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국·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노르웨이도 지원 가세
'방어용 무기' 아닌 첫 '공격용 무기' 제공…관건은 '타이밍' 남한의 6배 크기인 우크라이나 국토는 95%가 평원이고 5%가 산지이다. 이에 러시아군은 탱크(전차) 부대를 앞세워 침공하면 평원을 가로질러 키이우(키예프)를 쉽게 점령할 것으로 낙관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소련 시절부터 생산된 러시아제 전차를 보유하고 있으나 수량과 성능에서 러시아에 열세였다.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는 구소련 시절 T계열(34, 64, 80, 84) 소련 전차 개발의 메카였다.
T34전차는 단일 모델로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가장 많이 생산되었으며, 현재까지 세계 어떤 전차보다도 많은 생산 기록(8만4천대)을 가졌다. 1950년 당시 소련의 괴뢰정권인 북한의 김일성이 남한을 침공할 때도 T34를 앞세웠다.
우크라 전쟁 초기 러시아 탱크는 미군이 제공한 '재블린의 밥'
현재 우크라이나 육군의 주력 전차인 T64도 하르키우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다. 러시아의 침공 직전인 2021년 우크라이나군은 약 1100대(육군 960대, 공수군과 해병대 140대)의 전차를 보유했다.
이에 비해 러시아군은 1만2400대의 전차와 3만6천대의 장갑차 외에 1만여대의 예비 전차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전력의 절반 이상을 우크라이나 침공에 동원했는데, 주력 전차인 T72와 후속모델인 T80, T90 등 3천대 이상의 탱크를 동원해 침공했다.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 기갑부대는 사력을 다해 러시아 기갑부대를 저지했다. 그럼에도 더 효율적으로 러시아 탱크와 장갑차를 파괴한 것은 미국과 영국이 우크라이나 육군에 제공한 대전차 미사일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군 전차가 '성스러운 재블린의 희생양'이 된 것이 사실임은 우크라이나군이 실지를 수복한 뒤에 개방한 해외 언론 취재로도 드러났다. 당시 전장에서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러시아군 장비는 대부분 포탑이 분리된 채 널브러진 전차들이었고, 가끔은 공격용 헬리콥터도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전차에 대한 최대의 방책은 전차이다"라는 말은 제1차 세계대전에 탱크가 처음 등장한 이후 오늘까지도 전쟁에서 회자된다. 지상전에서 실지를 수복하기 위한 돌파 반격전에는 탱크만한 공격 전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서방에 탱크와 전투기 지원을 간구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전쟁 초기,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대전차 미사일 등 방어용 무기만 제공했다. 탱크 등 공격용 무기를 제공할 경우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을 격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제공받은 탱크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체코의 T72 200대뿐이었다.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가 반격전을 펼치려면 300대의 탱크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동부 전선에서 장기간 교착 상태인 전쟁의 돌파구를 확보하는 데도 탱크는 절실하다.
서방 지원 탱크 300대에 못미쳐도 변곡점 가져올 수도
그런 가운데 마침내 미국과 서방 주요국은 몇 달 간의 흥정과 지연 끝에 러시아와의 장기전을 위해 중형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5일(현지시간) 독일이 레오파르트(Leopard, 영어명 레오파드) 2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보낼 것이며, 다른 유럽 국가들도 독일이 생산한 레오파르트 전차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스페인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도 자국의 레오파드를 지원하는 데 동참하기로 했다.
독일이 이날 발표한 지원 규모는 14대로, 다른 동맹국과 함께 총 88대의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각국이 결정한 탱크 지원 규모는 영국의 챌린저2 14대, 폴란드의 레오파드2 14대 등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날 백악관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M1 에이브럼스 전차 31대를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M1 에이브럼스는 가장 진보된 탱크로 알려져 있으나 우크라이나까지 운송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서방이 지원 의사를 밝힌 탱크를 다 합쳐도 우크라이나가 요청한 300대에는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레오파르트2 전차는 비교적 빨리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예상되는 러시아군의 춘계 공세 이전에 충분히 전력화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서방이 지원한 이 탱크들은 오는 봄, 러시아로부터 영토를 탈환하는 데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 또한 탱크와 함께 지원을 약속한 장갑차 수백 대와 각종 중무기 등과 함께 운용할 경우 전쟁의 변곡점을 가져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서방 지원 탱크 부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갖는 의미
그렇다면 서방이 지원하는 탱크 부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은 25일(현지시간) 전문가 진단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탱크 지원의 의미를 살펴봤다.
"레오파드2 탱크를 유능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면 현대 전투 탱크가 여전히 얼마나 효과적이고 강력하며 중요한 기능을 발휘할 것인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서방 주력 전차 시스템을 구성하는 정교하고 효과적인 기갑 설계와 첨단 광학, 최첨단 승무원 훈련은 러시아 침략자들이 고용하고 있는 소련 시절의 장비와 훈련과는 매우 다른 야수(beast)이다." (존 와츠 전 국방부 장관실 선임 정책보좌관)
"과정은 복잡했지만 우크라이나에 레오파드 전차를 제공하기로 한 독일의 결정은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러시아를 저지하고 더 많은 영토를 해방하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힘을 강화하는 길을 열어준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제스처가 되서는 안되고 탱크를 우크라이나로 인도하는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 (다니엘 프리드 전 폴란드 주재 미국대사)
"모스크바는 돈바스의 바흐무트와 솔레다르 근처에서 몇 달 동안 공세를 펼쳤고 최근 며칠 동안 약간의 이득을 얻었고, 자포리지아 지역에서 소규모 공세 작전을 시작했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하다. 탱크는 우크라이나가 두 지역 모두에서 사상자를 줄이면서 위치를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존 허브스트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
독일과 미국이 '방어용 무기'가 아닌 '공격용 무기'를 제공하는 정책 전환에 시간이 걸린 것은 아쉽지만, 탱크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을 무찌르고 영토를 수복하기 위한 기계화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평이다.
역시 문제는 '타이밍'이다. 서방의 지원이 오는 봄에 우크라이나가 단지 '세계 탱크 전시장'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신속한 지원이 생명이라는 얘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최근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유일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시간, 인도 시간이다"라며 "모든 절차는 최대한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레오파르트2 지원을 결정하기까지 독일에서는 '표범들을 풀어달라(Free the Leopards)'는 피켓 시위가 벌어졌다. 우크라이나에 레오파르트 탱크를 제공하라는 피켓 시위였다. 이제 전쟁의 변곡점은 각국의 '표범들'을 얼마나 은밀하고 신속하게 옮겨 우크라이나 평원에 풀어 놓느냐에 달렸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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