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수출하는 미국…"신흥국 부채위기 우려" 작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뜀박질'은 세계 경제에 공포다. 연준의 고강도 긴축이 세계 각국의 물가를 더욱 끌어올리고 경기 침체를 가속화하고 있다.
연준은 이런 사정을 봐줄 생각도, 여유도 없어보인다. 당장 자기들 '발등의 불'끄기에 여념없다. 물가상승률이 8% 이상 지속되면서 과감한 금리인상을 지속할 태세다. 제롬 파월 의장은 "물가상승률 2%가 될 때까지 금리인상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 연준의 고강도 긴축은 성공할 것인가. 전문가들 견해는 엇갈린다. 물가상승률이 40여년래 최고치를 기록하는 상황인 만큼 인플레이션을 잡는 게 급선무라는 주장과 현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공급망 불안 탓이 더 크기에 금리인상 효과는 미약하고, 경기침체 등 부작용이 더 크다는 반론이 충돌한다.
"인플레이션 잡는 게 지금 경제정책 급선무"
연준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까지 3회 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는 등 올해에만 금리를 3.25%포인트 끌어올렸다.
강도 높은 긴축은 어느 정도 효과를 냈다. 올해 초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국제유가는 최근 80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6월 9.1%였던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월 8.5%, 8월 8.3%로 2개월 연속 둔화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금리인상은 인플레이션 억제에 효과가 있다"고 진단했다. 경기침체 우려에 대해서는 "연준만의 책임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그는 "'코로나 사태' 후 세계 각국 정부가 돈을 풀면서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자산시장 거품이 생겼다"고 "연준의 고강도 긴축 없이도 경기침체는 올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수석이코노미스트 겸 조사국장은 지난 21일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 주최한 '주요 20개국(G20) 글로벌 금융안정 콘퍼런스'에서 "인플레이션을 잡는 게 지금 경제정책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신 국장은 "인플레이션은 처음에는 일부 품목에 국한돼 나타날지라도 점점 그 품목이 많아지는 속성이 있다"며 "그 연결고리를 처음부터 끊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또 "국제결제은행(BIS)이 1980년부터 최근까지 70여 차례의 긴축 사례를 연구한 결과 선제적인 금리인상이 더 효과가 좋았다"며 한국은행에도 서두를 것을 주문했다.
'킹달러'에 세계 경제 '신음'…"미국에도 부정적"
가파른 금리인상이 경기침체를 촉발할 뿐 정작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는 미약하다는 의견도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셉 스티글리츠 콜롬비아대 경제학 교수는 "현재 인플레이션은 수요 확대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 '코로나 봉쇄'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서 온 거라 금리인상으로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곡물 가격은 여전히 고공비행 중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주요 곡물 수출국임을 거론하면서 향후 2~3년 간 옥수수, 콩, 밀 등 곡물 가격이 상승세를 그릴 것으로 예측한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높은 금리가 글로벌 공급망 개선을 위한 기업 투자를 위축시켜 오히려 물가 상승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며 기대보다는 효과가 미약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연준의 정책은 중세 시대 의료 기술 '사혈'을 떠올리게 한다"며 "피를 흘릴수록 환자 상태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세 유럽에서 페스트가 유행할 때 의사들은 환자의 몸에 상처를 내 피를 흘리게 했다. "몸에서 나쁜 피를 뽑아낸다"는 치료법이었으나 실효는 없었다.
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자문역(국장)은 "애초 물가 동향을 금리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며 "유동성, 글로벌 공급망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과 연준의 고강도 긴축으로 인한 '킹달러'가 겹쳐 세계는 신음하고 있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주(OECD) 등은 잇달아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하향했다.
독립 증권리서치사 더프레미어의 강관우 대표는 "가파른 금리인상은 경기침체를 야기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연준도 금리인상의 부작용을 알지만, 달리 인플레이션 대응책이 없어 감행하는 것"이라고 관측했다.
세계은행은 "강달러로 세계 경제가 경기침체를 향해 가고 있다"며 "신흥국에 부채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달러화 가치가 오를수록 신흥국이 갚아야 하는, 달러화로 표시된 외채 규모도 증가한다.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은 이미 위험한 상태이며, 여러 신흥국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킹달러와 이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 및 신흥국 부채위기는 미국 등 선진국에도 부정적일 전망이다. 달러화 강세는 미국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낮춘다. 경기침체도 기업 실적에 좋지 않다. 다국적 투자기업 이토로의 글로벌 시장 전략가 벤 라이들러는 "달러화 가치 상승이 올해 S&P500 기업들의 매출 증가율을 5% 깎아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케븐 사일웨스터 서던일리노이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공격적인 금리인상 조치가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6월말 기준 미국 국가부채는 30조5700억 달러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금리가 오를수록 미국 정부의 이자부담도 커진다. 워싱턴DC에 기반을 둔 초당적 공공정책 기관 '책임 있는 연방 예산 위원회(CRFB)'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면, 향후 10년 간 미국 정부의 이자부담이 2조1000억 달러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 국장은 "물가 상승을 완화하기 위해 금리인상은 필요하지만, 금리 상승이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파월 의장에게 단지 경제이론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센스와 스킬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안재성·박지은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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