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엔 있는 민간 장기고정금리 주담대, 왜 한국엔 없나?

안재성 기자 / 2022-02-09 16:41:22
미국 MBS·유럽 커버드본드 활성화…시장서 장기대출 재원 조달
국내 시장 환경 미성숙…"정부가 커버드본드 활성화 노력해야"
요즘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은 금리인상이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기준금리는 위를 향할 것이다. 올해 5~6회 인상 전망까지 나온다. 

자고 일어나면 금리가 오르니 전체의 약 80%를 차지하는 변동금리 차주들은 이자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에서 고정금리로 갈아타려고 은행에 문의하는 차주들도 대폭 증가했다. 

그러나 국내은행에서 제공하는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은 거의 대부분 고정금리 기간이 5년으로 제한된다. 5년 후에는 그간의 금리 상승세가 고스란히 반영된다. 때문에 10년 이상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원하는 차주들이 많지만, 마땅한 상품을 찾기 힘들다. 

▲ 미국,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30년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기 힘들다. 장기 고정금리 대출을 활성화하려면, 정부가 나서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의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로는 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는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이 있다. 보금자리론은 10~40년, 적격대출은 10~30년 고정금리가 가능하다. 금리도 매우 낮아서 올해 1월 기준 연 3%대 초중반 수준으로 빌릴 수 있다. 

그러나 두 상품은 모두 주금공이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지원하는 상품이라 이용 조건이 까다롭다. 보금자리론은 생애 최초 주택 구매에 한해서만 이용할 수 있다. 또 부부 합산 연 소득이 7000만 원 이하, 매입 주택 시가는 6억 원 이하여야 한다. 

적격대출은 1주택자도 이용할 수는 있지만, 기존 주택을 2년 내에 팔아야 한다. 소득 조건은 없으나 매입 주택의 시가가 9억 원 이하여야 한다.

대출한도도 있다. 보금자리론은 3억6000만 원, 적격대출은 5억 원까지만 빌릴 수 있다.

주금공 관계자는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은 서민의 주택 구매를 지원하기 위한 상품이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주금공 보증 외에 은행이 자체적으로 만드는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해외 선진국들은 다르다. 미국 등에는 공공기관 보증 상품뿐 아니라 민간 은행에서 만든 최장 30년 고정금리 상품도 존재한다. 덕분에 차주들은 금리 변동 걱정 없이 빚을 갚아나갈 수 있다. 

미국 뉴욕에 사는 교민 최 모(52·남) 씨는 "미국에서는 고소득자가 고가 주택을 매입할 때도 얼마든지 민간 은행에서 30년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저소득자는 민간 상품을 이용하기 곤란하다. 대신 이들은 패니메이, 프레디맥 등 공공기관이 보증하는 장기 고정금리 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영배 디지털금융연구소장은 "은행이 장기 고정금리대출을 취급하려면, 이를 유동화하는 등 리스크를 축소하고 시장에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주택담보대출 유동화증권이나 이를 담보로 만든 채권을 취급하는 시장이 활성화돼 있는데, 한국은 아직 시장 환경이 미성숙한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캐나다 등은 주택저당증권(MBS) 시장이 활발하다. MBS는 주택담보대출을 유동화한 상품이다. MBS 투자자는 원리금을 수취할 권리뿐 아니라 해당 주택담보대출 차주가 빚을 연체할 경우 담보로 잡힌 주택을 처분할 수 있는 권리도 가진다. 

덕분에 안정성이 매우 높아서 수익률이 낮아도 MBS를 기꺼이 구매하는 투자자들이 많다. 은행은 이를 통해 자금을 마련, 차주에게 합리적인 금리(최근 연 3~4%)로 장기 고정금리 대출을 제공할 수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는 커버드본드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커버드본드는 은행 등이 주택담보대출, 국·공채 등 우량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담보부채권이다. 커버드본드 투자자는 해당 우량자산을 담보로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셈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담보로 한 커버드본드의 투자자는 MBS 투자자처럼 해당 대출의 원리금 수취할 권리는 가지지 못한다. 하지만 은행 파산 등으로 커버드본드가 부도날 경우 해당 주택담보대출의 담보가 되는 주택을 처분할 권리는 가진다. 

즉, 커버드본드도 MBS처럼 안정성이 매우 높아 유럽 금융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상품 중 하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MBS도, 커버드본드도 시장이 거의 형성돼 있지 않다. 애초에 은행이 별 관심이 없는 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대체로 국내은행들은 MBS 발행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사실상 수익성만으로 은행의 순위를 매기는 것과 달리 한국은 이익뿐 아니라 자산 규모도 순위 산정의 주요 근거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MBS로 유동화된 주택담보대출은 해당 은행의 자산에서 빠진다. 미국 은행은 리스크를 줄인다는 점에 주목해 MBS를 선호하지만, 국내은행은 자산 규모가 감소하기에 MBS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커버드본드는 주택담보대출이 채권의 담보 역할만 하기에 은행 자산에서 빠지지 않는다. 2014년 국회에서 커버드본드 관련법이 통과돼 제도적인 부분 역시 마련돼 있다. 

그럼에도 국내은행들은 커버드본드에도 별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은행이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만들거나 이를 담보로 커버드본드 발행에 나설 만한 매력을 못 느끼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30년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적정한 금리로 공급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정교한 리스크관리 모델이 필요하다"며 "커버드본드 발행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작업에는 시간, 돈, 인력이 꽤 소요되기에 은행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고 덧붙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도 정부 규제만 아니면, 주택담보대출은 얼마든지 더 팔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 수요가 넘쳐흐르는데, 굳이 힘들여 장기 고정금리 상품을 만들 까닭이 없다는 뜻이다. 

문 소장은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은행에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의 취급 비율 목표치를 설정해주고, 이를 달성한 곳에 인센티브를 줘야 은행이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지금이 커버드본드 시장 활성화를 위한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했다. 문 소장은 "커버드본드가 시장에서 인기를 끌려면 장단기 금리차가 어느 정도 벌어져야 하는데, 요새 금리 상승기를 맞아 장단기 금리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적극 독려하면, 충분히 장기 고정금리 대출이 정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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