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러시아의 '뜻밖의 반응'과 푸틴의 '고립'

김당 / 2022-11-17 17:57:27
크렘린, "강력한 규탄" G20 공동성명에 "균형잡힌 텍스트" 평가
바이든, '3차대전 비화' 일촉즉발 순간에 신중 대처로 지도력 발휘
3연임 시진핑, 러시아 압박-중재 존재감 부각…마크롱, 기대감 피력
주요 20개국(G20) 지도자들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이틀(15~16일) 간의 회담 끝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을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하고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철수를 요구한다"는 선언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 누사두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앞서 가진 미중 정상회담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AP 뉴시스]

G20 정상들이 승인한 '발리 공동선언'은 "대다수 회원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그것이 엄청난 인간의 고통을 야기하고 성장 억제, 인플레이션 증가, 공급망 교란, 에너지 및 식량 불안 고조, 금융 안정성 위험 증가 등 세계 경제의 기존 취약성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제 경제 위기의 책임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있다고 지목한 것이다. 또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금지'와 '국제법 준수'라는 대원칙에도 G20 회원국 모두가 동의했다.

공동선언에서 언급했듯이, 유엔총회가 지난 3월 2일에 압도적 다수결로 채택(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 불참 12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No-ES-11/1)에서 표명된 국가별 입장을 감안하면 G20의 규탄 선언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면서도 발리 선언은 "상황과 제재에 대한 다른 견해와 평가가 있었다(There were other views and different assessments of the situation and sanctions.)"고 '소수의견'을 기록으로 남기고, G-20은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포럼이 아니다"라고 적시했다.

사실 G20은 안보 플랫폼이 아니고 세계 주요 선진국과 신흥 경제국을 연결하는 전략적 다자간 플랫폼이다. 하지만 전쟁은 세계 경제에 불가분의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G20 회원국은 세계 GDP의 80% 이상, 국제 무역의 75%, 세계 인구의 60% 이상을 대표한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 자체뿐만 아니라, 모스크바와 외교안보뿐이 아닌 상당한 무역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인도 같은 국가를 포함하는 그룹 간의 분열을 감안할 때, G20이 발리 공동선언에서 러시아의 '전쟁'을 규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과 인도는 지난 3월 러시아의 즉각 철군을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과 지난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강제병합을 규탄하는 결의안 표결에서 번번이 기권해왔다.

하지만 G20 정상들은 이번 발리 공동선언에서 그동안 러시아가 주장해온 '특별군사작전'이나 일부 국가가 사용하는 '분쟁' '갈등' 등 표현 대신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러시아를 규탄했다.

어쩌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G20 회원국으로서 이런 껄끄런 상황을 예견했기에 불참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는 막판까지 푸틴 대통령 참석 여부를 밝히지 않다가 "바쁜 일정" 때문이라는 '그럴 듯한 부인'으로 푸틴의 불참 구실을 댔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정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푸틴을 대신한 '동네북'으로 참석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자기나라로 돌아가기 직전 러시아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화풀이'를 했다.

"G20이 미국 주도의 '반(反)러시아 플랫폼'에 따라 공동선언을 정치화하고 있다. G20의 정신을 훼손하고 우리를 비난하기 위해 진행된 이번 정상회담은 이미 실패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러시아 정부가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인간의 고통"을 언급한 G20 정상들의 공동선언을 러시아 외교관들이 영향을 미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균형잡힌 텍스트"라고 환영한 것이다.

크렘린은 놀랍게도 대통령실 웹사이트에 이 17쪽짜리 공동선언문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러시아어로 번역해 실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을 의미하는 "전쟁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의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철수"를 요구한 문구가 담긴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 언론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특별 군사 작전" 외에는 "전쟁" 또는 "침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금기시돼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최종 문서가 러시아의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접근 방식의 차이와 관점의 차이는 최종 선언문에 기록되었다"면서 "물론 우리 전문가, 외교부가 이러한 균형 잡힌 텍스트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크렘림의 '최종 선언문의 균형잡힌 텍스트'라는 평가는 공동선언의 '초안'보다는 진전된 문안이 담겼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루 전인 15일에 '초안'에 나온 점을 감안하면 최종 선언문은 러시아의 노력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라브로프 장관이 15일에 발리를 떠난 점을 감안하면 어차피 먹지 못하는 '여우의 신포도'에 비유할 수도 있다.

오히려 앞서 유엔총회는 러시아가 전쟁 배상금 지불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국제법 위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런 점에 비추어 '균형잡힌 텍스트'라는 평가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무대에서 러시아가 고립되었음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징후다.

이에 반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세계의 변화에 대처할 준비가 잘 돼 있다"며 발리에서 미국의 기존 지도력을 강화하는데 적극적이었다.

특히 G20 정상회의 기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시설에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가운데 폴란드 영토에 미사일 2발이 떨어진 일촉즉발의 순간에 바이든 대통령은 긴급회의를 소집해 신중하게 대처함으로써 지도력을 발휘했다.

바이든은 "미국과 나토(NATO) 동맹국들이 이번 폭발을 조사하고 있다"면서도 "초기 정보에 따르면 폭발은 러시아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아닐 수 있다"고 밝혀,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위기를 잠재웠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발리 선언문'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최근 3연임을 확정한 이후 국제 외교무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의 존재감은 그와 정상회담을 한 다른 서방국가 정상의 평가에서 엿보였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 뒤에 가진 뒤 16일 발리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앞으로 몇 달 안에 더 큰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고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G20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외면하지 않았다"며 "중국, 인도와 같은 주요 신흥국과 함께 러시아가 긴장을 완화할 수 있게끔 압박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국제 사회가 이곳에 모여 보내는 아주 분명한 메시지를 듣고,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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