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前 중국 국가주석 별세…향년 96세

장은현 / 2022-11-30 19:56:56
30일 상하이에서 백혈병 등 건강 악화로 사망
마오쩌둥, 덩샤오핑 이은 中 3세대 지도자
中 세계 경제 대국 부상 발판 만들었단 평가
첫 외국 방문 북한…1994 김영삼과 정상회담
장쩌민(江澤民) 중국 전 국가주석이 30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중국 국영 CCTV는 이날 오후 "장 전 주석이 30일 12시 13분 상하이에서 별세했다"며 "백혈병과 이로 인한 장기 약화가 사망 원인"이라고 전했다. 장 전 주석은 부인 왕예핑(王冶坪)과 그 사이에 몐헝(綿恒),몐캉(綿康) 두 아들이 있다.

▲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0월18일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설문을 돋보기를 이용해 읽고 있다. [뉴시스]

1926년 장쑤성 양저우에서 태어난 장 전 주석은 1989년 6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직에 오른 뒤 2002년까지 약 13년 간 중국을 이끌었다. 1949년 신중국 성립 후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의 뒤를 이은 3세대 지도자다. 중국을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는 발판을 만든 인물로 평가 받는다.

장 전 주석은 상하이 자오통(交通)대 전기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장제스(蔣介石) 독재에 맞서 학생 운동에 참여했다. 1946년 공산당에 입당한 뒤 이듬해 대학 졸업 후 상하이 공장 등에서 일하다 옛 소련 모스크바에서 유학했다. 1956년 중국으로 돌아와 창춘, 상하이, 우한 등의 공장과 연구소에서 일하며 기술관료로 일했다.

1985년 상하이 시장에 당선됐다. 2년 뒤 당 정치국원에 오르며 중앙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그가 지도자로서 대중에게 모습을 각인시킨 것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였다. 학생·시민의 민주화 시위로 위기를 맞은 덩샤오핑이 그해 5월 31일 장 전 주석에게 당 총서기를 맡겼다. 시위에 반대하면서도 거리로 나가 학생들과 대화하는 등 유혈 사태를 막는 데 일조했다.

장 전 주석은 중국 경제를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재임 기간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9% 성장률을 기록했다. 1989년 1조 6900억 위안에서 2001년 9조 5900억 위안으로 크게 올랐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성사시켰다.

권력욕, 부패 문제 있어서는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장 전 주석의 상하이 인맥인 '상하이방'은 이익집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있다.

장 전 주석은 2007년 17차 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 현 국가주석을 후진타오 이후 지도자로 띄웠다. 2012년 4월 초에는 비밀리에 베이징에 상경해 군부에 "중앙군사위 주석과 총서기는 시진핑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공산당의 흐름을 보수화로 돌렸으며 부패 척결을 내세웠다. 타깃 중 장 전 주석의 옛 측근이 적지 않았다. 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과 쉬차이허우(徐才厚) 중앙 군사위 부주석이 부패죄로 잡혀갔고 인민해방군 서열 1·2위던 궈보슝(郭伯雄)과 쉬차이허우(徐才厚)는 숙청됐다. 

중국 최고 지도자로서 첫 외국 방문국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다. 1994년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장 전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1995년엔 한국을 찾았다.

KPI뉴스 / 장은현 기자 e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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