할 경우 노동자에 대한 안전대 착용과 부착 설비 설치 등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 중 어느 것도 이행하지 않았다.
윈치 상태를 방치한 것도 문제였다. 고정 앵글 묶음은 두 군데 이상을 묶어 인양해야 하지만, 사고 현장의 윈치는 자전 방지 기능이 없어 그렇게 하기 어려웠다. 책임자들이 이를 방치하면서 노동자들은 묶음에 한 줄만 걸고 불안정한 상태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부는 원·하청 책임자들이 "업무상 의무 중 일부만을 이행하였더라도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하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형벌을 줄인 요소로 △피고인들이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위로금 등을 전달한 것 △유가족이 처벌을 원치 않는 것 △책임을 피고인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다소 가혹하다는 것 등을 제시했다. 또 "건설근로자 사이에서 만연하여 있던 안전 난간의 임의적 철거 등의 관행도 일부 그(=사망) 원인"이라고 적시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14일 확정됐다. 검찰과 피고인이 항소 기간(판결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 내 항소하지 않았다.
반응은 엇갈렸다. 경총 관계자는 "대표라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보다 더 강한 형량을 선고했다"며 불만을 표했다.
노동계는 원청 대표 책임을 인정한 건 긍정적이지만 낮은 형량에 집행유예가 더해진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했다. 박다혜 변호사(민주노총 금속노조법률원)는 "과실이 아니라 고의 문제인데, 법원은 과실범에 대한 양형 관행을 들고 왔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취지를 법원이 이해하지 못하고 가해자 측에 온정주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온유파트너스를 찾은 이날과 12일 모두 사고 현장에도 갔다. 증축 공사가 끝나 사고 흔적은 사라졌다. 현장 근처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작년에 가림막 치고 공사하는 건 봤는데 사고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일한다는 40대 여성은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김 씨 같은 하청 노동자가 언제쯤이면 허망한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
KPI뉴스 / 탐사보도부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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