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돌려줄 돈 없는 집주인 '전전긍긍'…역월세 제안 황 모(남·40) 씨는 지난해 9월 경기 성남시 서판교 지역에 30평대 아파트를 한 채 구매했다. 매매가는 약 16억 원이었다. 8억 원은 전세보증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보유 중인 현금과 대출금으로 지불했다. 대출을 최대한 받은,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 갭투자였다.
집값이 더 오를 거라고 생각해 무리한 투자를 감행했는데, 올해 들어 집값은 떨어지고 금리는 올라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난달에는 전세 계약이 만료되면서 더 큰 폭풍이 닥쳤다. 세입자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보증금을 3억 원으로 줄이되 월세 100만 원을 지불하겠다는 게 세입자 제안이었다. 황 씨가 월세 전환을 꺼리자 그럼 나갈 테니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문제는 황 씨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주변 전셋값은 대폭 하락세였다. 공인중개사는 "현재로서는 전셋값 7억 원도 무리다. 6억 원까지 낮춰야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했다.
이미 한계까지 대출을 받은 황 씨는 추가 대출이 곤란했다. 설령 추가 대출을 일으킨다 해도 매달 상환해야 하는 원리금이 200만 원 넘게 증가하는 걸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황 씨는 세입자에게 매달리면서 '역월세'를 제안했다. 보증금은 8억 원으로 유지하는 대신 황 씨가 세입자에게 매달 60만 원의 역월세를 지불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며칠 실랑이를 벌인 끝에 역월세 70만 원으로 타협했다.
최근 세입자들이 월세를 선호하면서 월세 거래가 급증 추세다. 1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9월 전국 월세 거래량은 전년동월 대비 33.6% 늘었다.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은 51.8%로 지난 4월부터 6개월 연속 월세 거래량이 전세 거래량을 앞질렀다.
세입자들이 월세를 선호하는 이유는 전세대출 이자보다 월세가 훨씬 더 싸기 때문이다. 이날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의 전세대출 금리는 5.20~7.33%를 기록했다.
전월세 전환율(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연 환산이율)은 아직 전세대출 금리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KB국민은행 조사에서 10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은 평균 3.28%로 나타났다. 전세대출 금리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올해 금리가 빠르게 오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월세 전환율은 대개 시중금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전월세 계약은 2년에 한 번 꼴로 이뤄지기에 올해처럼 금리 상승세가 가파를 때는 시차가 생긴다.
윤 연구원은 "전월세 전환율이 전세대출 금리 수준을 따라잡으려면 앞으로 1년 반에서 2년 가량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세가 전세대출 이자 절반 수준이니 세입자들은 월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 셋째주(14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70.6으로, 2019년 3월 셋째주(70.6) 이후 3년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세수급지수는 기준선(100)보다 낮을수록 전셋집을 구하는 세입자보다 전세를 내놓으려는 집주인이 더 많다는 뜻이다. 윤 연구원은 "내년 하반기까지는 세입자의 월세 선호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세가 인기가 없으니 가격은 떨어지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10월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5억9966만 원으로, 지난해 2월(5억9739만원) 이후 1년 8개월 만에 6억 원을 밑돌았다.
갭투자자, 특히 황 씨처럼 '영끌 갭투자자'에게는 괴로운 상황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여유가 있는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주고 월세로 전환하면 되지만, 여유가 없는 집주인들에게는 비상사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때문에 요새 보증금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는 대신 세입자에게 집주인이 거꾸로 월세를 지불하는, '역월세 계약'이 다수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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