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작 대부분 중국 금서…20여개 나라 번역 소개
"진정한 작가는 출판보다 제대로 쓰는 일 우선"
"무엇을 쓰는지보다 어떻게 쓰는가가 더 중요"
"'사서'라는 작품으로 이 상을 받게 돼서 특별히 기쁩니다. 이 소설은 저에게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대약진'이라든가 중국의 대기근을 표현한 것도 의미 있지만, 그 과정에서 예술적인 시도들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서술 방식과 시시포스 신화에 대한 새로운 탐색 같은 시도들이 저에게는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한국 독자들도 이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언어적인 서술이라든가 표현한 방법, 서양과 동양의 종교 같은 것들을 좀 더 이해하면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중국 소설가 옌롄커(1958~ )가 2011년 출간한 장편 '사서'로 제6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은평구 불광동에서 50여 년 동안 통일 문학을 추구해온 소설가 이호철(1932~2016)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은평구에서 제정한 문학상이다.
옌롄커는 국내에서 영화로도 제작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비롯해 '물처럼 단단하게 '즐거움' 딩씨 마을의 꿈' '풍아송' 등을 펴내면서 중국 당국과 내내 불화를 이어왔다. 그의 작품들은 중국에서 대부분 금서로 지정됐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20여개 국에 꾸준히 번역 소개돼 글로벌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근년 들어서는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옌롄커는 28일 기자들과 만나 '사서'로 상을 받게 됐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언급했다.
옌롄커가 자신의 작품들 중에서 유독 '사서'에 큰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문화혁명 당시의 폭압과 무지한 권력에 대한 고발을 넘어서서,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 나름의 예술적 차별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사서'는 문화혁명 당시 노동으로 사상을 개조해야 될 대상으로 지목된 지식인들을 황하 유역 야생 지구로 내려 보내 농사를 짓고 제련을 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배경으로, 권력의 무자비함과 교활함을 포함해 생존을 위한 인간들의 이기적인 속성을 다양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과정에서 후일 권력자 '아이'의 관점, '밀고자'의 관점, 극중 작가의 관점, 학자의 관점으로 중국 문화대혁명을 중층적으로 보여주는 각기 다른 4개의 책이 배태된다는 설정이거니와, 여기에서 '사서四書'라는 제목이 나왔다.
그는 2012년 한국어 번역판 서문에서 "온갖 루트를 통해 '사서' 원고를 스무 곳도 넘는 중국 출판사의 동료, 친구들, 그리고 원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책임자들에게 보여주었지만,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완곡하거나 아주 단호하게 거부했다"면서 "글을 쓰기 전부터 또 다른 '서랍 문학'이 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에 오히려 편안하고 홀가분해졌다"고 썼다. 이어 "입장을 바꾸어 제가 편집자나 출판부 책임자라도 이 변절적 성향이 짙은 소설을 그들처럼 거절하거나 냉대하거나 거부하거나 퇴출시켰을 것"이라면서 "이것이 바로 중국 현실의 한 단면이고 이해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중국식 현실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가의 언어를 함께 쓰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읽히지 못하는 건 어떤 심정인가.
"모든 작품이 중국에서 출판되지 않은 건 아니고 일부 작품은 출판됐다. 다른 작품들은 중국 대륙에서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홍콩과 대만에서 중국어로 출판돼서 대륙의 독자들도 읽을 수가 있다. 그래서 본국의 독자들과 교류를 할 수 있다. 저에게 출판이 되느냐 아니냐, 독자가 읽을 수 없느냐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작가에게는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독자가 그 글을 읽는지 읽지 못하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옌롄커는 "중국 출판 상황은 상상하는 것처럼 경직되어 있지 않지만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고 중간 정도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독립적으로 출판할 수 있는 숨통은 트여 있고 작가는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 과기대학과 중국 인민대학 교수직이 이 정도 글쓰기를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면서 "대만에서 중국어로 출판되는 책들은 중국 대륙의 출판을 보완해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중국 출판 상황이 경직되지 않고 중간 정도라고 언급했는데, 최근 시진핑 주석 연임 문제 등 중국의 정치적 이슈들이 많은 걸로 안다. 어떤 생각인가.
"일단 제가 도저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일단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저는 정치에 대해서보다는 인민의 생활에 대해서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제 내년이 되면 65세가 되기 때문에 저에게 남아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그 시간 동안 쓰고 싶은 소설을 써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고, 이것이 누가 어떤 자리에 오르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사서'가 출간된 지 10년이 지났다. 중국 인민들의 삶은 그동안 진보했다고 보는가.
"지난 3년 동안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일반 인민들의 생활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특히 노동자들의 생활이 많이 힘들어졌는데 이런 것들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중국 농민이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생활의 어려움은 아마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글쓰기를 구상하거나 진행하고 있는가.
"저는 아직도 쓰고 싶은 아주 많은 이야기가 있다. 제 안에는 아마도 영원히 다 하지 못할 그런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에게는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떤 방법으로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작년에 중국 고대 문학인 '요재지이'를 장편 소설로 다시 새롭게 쓰는 작업을 완료했다. 최근 2년간 프랑스의 희곡들도 계속 다시 읽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의 희곡 작품들을 읽으면서 소설이 이러한 희곡보다 더욱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돌파구를 찾는 중이다."
-노벨문학상 시즌이다. 매년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어찌 생각하나.
"이 일에 대해서는 일단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저에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65세가 된 이후 지금까지 썼던 소설들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는 일이다. 전 세계 독자들이 읽은 적이 없는 그런 작품을 쓸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 야심을 가지고 있다. 이 일이 저에게 가장 중요하고 그 외의 일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창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더 줄어들고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는 압박감과 긴장감을 아마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창작물이 사회를 변화시킬 거라는 믿음이 있는가.
"작가와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저는 작품이 국가나 사회나 혹은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제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진실한 표현이고, 작가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생활이다. 작가가 처해 있는 현실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루쉰문학상을 수상한 옌롄커는 "'아큐정전'을 지금까지 10번 넘게 읽었는데 중국이 가장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인물의 전형으로 아큐를 잘 표현했다"면서 "아큐 같은 인물을 그려낼 수 있다면 제 창작은 굉장히 만족스럽고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서'에 등장하는 '작가'는 온갖 수모를 감수하고 밀고자 역할까지 떠맡으면서 후일 집으로 돌아가면 집단 노동 교화소의 현실을 소설로 쓰기 위해 몰래 메모를 해서 침상에 숨겨 놓곤 했다. 쓰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 그는 소설의 첫 문장을 미리 떠올린 뒤 스스로 거인이 되었다. 옌롄커의 글쓰기 태도가 투사된 '사서'의 한 대목.
'나는 시작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 문장을 다시 한 번 조용히 읽어본 뒤 길게 숨을 내뱉고 가슴과 팔을 넓게 펼쳤다. 이어서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신발을 꺾어 신고는 모래땅 무덤의 꼭대기에 섰다. 그때 나는 내가 거인처럼 느껴졌다. 가장 힘겨운 전투에서, 초반에 기세를 휘어잡은 것 같았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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