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스, 경기 염려하다 실기…볼커, 과감한 인상으로 물가 잡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톨 폴'로 널리 알려진,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종종 비교된다. '톨 창용'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볼커의 키가 201cm로 역대 연준 의장 중 가장 컸는데, 이 총재(192cm)도 역대 한층 총재 중 최장신이다. 취임 후 기준금리를 4회 연속 올리며 강경한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간 점도, 인플레 파이터였던 볼커와 비슷한 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25일 이 총재의 결정은 '톨 창용'이라기엔 실망스러웠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5일 기준금리를 2.50%로, 0.25%포인트만 올렸다. 기준금리를 한은 총재 홀로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N분의 1'인 것도 아니다. 금통위원은 총재 포함 7명인데, 총재의 판단과 선택이 결정적이다.
혹자는 4회 연속 인상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준의 긴축 의지,속도와 견줄 때 이날 한은의 결정은 느슨한 감이 없지 않다. 이 총재가 이날 인정했듯이 한은은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연준으로부터는 그렇지 않다.
연준은 이미 2회 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았다.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자이언트스텝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연준 위원들은 연일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연준이 3회 연속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할 경우 기준금리가 3.00~3.25%로 오른다. 한미 금리 역전폭이 0.75%포인트로 벌어지는 것이다.
한미 금리 역전폭 확대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여러 전문가들이 경고했다. 우선 해외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위험이 높다. 이는 자본시장은 물론 실물경제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미 1340원대를 넘나드는 원·달러 환율도 염려스럽다. 연내 1400원 선을 돌파할 거란 전망까지 나온다. 환율이 고공행진할수록 수입물가가 뛰어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 금리를 올리는 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다. 연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목표에서 멀어진다.
그럼에도 이 총재는 베이비스텝에 그쳤으며, 향후 금통위에서도 "빅스텝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경기침체, 가계의 이자부담 증가가 걱정됐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말했듯 성장률 추락, 고실업을 겪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종식된 사례는 역사상 없다. 경제 철학에서 프리드먼과 대척점에 섰던 케인지언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도 "물가를 1%포인트 낮추려면 국내총생산(GDP)의 4%를 포기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볼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준 의장으로 꼽힌다. '살해 위협'을 무릅쓰면서 기준금리를 21.00%까지 끌어올려 물가를 잡은 덕에 미국 경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전임자 아서 번스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번스는 경기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해 금리인상을 망설이다가 10%가 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 총재는 '한국의 폴 볼커'가 될 것인가, '한국의 아서 번스'가 될 것인가. 이 총재의 선택에 달렸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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