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명 운집·초청된 정상급만 500명…1시간 전부터 입장 대기
여왕 유해, 해군이 대포 끄는 'State Gun Carriage'에 실려 운구 영국의 최장 재위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의식은 주요국 정상과 왕족 500명을 포함해 10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세기의 장례식'으로 치러졌다.
'세기의 장례식'은 57년 전과 비교해 한치의 오차도 흐트러짐도 없었다. 57년 전 사진을 찾아서 비교해 보면, 강산이 5~6번 바뀌는 세월에도 변함 없음이 확연하게 다가온다.
영국 총리의 마지막 국장으로 남은 윈스턴 처칠 경의 장례식은 1965년 1월 한겨울에 세인트폴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그때의 회색빛 운구 행렬과 잎이 진 앙상한 가로수의 흑백 사진이 컬러풀한 복식의 운구 행렬과 풍성한 가로수의 컬러사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98명의 영국 해군이 이끌고 뒤에선 40명이 브레이크 역할을 하며 끄는 포차(State Gun Carriage)에 실린 운구 행렬은 복장과 격식까지 57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한치의 오차도 흐트러짐도 없이 전통 그대로 재연되었다.
영국이 고수해온 이런 전통의 힘 때문일까?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화(戰禍)에서 영국을 구한 윈스턴 처칠 경의 국장(國葬) 이후 57년만에 치러진 '세기의 장례식'은 자연스레 '세기의 조문외교'의 장이 되었다.
19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이 거행된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세계 각국의 왕족과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이날 오전 11시에 시작된 장례식을 앞두고 여왕의 운구 행렬에 앞서 1시간 전부터 입장해 엄숙한 분위기 속에 딱딱한 의자에 앉아 기다려야 했다.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밖에서는 여왕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기 위해 운집한 인파가 100만 명에 이르렀다.
여왕의 유해는 역시 57년 만에 재연된, 영국 해군이 끄는 포차(State Gun Carriage)에 실려 장례식 15분 전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홀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운구되었다.
영국 내에서는 왕실 가족과 궁정 인사들, 작위를 받은 기사단, 영국 정치인들, 그리고 올해 초 코로나19 전염병 대응과 지역사회 봉사로 여왕 생일에 표창을 받은 국민 200명이 장례식에 초청을 받았다.
해외 인사의 경우, 왕실이 영국 정부의 의견을 반영해 각국에 초청장을 보냈으나, 관례에 따라 초청 인사 목록을 공개하진 않았다.
영국 BBC와 스카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초청장을 받은 영연방 대표자를 포함한 각국 정상과 외교 사절만 200개국 500명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초청받은 국가 정상보다 초청받지 못한 국가 정상들이 누구인지가 '뉴스'가 되었다.
군주제 국가에선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 불참이 눈에 띄어
우선 군주제를 채택하는 국가 가운데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이자 사실상의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이 참석하지 않았다.
당초에는 초청을 받았지만 2018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라는 논란이 재연된 가운데 장례식 전날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 세기 동안 왕실 간의 결혼으로 혈통이 섞인 유럽 국가에서는 거의 모든 왕들이 가장 오래 재위한 영국 여왕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8촌 자매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유럽 최장수 군주가 된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82) 여왕을 필두로 네덜란드의 빌렘 알렉산더, 벨기에의 필립, 노르웨이의 하랄드 5세, 모나코의 알베르 2세, 스웨덴의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등이 참석했다.
일본에서는 2019년 즉위 후 첫 해외 순방으로 나루히토(德仁) 일왕과 마사코(雅子) 왕비가 참석했다.
글로벌 리더 중엔 푸틴과 루카셴코 그리고 흘라잉 '왕따 3인'
각국 정상 중에서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군사 쿠데타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연합(EU)의 제재를 받는 '동병상련의 왕따 국가들'인 러시아와 벨라루스, 그리고 미얀마가 여왕의 장례식에 초청을 받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영국과 러시아의 외교 관계가 거의 붕괴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대변인은 앞서 "장례식 참석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제적으로 밝혔지만, 어차피 푸틴은 입국 제재에 묶여 있고 초청장을 받지도 못했다.
'21세기의 짜르(황제)'로 통하는 푸틴 대통령은 영국을 국빈 방문해 엘리자베스 여왕의 마차에 동승하기도 했으나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규모로 열린 세기의 조문외교에는 등장하지 못했다.
앞서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러시아 대표를 여왕의 장례식에 초대하지 않은 것은 "특히 엘리자베스 2세의 기억을 모독하는 것"이며 "심히 부도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침공의 길을 열어줘 '푸틴의 푸들'로 통하는 '유럽 최후의 독재자'인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도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영국은 또 지난해 2월 군사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서 대부분 외교관을 철수하는 등 미얀마 군사정권과 사실상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푸틴 대통령은 유엔과 아세안 국가들이 국가수반으로 인정하지 않는 민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부 최고 지도자를 최근 동방경제포럼(EEF)에 초청해 정상회담을 갖고 '왕따 국가'끼리 우의를 다졌다.
이밖에도 미얀마처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시리아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탈레반이 통치하는 아프가니스탄도 초청을 받지 못했다.
외교적 긴장 관계인 북한과 이란, 니카라과 등은 국가 원수가 아닌 대사가 초청되었다.
반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는 초청된 국가 수반 중에서 유일하게 영국 정부가 마련한 차량이 아닌 전용 방탄 리무진 '비스트'를 이용해 장례식에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개인 차량을 이용한 탓에 장례식에 지각했고 이 때문에 밖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입장해야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는 선글라스를 쓰고 운동화 차림으로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된 여왕을 찾았다.
전쟁 중인 나라를 비울 수 없는 우크라이나에선 대통령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가 올렉시 레즈니코프 국방장관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찾아 마크롱 대통령과 젤렌스카 사이의 줄에 앉아 장례식을 지켜봤다.
중국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때 시진핑 국가주석의 특사로 참석한 왕치산 부주석이 시 주석을 대신해 참석했다.
'브렉시트'에도 불구하고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위원장도 함께 참석했다. 튀르키예(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도 참석했다.
여왕의 서거 소식에서 아일랜드 선술집에서는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지만, 2011년 아일랜드 공화국을 국빈 방문한 여왕에 경의를 표하기 위한 상징적인 제스처로 마이클 마틴 아일랜드 총리가 참석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비롯해 앤서니 알바니스 호주 총리,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등 영연방 국가 수반들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 라닐 위크레메싱게 스리랑카 대통령,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피지 총리 등도 과거의 국가원수였던 여왕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10월 대선을 앞두고 장례식을 찾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영국 주재 브라질 대사관저 발코니에서 선거유세를 해 여왕의 장례식을 자신의 대선 캠페인을 위해 이용했다는 국제적 비난에 휩싸였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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