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대 총선 여소야대를 일거에 여대야소로 바꿔
국민의힘 "북방외교 성과…과오는 덮을 수 없어"
與 "역사의 죄인…전두환씨 행보와는 달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 남을 드라마틱한 장면을 여럿 연출했다. 이른바 '6·29 선언'과 6공화국 출범, 3당 합당이 대표적이다.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7년 임기 마감을 앞둔 1987년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 전 대통령을 지명했다. 그리곤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겠다는 호헌을 주장했다가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거센 저항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정권 위기 국면에서 쿠데타 2인자이자 전 전 대통령과 육사 11기 동기이던 노 전 대통령은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1987년 6월 '6·29 선언'을 내놓는다.
6·29 선언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 복권 및 시국 관련 사범 석방 △언론기본법 개폐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등이 골자였다. 이 선언은 '전두환 아이디어'로 알려졌다. 당초 미온적이던 노 전 대통령이 고심 끝에 수용한 뒤 요구를 추가해 자신의 '결단'인 양 비치게 했다는게 중론이다.
그해 10월 '대통령 직선·5년 단임'의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공포됐다. 같은 해 12월 16일 대선에서 야권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가 무산되며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88년 제6공화국으로 불리는 민정당 노태우정권이 출범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열겠다"며 5공과 차별화를 꾀해 당선됐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뒤엔 반(反)정부 인사목록을 만들어 사찰토록 하고 유사시 전원 검거한다는 '청명계획'을 세웠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보안사령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실이 밝혀져 역풍을 맞았다. 일련의 비민주적 행보는 노태우 정권이 군부독재의 연장선이라는 혹평을 받는 근거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우여곡절 끝에 집권했으나 그해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불리한 정치 환경을 맞았다.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정치판이 재편된 것이다. 여소야대 구도는 집권세력에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었다.
야권 주도로 5공 정치권력형 비리를 조사하기 위한 '5공 비리특위'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조사를 위한 '5·18 광주특위'가 13대 국회에서 만들어졌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꼼수'로 불리한 정국을 돌파했다. 민정당과 야당이던 김영삼 중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중심의 신민주공화당 3개 정당이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창당한 것이다. 순식간에 국회는 여대야소로 바뀌었다.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은 소수 야당으로 고립됐다.
민자당은 노 전 대통령이 총재를, 김영삼·김종필·박태준 3인이 대표위원을 맡으며 집단지도 체제로 운영됐다. 계파 간 힘겨루기로 공천과 당직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1992년 14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는 데 실패했다.
3당 합당으로 호남은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지역주의는 심화되는 부작용이 뒤따랐다.
국민의힘은 이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며 "영면을 기원하며 아울러 유가족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고인은 후보 시절인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였고 헌정사상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당선된 첫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재임 당시에는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북방외교 등의 성과도 거뒀다"고 강조했다.이어 "하지만 12·12 군사쿠데타로 군사정권을 탄생시킨 점, 5·18 민주화운동에서의 민간인 학살 개입 등의 과오는 어떠한 이유로도 덮어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불행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 별세에 대해 역사의 죄인이지만 전 전 대통령과는 다르다며 애도를 표했다.
이용빈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영욕의 삶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영면을 기원한다"며 "우리 역사에 다시는 과오가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더욱 엄정한 역사적 평가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은 12·12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 진압에 가담한 역사의 죄인"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재임 기간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중국 수교 수립 등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며 "퇴임 이후 16년에 걸쳐 추징금을 완납하고 이동이 불편해 자녀들을 통해 광주를 찾아 사과하는 등 지속적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의 마지막은 여전히 역사적 심판을 부정하며 사죄와 추징금 환수를 거부한 전두환 씨의 행보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선 후보는 공식 입장을 내는데 고심하는 모습이다.
이 후보는 기자들이 노 전 대통령 별세에 대한 입장을 묻자 "그건 조금 이따가 하자"며 말을 아꼈다. 조문 여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이 후보는 "캠프와 상의를 하겠다"고 했다.
KPI뉴스 / 장은현 기자 e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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