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찰이 일본에 '리호남의 외화벌이' 정보 제공했나

김당 / 2022-01-06 10:21:25
'총풍' 사건 등장인물 리호남, 24년만에 일본 신문 1면 장식
요미우리 "북한 관련 54번째 '첩보사건'이자 첫 외화벌이 사건"
영화 '공작' 흑금성 공작원의 북측 파트너 '리명운' 실제모델
1998년 10월 국내 유력신문의 1면을 장식했던 북한 인사가 거의 4반세기만에 다시 일본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讀賣)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 97년 대선 기간에 북한에 무력시위를 요청한 이른바 '총풍' 사건의 등장인물인 리철운(본명 리철). 1998년 10월 1일자 동아일보 1면 캡처

1990년대 중반부터 리철운, 리호남 등의 이름으로 북한의 대외 경제사업의 최일선에서 외자유치 및 외화벌이 사업을 해온 리철(68)이 그이다.

동아일보는 1998년 10월 1일자 1면에 '대선직전 북에 판문점 총격요청'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비선조직인 오정은∙장석중과 한성기 3인이 공모해 북측에 무력시위를 요청했다는 단독 기사를 게재해 파문이 일었다.

당시 3면에는 '97 대선직전 북에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전말'이라는 제목으로 사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도했는데, 장석중과 한성기 2인이 베이징에 가서 무력시위를 요청한 북측 인사가 바로 '리철운'이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홍경식)는 위 3인방이 리철운에게 대선 전에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을 확인해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北리철운 등에 무력시위 요청" 제하의 위 동아일보 98년 10월 27일자 1면 기사는 당시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24년만에 그가 '리호남(リ・ホナム)'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1면과 사회면을 장식한 것이다.

▲ 거물급 공작원 리호남이 일본 기업을 이용해 외화벌이를 한 이번 사건을 일본 경찰이 '첩보(스파이) 사건'으로 인정했다고 보도한 요미우리 신문 4일자 1면과 사회면 PDF 지면

'북한 공작원, 일본기업 이용해 외화벌이 하나…경찰은 '첩보사건' 인정'(北の工作員、日本企業を利用して外貨獲得か…警察は「諜報事件」に認定) 제하의 요미우리 기사에 따르면, 일본 경찰 당국은 중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북한 공작원 '리호남'이 외화벌이에 일본 기업을 이용한 의혹이 있는 '첩보 사건'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신문은 특히 일본 경찰 당국이 북한 관련 '첩보(ちょうほう) 사건'으로 인정한 것은 전후(戰後) 54건째이지만 외화벌이를 둘러싼 '첩보 사건' 인정은 처음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일본에는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공작∙스파이 활동을 직접 단속하는 법령은 없다. 이 때문에 일본 경찰은 외국인들에게 적용되는 입관난민법(入管難民法) 위반(불법체류죄 등)으로 리 씨와 접촉해온 재일한국인 2명을 적발해 관련자 진술과 압수물 분석 등을 통해 공작활동의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첩보 사건' 54건의 대부분은 미·일 군사정보 수집과 대남 공작으로 북한의 화물여객선 '만경봉(万景峰) 92'호를 무대로 한 '첩보 사건' 등이 인정되고 있다. 북한의 대일 외화벌이 사건으로는 첫 첩보사건이라는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일본 경찰이 유엔 경제제재 하에 있는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국제적으로 신용이 있는 일본 기업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해외 정보기관과 제휴해 진상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북한과 관련된 '첩보 사건'을 정보 공유하거나 제휴할 수 있는 곳은 한국의 정보∙수사기관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이 이 사건을 주목하게 된 것도 일본 경시청 공안부가 2017년경 한국 당국으로부터 리호남과 일본 기업과의 접점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국가정보원의 일본측 파트너는 내각조사실이고, 경찰청(국가수사본부)의 일본측 파트너가 경시청 공안부임을 감안하면 국정원보다는 경찰청과의 정보 공유나 협조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와 관련 국정원 관계자도 "우리 쪽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리철 북한 무역성 참사의 40대 시절 모습 

중국 단둥에서 리철과 제휴해 대북사업을 하고 있는 한 인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UPI뉴스에 "(자신도) 리철과 접촉한 것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통신조회를 당했으며 지난해 경찰이 통신조회 사실을 통보해줘 알게 되었다"고 말해 주목된다.

리 씨를 통해 오랫동안 대북 협력사업을 해온 이 인사의 발언은 국내에서도 경찰이 리 씨와 접촉한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경시청은 2017년 북한의 대외공작기관인 정찰총국에 소속돼 있으면서 '무역성 참사' 등의 직함으로 활동하는 리호남이 일본 기업과의 접촉한다는 정보를 한국 당국으로부터 입수해 내사를 시작했다.

경시청 공안부는 2020년 가을 도쿄도 내 무역회사 관계자를 입관난민법(入管難民法) 위반 혐의로 수색한 결과, 리호남이 일본 무역회사 관계자와 연락을 취해 외화벌이 활동을 하고 있던 혐의가 포착했다.

또한 수색에서는 이 무역회사가 2014~18년경 리비아의 중유와 러시아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매입해 전매하는 계약서류와 거래액의 일정 비율을 리호남에게 중개수수료로 지불한다고 하는 내용의 서류가 다량 압수되었다고 한다.

▲ 리철(리철운, 리호남)은 논픽션 〈공작-흑금성 시크릿 파일〉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 공작원'(황정민 분)의 북측 파트너인 '리명운'(이성민 분)의 실제 인물이기도 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리철(리철운, 리호남)은 논픽션 〈공작-흑금성 시크릿 파일〉(이룸나무)을 토대로 한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 공작원'(황정민 분)의 북측 파트너인 '리명운'(이성민 분)의 실제 인물이기도 하다.

요미우리는 이날 리호남의 실체와 관련, 리 씨를 10여회 이상 접촉한 UPI뉴스(UPIニュース) 김당 기자를 취재해 "정력적인 사업가라는 인상으로 러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지로 출장을 자주 다닌다고 들었다. 일본 경제사정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고 인용 보도했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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