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황제' 펠레, "사랑하라, 영원히" 메시지 남기고 떠나다

김당 / 2022-12-30 15:06:09
오랜 대장암 투병 끝에 '위대한 전설' 남기고 82세로 별세
월드컵서 유일한 3회 우승…최연소 득점·해트트릭 등 불멸 기록
사흘간 애도기간 선포…'군사정권 홍보대사' 비판에도 '국가영웅'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Edson Arantes do Nascimento)'라는 실제 이름보다는 펠레(Pelé)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축구황제가 오랜 암 투병 끝에 29일(현지시간) 82세의 나이로 상파울루에서 세상을 떠났다.

▲ 국제축구연맹(FIFA)이 누리집에 게시한 축구 황제 펠레의 부고에 실은 젊은 시절의 펠레 [FIFA 누리 캡처]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브라질 상파울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병원 측은 "펠레가 29일 오후 3시 27분 사망했다"며 "그가 앓고 있던 질병들과 대장암의 진행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9월, 브라질의 COVID-19 팬데믹으로 연기된 정기 검진에서 자신의 오른쪽 결장에서 수술이 필요한 종양이 확인됐다. 이후 수술을 받고 화학 요법을 포함한 치료를 받느라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몇 달 간의 암 치료로 쇠약해진 펠레는 제22회 카타르 월드컵(11. 20~12. 18) 조별 리그가 진행 중인 지난 11월 30일에 호흡기 감염증으로 앨버트 아인슈타인 병원에 입원했다.

펠레는 병상에서 브라질 대표팀에 "우승 트로피를 들고 오라"고 격려했지만, 그가 염원했던 통산 6번째 우승은 무위로 끝났고 그도 '전설'로 남게 됐다.

펠레의 축구 여정은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 7월 처음으로 홈에서 월드컵 토너먼트를 개최해 우승을 확신했던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 충격적인 1-2 패배를 당한다.

당시 9세이던 펠레는 브라질 상파울루주의 작은 도시 바우루에서 라디오 중계에 귀를 기울이던 축구선수 출신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서 아버지를 위해 월드컵에서 우승할 것을 예수상 앞에서 맹세했다. "아빠, 울지 마세요. 아빠를 위해 월드컵 우승을 해줄게요."

유소년 축구클럽을 거쳐 1956년에 브라질의 명문 축구클럽인 산투스 FC에 입단한 펠레는 이듬해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고, 1958년에 클럽 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등 전설을 써내려 갔다.

▲펠레의 일대기(1940~2022)를 압축한 동영상 [FIFA 동영상 캡처]

1958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 출전할 당시 그의 나이는 17세였으며,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북아일랜드의 노먼 화이트사이드가 갱신하기 전까지 최연소 월드컵 출전 기록이었다.

당시 국가대표팀 의사는 펠레에 대한 심리평가에서 "아직 어리고 프로 선수로서 호전성이 부족해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대표팀 감독은 몸이 빠르고 찬스에 강한 그를 교체선수로 기용했다.

펠레는 웨일스와의 8강전에서 월드컵 사상 최연소 득점(17세 239일)을,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는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후 개최국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는 펠레 최고의 골로 평가받는 발리슛과 헤딩슛을 성공시키며 브라질의 첫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4년 뒤에 아직 21세에 불과한 펠레는 1962년 FIFA 월드컵에서 또 한 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어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브라질 팀의 두번째 우승은 사이드라인에서 지켜봐야 했다.

펠레는 1966년 잉글랜드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로서 전성기의 절정을 맞이했지만 대회 전부터 부상을 당했다. 그는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포르투갈전에 출전했으나 상대 수비수의 거친 수비로 무릎 부상을 입었고, 1-2로 패해 3연속 우승에도 실패했다.

당시 잉글랜드인 주심인 조지 매케이브는 펠레에게 부상을 입힌 백태클을 날린 모라이스에게 경고조차 주지 않았고 이는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판정 중 하나로 남았다. 언론은 브라질의 세계 지배는 종언을 고했다고 혹평했고, 브라질 대표팀 선수와 감독의 집은 팬들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펠레는 거듭된 거친 플레이에도 제지하지 않는 심판에 화가 나 다시는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은퇴했다. 이후 대표팀 공백기를 거친 그는 FIFA에서 월드컵에서의 선수 교체 제도와 카드 제도를 정비하는 등 선수 보호에 힘을 쓰자 2년 뒤인 1968년에 대표팀 복귀를 선언했다.

펠레의 최고의 축구 업적은 유럽과 미국에서 컬러 텔레비전으로 처음 중계된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이뤄졌다. 특히 결선 토너먼트를 확정지은 전 대회 우승국인 잉글랜드와의 경기는 "축구의 교과서적인 경기로 축구의 모든 것이 이 한 경기 안에 들어있다"(보비 찰튼)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29세이던 펠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월드컵 우승팀을 이끌었다. 또한 브라질의 월드컵 통산 3번째 우승 달성은 당시 브라질의 고도 경제 성장기와 겹치며 브라질의 국위 선양에 큰 역할을 했다.

▲ 2008년 6월 26일 당시 브라질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왼쪽)와 함께 한 펠레 [Agencia Brasil, 위키피디아]

하지만 1970년 월드컵 우승 당시 경기장 밖에서 펠레의 모습은 폭력적인 군사통치 하에 놓인 많은 브라질인들에게 좌절의 대상이었다. 그라운드의 슈퍼스타였던 펠레는 귄위주의적인 군사정권의 스타들(장성들)에게 지나치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군사정권의 스포츠 홍보대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의 전설적인 축구 인생은 경기장 밖에서의 태도를 넘어, 그의 죽음 뒤에도 국가적 영웅으로 남았다. 브라질에서 축구는 그 자체가 삶이기 때문이다.

킹(축구 황제)을 잃은 브라질은 슬픔에 잠겼다. 브라질 정부는 사흘간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취임을 앞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은 "펠레와 견줄 만한 10번 선수는 없었다"고 트위터에 밝혔다. 그는 또한 "세계에서 그보다 더 유명한 브라질인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그는 단순히 경기한 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다. 고마워요, 펠레"라고 썼다.

▲ 펠레의 트위터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 [트위터 캡처]

FIFA는 "위대한 펠레(the great Pele)"가 82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전하며 "세계 축구계는 왕을 잃었다(The world of football has lost its king)"고 애도했다. 펠레는 유족을 통해 자신의 SNS에 포르투갈어와 영어로 마지막 메시지를 이렇게 남겼다.

"오늘 평화롭게 세상을 떠난 황제 펠레의 인생 여정은 영감과 사랑으로 차 있다. 사랑하라, 사랑하고 사랑하라, 영원히(Inspiration and love marked the journey of King Pelé, who peacefully passed away today. Love, love and love, forever)."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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