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도 위험…"신용경색 탓 기업 여럿 쓰러질 수도"
"금융시장 신뢰훼손 책임 물어 강원도 일정기간 퇴출해야" '김진태 경거망동'의 대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00억 원을 갚지 않으려한 사회적 비용이 200조 원으로 부풀었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섣부르게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부도낸 것은 금융시장에 던진 불신의 폭탄이었다. 그 충격으로 '돈맥경화'에 빠진 채권시장을 구원하기 위해 정부와 금융권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일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5대 금융지주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총 95조 원을 투입하기로 약속했다. 시장 유동성 공급 확대 73조 원, 채권시장안정펀드·증권시장안정펀드 참여 12조 원, 그룹 내 계열사 자금 공급 10조 원이다.
정부는 지난달 23일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채안펀드 조성,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등 '50조 원+α' 규모의 시장유동성 공급 조치를 발표했다. 그밖에 총 10조 7600억 원 규모의 증안펀드를 조성하기로 했으며, 증권사들은 따로 1조 원 규모 제2채안펀드를 만들 계획이다.
한국은행도 나섰다. 한은은 지난달 27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금융중개지원대출과 차액결제이행 및 공개시장운영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 대상 적격담보증권을 확대하기로 했다. 적격담보증권 대상에 은행채 및 한국전력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9개 공공기관 발행채권을 추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은 은행채 등을 담보로 맡길 수 있게 돼 더 많은 유동성을 확보할 전망이다. 한은은 이번 조치로 은행이 약 29조 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은은 또 추가로 6조 원어치의 RP를 매입하기로 했다. 한은이 시장에 총 35조 원 규모의 추가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 중 은행이 채안펀드·증안펀드에 공급하는 돈은 기존 정부 발표 안에 포함된 것이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금융시장에 공급되는 유동성이 총 180조 원에 달한다.
김 지사가 상환을 거절한 레고랜드 ABCP는 2050억 원 규모다. 그 돈을 갚지 않은 대가가 이토록 큰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시장 혼란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까지 포함하면 '김진태 청구서'는 200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0억 원이 1000배로 부푼 것이다.
독립 증권리서치사 더프레미어의 강관우 대표는 "시장에 신용이 깨진 탓"이라고 진단했다. 채권시장에서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에 버금가는 신용도를 지닌다. 광역 지자체가 빚을 갚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투자자들은 충격을 받았고, 채권시장에서 돈이 사라졌다. 여파는 증권시장 등 금융시장 전체로 번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리 상승,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시장이 극도로 예민해진 상황에서 김 지사의 섣부른 결정이 트리거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영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리즈 트러스 총리의 대규모 감세안 발표로 영국 금융시장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결국 값비싼 대가를 치른 채 트러스 총리는 44일 만에 물러나야 했다. 영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만에 퇴임한 총리다.
더 큰 문제는 김진태 청구서가 200조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 심리가 안정돼야 한다"며 "안정되지 않으면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와 강 대표도 같은 의사를 표했다.
이미 김 위원장은 "시장 안정을 위해 채안펀드를 증액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은이 기업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며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설립을 요청했다. SPV는 한은이 직접 자금을 투입해 회사채, 기업어음(CP) 등을 사들이는 기구다. SPV는 한은법상 금지된 조치로, 경제가 어려울 때 예외적으로만 가능하다. 차현진 전 한은 금융결제국 자문역(국장)은 "SPV 설립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여파는 실물경제로도 번질 전망이다. 강 대표는 "신용경색 여파로 여러 기업들이 쓰러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안 교수도 "기업들이 회사채, CP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흑자를 내고도 도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설령 시장이 안정된다 해도 막대한 유동성을 쏟아 부은 대가는 또 다른 곳에서도 온다. 안 교수는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물가와 원·달러 환율 상승을 야기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김 지사의 잘못된 판단 하나로 우리 경제가 치르는 대가가 너무 크다. 그럼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황성 전 한은 국장은 한겨레 기고에서 "금융시장 신뢰를 훼손한 책임을 물어 채권 발행 금지, 지급보증 제한 등 강원도를 금융시장에서 일정 기간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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