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금리역전 우려에 시장 '트리플 약세'…실물경제 악영향 우려
"한은, 연준 쫒아갈 수밖에…환율 관리 위해 자이언트스텝 바람직" 미국 중앙은행의 긴축속도가 다시 빨라지면서 한국경제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연준 뜀박질에 가랑이가 찢어지는 형국이다.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예고했던 한국은행은 보폭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5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2.50%로, 0.25%포인트만 올린 뒤 "당분간 '베이비스텝'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연말 기준금리에 대해 "2.75~3.00%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말까지 금통위가 두 번 남아 있으므로 1회 혹은 2회 베이비스텝만 밟겠다는 얘기다.
9월 들어서도 한은의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상형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 8일 열린 '2022년 9월 통화정책보고서' 설명회에서 "경기와 물가 상황을 고려해 당분간 점진적인 금리인상 기조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오판이었다. 이젠 떼밀리듯 금리인상 폭을 넓혀야 할 상황을 맞았다. 발단은 미국 물가다. 미국 노동부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발표한 미국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3%로, 다우존스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8.0%)를 상회했다. 6월 9.1%에서 7월 8.5%로 낮아지면서 인플레이션이 다소 잦아드나 했던 기대감이 꺾였다.
벨에어 인베스트먼트 어드바이저스의 토드 모간 회장 겸 파트너는 "이번 물가 지표는 인플레가 지난달 고점을 찍었다는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의 3회 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 인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울트라스텝(기준금리 1.00%포인트 인상)' 가능성까지 고개든 상황이다.
뉴욕증시가 크게 하락하는 등 미국이 '기침'을 하자 한국은 '폐렴'에 걸린 형국이다. 14~15일 연속으로 시장은 주가, 원화값, 채권값이 모두 떨어지는 '트리플 약세'를 보였다.
15일 코스피는 전일 대비 0.40% 떨어진 2401.83으로 마감해 간신히 2400선만 지켰다. 원·달러 환율은 1393.7원까지 치솟아 1400원 선 돌파를 눈앞에 뒀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77%로 상승했다.
우려가 큰 부분은 한미 금리역전이다. 지금 연준의 기준금리가 2.25~2.50%이므로 이번달 FOMC에서 울트라스텝을 밟을 경우 3.25~3.50%가 된다. 한미 금리가 1.00%포인트나 역전되는 것이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고 그 폭이 커질 경우 자본시장에서 해외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위험이 높다. 일반적으로는 금리인상은 증권시장에 악재로 받아들여지지만, 지금은 오히려 금리를 올리지 않는 게 더 부정적인 셈이다.
또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입물가가 올라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 원자재·중간재 가격이 뛰어오르므로 수출기업에도 별로 좋지 않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 기준금리는 연준보다 높은 게 바람직하다"며 "한미 금리역전으로 자본시장과 실물경제가 모두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한미 금리 역전폭이 0.50%포인트를 넘으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에 대해 '코로나19 사태' 당시 이주열 전 한은 총재가 기준금리를 0.50%까지 낮춘 부분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020년 초 정치권에서 금리인하 압박이 거세자 한은은 임시 금통위까지 열어 '빅 컷(기준금리 0.50%포인트 인하)'을 단행했으며, 그 후에도 한 번 더 내렸다.
정치권은 코로나 사태로 어려워진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금리를 내린다고 경기가 회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금리 내리고 돈 풀어 경기가 살아날 것 같으면 뭐가 걱정이냐"고 냉소했다.
실제로 0.50%까지 낮아진 한은 기준금리는 경기 부양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신 풀려난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몰려가 부동산과 주식 거품을 키웠다. 2019년 다소 진정되는 듯했던 집값은 2020년에 또다시 치솟아 '미친 집값'을 형성했다.
김상봉 교수는 "당초 금리를 내릴 때 너무 많이 내리면 안 된다"며 "올라갈 때를 대비해 운신의 폭을 남겨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이 전 총재가 정치권의 압력에 강단 있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 총재가 말했듯 한은은 연준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 연준의 뜀박질로 한국 경제 가랑이가 찢어지고 있으니 뒤늦게라도 쫓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은도 10월 금통위에서 최소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이 불가피하며, 자이언트스텝까지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독립 증권리서치사 더프레미어의 강관우 대표는 "최소 0.50%포인트는 올릴 것"이라며 "환율 관리를 위해서는 자이언트스텝이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김상봉 교수는 "최소한 빅스텝은 밟아야 한다"며 "그 정도는 따라가 줘야 환율 폭등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가계의 이자부담 증가가 두렵다고 금리인상을 머뭇거리다가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빅스텝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며 "경기와 물가 흐름에 따라 자이언트스텝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영익 교수도 "빅스텝 가능성이 있다"며 "자이언트스텝은 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KPI뉴스 / 안재성·박지은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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