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나비효과' 차단용 '50조+α' 양적완화…환율·인플레 어쩌나

안재성 기자 / 2022-10-24 16:54:03
'붕괴위기' 채권시장 구하려 대규모 유동성 공급…물가·환율 자극 우려
"김 지사로 인한 나비효과가 얼마나 커질지는 현재로서는 예측 불가능"
"연준이 금리인상 속도 늦추면 양적완화 악영향 최소화할 수 있을 것"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작은 행위 하나가 큰 파장을 일으키는 걸 '나비효과'라고 한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지급보증한 2050억 원짜리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부도낸 결정이 딱 그 꼴이다. 2000여 억원에 '불과'한 지급보증 약속을 깨버리면서 채권시장을, 나아가 한국경제를 뒤흔들고 말았다.

GJC는 강원도 레고랜드 테마파크를 조성했는데, 레고랜드 사업부진으로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해당 ABCP를 지급보증한 강원도가 대신 갚아야 하는데, 김 지사는 이를 거절하고 대신 GJC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채권시장에서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와 맞먹는 신용도를 지닌다.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채권이 부도났으니 시장에 불신감이 퍼졌고, 돈이 사라졌다. 

최고 신용등급(AAA)인 한국전력공사의 채권이 일부 유찰됐다. 한국도로공사, 과천도시공사 등 타 공기업들의 채권은 전액 유찰됐다. 공기업이 이럴진대 사기업은 아예 돈을 구할 길이 없었다. 롯데건설은 시장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에서 급하게 5000억 원을 대출받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에 미친 파장이 매우 컸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를 연상케 했다"고 지적했다. 

9월 6일(현지시간) 취임한 트러스 총리는 450억 파운드(약 70조 원) 규모 감세 정책을 내놨다가 영국 경제에 큰 피해만 준 채 44일 만에 사임했다. 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퇴진한 총리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전세계가 인플레이션 대처에 총력투구하는 상황에서 감세가 유동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이 우려를 산 것이다.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에 대혼란이 일어났으며, 파장은 실물경제로도 번졌다. 

김 지사는 실책을 깨닫고 뒤늦게 "내년 1월까지 빚을 모두 갚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레고랜드 ABCP 부도 결정으로 채권시장이 붕괴 위기다. 정부가 50조 원 규모 유동성을 공급해 시장은 안정화시켰지만, 이로 인해 물가·환율 상승이 우려된다. 지난 21일 기자회견하는 김 지사. [강원도청 제공 ] 

붕괴 위기를 맞은 채권시장을 구하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경제수장들이 지난 23일 한 자리에 모여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시장 안정을 위해 '50조 원+α'의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채권시장안정펀드 20조 원,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16조 원,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 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 지원 10조 원 등이다.

정부의 발빠른 개입으로 시장은 일단 안정 추세다. 독립 증권리서치사 더프레미어의 강관우 대표는 "일단 채권시장에 숨통은 트였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한국은 인플레이션 대처를 위해 긴축에 초점을 맞춘 전세계 경제정책 흐름에 역행하게 됐다. 시중에 공급된 대규모 유동성은 물가를 자극할 위험이 높다. 또 원화 가치를 더 떨어뜨릴 수 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시중에 풀린 대규모 유동성이 물가 상승을 야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24일 원·달러 환율은 1439.7원으로 장을 마감해 전거래일 대비 0.1원 내렸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금리인상 속도가 완화될 것이란 전망이 퍼지면서 미국 달러화 가치가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날 환율은 9.8원 내린 1430.0원으로 개장했다가 장중 하락폭을 좁혔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시중에 돈을 풀었으니 물가·환율 상승을 피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진 않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조치가 물가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도 "심각한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오늘 약간이나마 환율이 하락한 건 시사하는 바가 있다"며 "12월부터라도 연준 금리인상 속도가 느려지면, 양적완화로 인한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21일(현지시간) "금리를 너무 급격하게 올려 경기를 침체에 빠트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며 "금리인상 속도를 늦추는 걸 논의할 때가 됐다"고 발언했다. 

당초 시장은 연준이 남은 두 번(11월, 12월)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모두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으로 전망했다. 데일리 총재 발언 후 12월 FOMC에서는 금리인상폭이 완화될 거란 기대감이 번졌다.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고, 뉴욕증시는 2% 이상 급반등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고강도 긴축 우려가 후퇴하면서 그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을 괴롭혀왔던 달러 강세가 진정됐다"고 판단했다.

강 대표는 "연준이 12월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만 올릴 거라는 기대감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2월에 연준 금리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해도 문제는 아직 연준이 긴축 기조를 완화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김진태 나비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50조 양적완화'에 나선 꼴이다. 채권시장이 붕괴 위기에 처하면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그로 인한 리스크는 감수해야 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만약 연준이 12월 FOMC까지, 5회 연속 자이언트스텝을 국내 외환시장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매우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교수도 수출 감소 등 실물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관측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김 지사로 인한 나비효과가 얼마나 커질지는 현재로서는 예측 불가능"이라며 "되도록 적은 타격으로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안재성·박지은 기자 seilen78@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안재성 기자

안재성 / 경제부 기자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