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감이 팽배하지만 정부는 "시스템적 리스크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고 한다. 은행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다.
외환위기 당시 기업이 빚을 못 갚아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가계가 빚을 못 갚아서 은행 등 금융회사가 쓰러졌다. 이런 걸 시스템적 리스크라고 한다.
그럼 시스템 리스크로 연결되지만 않으면 괜찮은 걸까. 천만의 말씀이다. 가계부채 부실 쓰나미는 숱한 가계를 덮칠 것이다. '영끌' 차주가 첫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은행이 괜찮다고 괜찮은 게 아니다. 통계는 이미 임계치를 넘어선지 오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가계 및 비영리단체 부채'는 총 2159조9000억 원으로 전년동기(1939조9000억 원) 대비 11.3% 급증했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 부채는 흔히 인용되는 가계부채 통계 '가계신용'(올해 6월말 기준 1805조9000억 원)에 누락된 소규모 자영업자 부채를 포함한다. 포괄적 가계부채 통계로, 국제비교가 가능한 가계부채 통계는 이것이다.
지난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200.7%로 전년(188.2%) 대비 12.5% 포인트 상승했다. 가계부채 규모가 소득의 2배를 넘어선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권이다. 금리가 상승세이므로 부채의 무게는 점증할 것이다.
OECD 국가 중 덴마크(281%), 노르웨이(239%), 네덜란드(239%), 스위스(212%) 등 한국보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더 높은 나라도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이들 나라의 가계부채가 한국보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어 가계가 똑같은 양의 빚을 진다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세금을 많이 내고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리는 유럽 선진국 가계의 부채와 한국의 사정을 단순 비교하는 건 난센스라는 얘기다.
결국 가계부채는 총량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빚이 아무리 많더라도 차주가 갚을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한국의 가계부채는 그렇게 건전하지 않으니 큰일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엉터리 부동산 정책에 맞물려 폭주한 '영끌'대출이 대표적이다.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여기부터 부실이 터질 수밖에 없다. 이미 시작됐는지 모른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올해 10월 서울 아파트 하락 거래 비중은 31.8%에 달했다. 하락거래란 직전 거래가보다 낮은 수준에서 이뤄진 거래를 의미한다.
임병철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강화된 대출 규제, 기준금리 인상, 가격 고점 인식 등으로 서울 아파트 오름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누차 강조하듯 돈은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려야 한다. 그러나 이미 한국에는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짊어진, '영끌차주'가 너무 많다.
금융회사도 가계부채 부실의 안정권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퍼펙트 스톰' 가능성을 얘기했다. 세상은 예측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세계 경제대통령' 앨런 그린스펀 미 연준 의장은 부채 부실의 쓰나미가 덮치기 직전까지도 그 가능성을 알아채지 못했다.
가계부채 뇌관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 더욱 걱정스럽고 한심한 것은 대선 정국이다. 여야 빅2는 모두 표심을 유혹하려 위기를 해결하기 보단 위기를 키울 정책을 내걸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가계대출 총량규제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아예 "주택담보대출 등 대출규제를 완화하고 종부세도 폐지하겠다"고 한다.
부실 쓰나미가 가계를 덮친 다음 또 무슨 변명과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 앤런 그린스펀이 반성문을 읊었을 땐 이미 세계 경제가 망가진 뒤였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