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놓고 도망간 집주인…밤잠 못 이루는 세입자

안재성 기자 / 2022-11-22 16:59:24
올해 1~10월 전세사기 규모 8000억…연간 1조 넘을 수도
"집주인 선의만 믿는 건 위험…전세보증보험 가입해야"
김 모(남·44) 씨는 올해 9월 서울 상계동의 한 대단지 아파트 전용 77㎡에 전세 세입자로 들어갔다. 전세보증금은 3억 원이었다. 등기부등본에 따로 주택담보대출이 잡힌 건 없어 안심하고 계약했다. 

하지만 김 씨는 최근 자기가 사는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경매 신청자는 전 세입자였다. 전 세입자는 재작년 8월 전세보증금 2억8000만 원에 계약했다가 올해 계약이 만료된 뒤 나갔다. 그는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고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자 자신의 전세보증금 채권을 행사, 서울북부지방법원에 경매를 신청한 것이었다. 

깜짝 놀란 김 씨가 집주인에게 연락했지만, 집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공인중개사도 "집주인이 빚이 많아 전세보증금을 떼먹고 달아난 듯하다. 해결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김 씨가 사는 집의 최근 시세는 5억 원 가량이다. 전 세입자와 김 씨의 전세보증금을 합친 5억8000만 원보다 낮다. 경매가는 대개 시세보다 아래로 가기 마련이므로 전 세입자보다 후순위인 김 씨가 전세보증금을 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소액임차인 보증금 우선변제 제도가 있지만, 한도가 1억5000만 원이다. 김 씨는 1억5000만 원을 날릴 수 있다는 걱정에 요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 도봉산에서 바라본 의정부 지역 아파트 단지. [이상훈 선임기자] 

올해 들어 '전세사기' 규모가 무섭게 부풀고 있다. 22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전세보증 사고금액은 총 1526억2455만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 39% 늘었으며, 지난 7월부터 4개월 연속 역대 최고 금액을 경신 중이다. 

올해 1~10월 누적 전세보증 사고금액은 총 7992억 원으로 전년동기(4507억 원)보다 77.3% 급증했다. 연간으로 1조 원을 넘어설 거란 예측까지 나온다. 

주요 원인으로는 집값 하락세와 고금리가 꼽힌다. 집값 하락과 높은 이자부담에 시달리는 집주인들이 전세사기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이야기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작정하고 전세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지만, 요새는 상황이 어려워 사기의 유혹에 빠지거나 아예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와 법무부는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다음달부터 임대인 동의 없이도 임차인이 임대주택의 선순위 보증금,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 등을 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방침이다. 

하지만 김기원 리치고 대표와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선순위 보증금은 결국 전 세입자 전세보증금인데, 집주인 대부분은 신규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받아서 전 세입자 몫을 돌려준다. 선순위 보증금이 있다고 회피하면, 전세 계약을 체결할 만한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을 권한다. 윤 연구원은 "전세사기 위험을 피하려면,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전세보증보험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서울보증보험에서 가입 가능하다. 약간의 보험료만 미리 내두면, 사고가 발생할 경우 HUG나 서울보증보험이 집주인 대신 전세보증금을 지급해준다. 

보험료율은 HUG가 0.13%, 서울보증보험은 0.20%다. 전세보증금이 3억 원일 경우 40~60만 원 수준의 보험료만 내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단돈 몇 십만 원이 아까워서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꺼리는 세입자들이 많다"며 "요즘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전세보증보험은 꼭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KPI뉴스 / 안재성·박지은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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