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한 엔저는 일본 경제 구조적 약점 상징"…금융시장 불안·경제침체 우려
일본 침체는 한국에도 부정적…"원·달러 환율 상승·수출 감소 야기할 듯" 극심한 엔저로 일본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달러당 149.90엔대에서 등락했다.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49.90엔을 넘어선 것은 '거품 경제' 후반기였던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이다.
올해 초 달러당 110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은 '우크라이나 사태' 후 가파른 상승을 시작했다. 지난달 2일 달러당 140엔을 넘더니 한 달여 만에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달러당 150엔 선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일본 재무성은 환율 정상화를 위해 적극 개입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일본에서조차 "단기적인 효과에 그칠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이다.
고강도 긴축 중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필두로 전세계가 금리를 올려 자국 통화가치를 방어하는, '역(逆)환율 전쟁' 중이지만 일본만 거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22일에도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금리를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재무관(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은 "구로다 총재가 퇴임하는 내년 4월까지 현재의 양적완화 정책이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화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은 더 심해지고, 시민들은 고통을 겪고 있다.
과거 엔저는 일본 수출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 탓에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2022회계년도 상반기(4~9월) 무역수지는 11조75억 엔(약 105조213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상반기 기준 1979년 이후 사상 최대 적자다.
8월 경상수지 흑자는 589억 엔(약 5800억 원)으로 전년동월 흑자의 4%가 채 되지 않는다. 8월 기준 역대 최소치다. 일본에서는 올해 경상수지가 42년 만에 적자를 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일본은행이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는 건, 금리를 올릴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 국채 발행 잔액은 1000조 엔(약 9800조 원)을 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63.1%에 달한다.
금리가 1%포인트만 뛰어도 일본 정부가 연간 이자로 지급해야 하는 돈이 10조 엔 늘어난다. 이를 감당할 수 없으니 금리를 인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은 빚이 너무 많아서 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독립 증권리서치사 더프레미어의 강관우 대표는 "일본은 이미 금리 조절 능력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일본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태"라면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일본은 엔·달러 환율 150엔 돌파를 속절없이 지켜만 볼 전망이다.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기면 시장에서 달러화를 찾는 수요가 더 증가해 환율 상승 속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기는 것은 물론 금융시장까지 불안해질 수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급속한 엔저로 쏠림 현상이 일어나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엔화 가치 하락이 너무 빠르다보니 기업과 가계가 이에 대응하기 힘든 양상"이라고 했다.
일본 경제의 구조적 침체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화 가치 급락은 일본 경제의 구조적 약점을 상징한다"며 "에너지 수입 의존, 생산 거점 해외 이전 등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구조화돼 실수요자들의 엔화 매도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지난해 7월부터 14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경제침체는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하 교수는 "일본의 불안으로 한국 외환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강 대표는 "엔화 약세는 달러화의 상대적 강세를 초래한다"며 "원·달러 환율과 물가 상승 압력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는 외환시장에 오는 영향과 함께 수출도 감소할 것으로 관측했다. 그는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큰 일본 경제가 깊은 침체에 빠지면 한국 역시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며 "수출 타격이 가장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KPI뉴스 / 안재성·박지은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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