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구름에서 나와 환하게 이별하기"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03-30 17:07:51
두번째 소설집 '구름해석전문가' 펴낸 부희령
정직하게 직면하며 11년 동안 숙성한 단편들
온전한 '집' 찾아 방황하며 '이별'의 순기능 탐색
"이별은 관계 단절 아닌, 과거 '나'와 헤어지는 일"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경은 안개라고 여기던 희뿌연 덩어리들이 구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경은 달빛과 뒤섞인 구름 속에 서 있었다.'

▲첫 소설집 '꽃' 이후 11년 만에 두 번째 소설집을 묶어낸 부희령.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경'은 안나푸르나 산군을 둘러보려면 들러야 하는 포카라에 와 있다. '선우'가 선심 쓰듯 준, 그가 쓰던 랩톱을 안고 왔다. 정작 비밀번호를 모르니 열리지 않는다. 이러저리 애를 써보지만 허사다. 망설이다가 선우의 랩톱을 숙소에 놓아둔 채 가벼운 몸으로 산을 오르다가, 안개인 줄 알았는데 자신이 '달빛 섞인 구름' 속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몽환적인 구름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산을 명확하게 볼 수 없게 만드는 모호한 차단막이기도 하다. 선우를 알기 위해 랩톱과 씨름하던 이경이 구름 속에서 깨달은 건 무엇이었을까. 부희령이 11년 만에 상재한 두 번째 소설집 '구름해석전문가'(교유서가) 표제작이다.

-문득 생각났는데 선우의 노트북 이름이 swcloud이거든요. 소설에서 구름은 헤아릴 수 없는 상대방의 마음이기도 해요. 결국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어떤 지점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안개처럼 모호하기만 하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지점을 통과해서 현 상태의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다른 차원의 상태가 되어야 시야가 명료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부희령을 만나고 온 날 심야에 날아온 톡은 구름이 지니는 모호한 상징에 방점을 찍은 것이었다. 그날 오후에 대면했을 때는 구름이 시야를 가리는 '혼돈'보다는 '몽상'에 가까운 쪽이었다. 그는 "'뜬구름 잡는 몽상가'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오랜 시간 부끄러웠다"면서 "이제는 다시 내가 몽상가라는 사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낮에 말했다.

'몽상'과 '모호함' 사이에 놓인 구름을 해석하려면, 그가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하며 써내려간 단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표제작을 포함해 6편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은 '구름'에서 나와 자신과 세상을 보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5편과 이른바 중상류 엘리트 부르주아들의 차가운 가슴을 들여다보는 1편으로 구성됐다.


부희령에게 구름 속은 자신의 '집'을 완성하고 찾아나가는 과정의 미로이기도 하다. 그에게 '집'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정체성의 뿌리를 '만주'에서부터 탐색하기 시작한다. '만주'는 1930년대 원산과 만주를 배경으로 전개되거니와 부희령의 조부모 이야기를 얼개로 삼았다.

'임돈'은 동경 유학시절 한눈에 담아둔 피아노 치던 도도하고 우아한 여성 '경옥'과 운명적으로 맺어지는데, 이들 부부의 관계는 여의치 않았다. 딸 기정을 잃고 난 뒤 임돈은 경옥을 원망하며 만주로 떠나고, 그곳 역전에서 패싸움에 휘말려 생을 마친다. 경옥은 임돈을 신뢰하지 못했고 그를 힘들게 했다. 임돈은 죽음에 임박해서야 '구름' 속에서 나와 자신을 본다.

'진실은 단순했다. 임돈은 누구의 세계에도 속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만 속한 사람이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경옥이 아니라 바로 임돈 자신이었다. 세상과의 아득한 거리를 모르핀 삼아 자기만의 세계로 달아나고 또 달아나는 사람이기도 했다.'

'만주'에서 부실했던 집은 '귀가'에서 더욱 어둡게 음각된다. 이 단편은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두텁고 검은 구름 속에서 방황하는 흐름이다. 화자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은 채 내가 너이고, 그 남자와 그 여자가 꿈속의 풍경처럼 겹치고 넘어진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어린시절의 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서 괘종시계 소리를 듣고 있고 '어머니는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다.

▲부희령은 "과거의 내가 쓴 몇몇 소설은 어두운 밤의 한가운데를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슬픔은 공격적이다. 여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남자의 흰 셔츠에는 붉은 핏물이 번진다. 남자의 눈동자가 '달밤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비눗방울' 같다.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두 사람은 내가 버리려고 애쓴 너와 나이구나. …이따금 옛집에 돌아가는 꿈을 꾼다. 꿈에서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인데 집은 너무 낡고 허물어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어둡고 비탄 가득한 이 단편을 부희령은 소설집에서 애초에는 제외하고 싶었다. 이 소설을 쓰던 당시의 작가가 다른 사람 같았다고 했다. 그가 작가의 말에 "과거의 내가 쓴 몇몇 소설은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채 어두 운 밤의 한가운데를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면서 "그 시간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자리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쓴 배경이다. '귀가'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집'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 단편이 '구름해석전문가'라면, '완전한 집'은 자신의 집을 직시하며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단편이다. 아울러 표제작과 함께 '이별'의 순기능을 탐색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구름해석전문가'의 '이경'과 '선우'가 이별의 능선에서 모호한 관계를 드러내는 경우라면, 포카라가 같은 배경으로 설정된 '완전한 집'은 '금희'와 '승문'이 이별 후 다다른 환한 지점을 보여준다. 한때 같이 살았던 승문은 인도로 떠난 뒤 출가했다. 그가 예전에 안나푸르나를 다녀온 뒤 그곳 호숫가에서 집인 줄 알고 가보았더니 벽에 창문까지 달려 있는데 그 뒤는 허공이더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그때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건 마치 내 인생 같구나. 내 인생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누군가가 일부러 세워놓은 벽인가 보다.' 금희가 일행과 떨어져 홀로 어렵게 찾아낸 호숫가 집은 '완전한 집'이었다.

▲부희령은 "이별은 과거의 '나'와 헤어져 이 '나'에서 저 '나'로 넘어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금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스님. 이제 집이 다 지어졌어요. 내가 지금 여기에서 봤어요. 바로 옆에서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타르초가 힘차게 펄럭였다. 금희는 바람이 세상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이 자리를 지나갈 때쯤 자신의 업도 흩어지고 사라지기를 소망했다.'

승문은 금희와 함께 완전한 집을 꾸리지 못한 채 떠났다. 금희가 세월이 흘러 찾아간 집은 완성돼 있었다. 그들은 이별 후 서로 다른 집을 짓고 '타르초' 깃발처럼 업장을 떨쳐내는 중이다. 부희령은 "이별은 누군가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라기보다 기본적으로 과거의 나와 헤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이 '나'에서 다른 '나'로 넘어가는 것이 이별"이라면서 "소설뿐 아니라 삶에서도 항상 그런 걸 추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완성한 '집'에 이르고 나니 이제 과거를 돌아보는 데 여유가 생겼다. 첫 소설집 표제작 '꽃'에서 딸만 여섯인 집안 열두 살짜리 넷째 딸의 몸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냈던 부희령은 다시 그 집안의 열두 살 여자 아이를 등장시켜 '콘도르는 날아가고'를 썼다. 한결 느긋하게 객관적인 거리를 확보하면서 발랄한 문체로 어린시절 나쁜 남자의 행태를 보여주면서 애틋하게 싹트던 소년에 대한 감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집'은 새로운 '나'와 함께 완성됐고, 그 집에서 이제 부희령은 다음 단계의 소설을 꿈꾸는 중이다.

▲부희령에게 소설 쓰기는 '달라질 세상을 향해 내딛는 한 걸음'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내 가슴은 돌처럼 차갑고 단단하다'는 교외의 별장에서 모닥불을 앞에 두고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진실게임을 벌이는 '차가운' 가슴들 이야기. 이 소설 속 인간들은 각자 자신의 모호한 '죄'를 발설한 뒤 젊은 여자를 데려와 '현재의 행복과 안락함'을 위한 '번제'를 치른다. 그들은 말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달았어요. 우리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선한 삶이 아니라 그저 삶을 불필요하게 짓누르는 무거움을 털어버리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부희령은 "나같이 다리 멀쩡한 인간이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오는데 왜 휠체어 탄 사람들은 그것도 못하게 하는지 울컥하더라"면서 "여기까지 와보니, 행복을 찾으려면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세상이 달라져야 된다는 사실을 알겠다"고 했다. 그는 "글이라는 게 노골적으로 강요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꾸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면서 "다른 세상을 향한 한 걸음으로 칼럼이나 다큐 대본이나 소설을 쓴다"고 덧붙였다. 오래 숙성한 만큼 탄탄하고 '재미있는' 소설집 뒤의 말.

-내 소설은 누군가를 위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가 없는 이들을 대변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내 글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고백하자면, 나는 내 소설이 좋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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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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