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오는 29일부터 전세대출 한도를 전세보증금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하기로 하자 벌써부터 부동산업계는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전세대출은 전세보증금의 80%, 최대 5억 원까지 가능한데, 금융당국의 총부채원리금상화비율(DSR)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다.
정부가 전액 보증해주는 대출인 데다 규제도 미약하니 은행들은 DSR 100~120% 수준의, 고액 대출을 편하게 실행해왔다.
그런데 실수요자를 도우려는 목적의 전세대출이 그간 갭투자를 지원하는, 나아가 집값 상승 동력 중 하나로 작동해왔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7월까지 서울 지역 자금조달계획서 19만3974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30 주택 매수자의 임대보증금 승계 비율이 52%로 나타났다. 청년층 주택 매수자의 절반 이상이 갭투자로 집을 산 것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집값 폭등의 진원지 중 하나로 갭투자를 꼽았다. 서 연구원은 "전세보증금을 이용한 갭투자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보다 금리·규제·자금조달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며 "때문에 갭투자가 성행하면서 '박근혜 정부' 이후 전셋값과 집값의 동조화 현상이 강해졌다"고 판단했다.
그는 "다주택 투기 수요는 물론,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에서도 핵심 레버리지 수단은 전세보증금"이라며 "정부가 전세대출을 규제 예외로 두면서 사실상 갭투자를 지원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풀린 막대한 유동성과 함께 임대차3법 등의 영향으로 무섭게 치솟은 전셋값이 올해 집값 폭등의 주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세대출이 쉽게 나오니 고액의 전세금도 세입자들이 기꺼이 부담했다"며 "덕분에 주택 매수자는 갭투자를 통해 한결 수월하게 필요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때문에 소수의 실거래 신고가가 터지면서 전체 호가를 끌어올리는 현상이 올해 내내 반복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 전세대출이 급증세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올해 들어 8월까지 14% 이상 폭증했다.
전체 금융권의 전세대출은 2015년말 약 25조 원에서 올해 8월말 약 150조 원으로 6년도 지나기 전에 6배 부풀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이처럼 치솟은 전세대출이 집값을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며 "그러나 그간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였던 전세대출에 대해서도 금융권과 금융당국의 태도가 엄격해지고 있어 앞으로는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5~6%로 설정했는데, 이미 몇몇 은행은 턱밑까지 찼다. 특히 전세대출의 급증세가 가계대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 7월말 기준 가계대출 증가율은 2.6%였는데, 지난 23일에는 4.3%로 뛰었다. 불과 한달여 새에 1.7%포인트 급등한 셈이다.
이는 농협은행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등을 중단하면서 대출 수요가 쏠린 탓으로 풀이된다. 가계대출 중에서도 전세대출이 18.8%나 폭증했다. 때문에 국민은행은 이번달 들어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전세대출 한도를 축소한 데 이어 전세보증금 목적의 대출도 한도를 옥죈 것이다.
하나은행은 23일 기준 가계대출 증가율이 4.9%지만, "시장 모니터링 중이며 아직 전세대출을 제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신한은행(2.6%)과 우리은행(3.7%)은 아직 목표치까지 여유가 있다.
하지만 다른 은행들도 '시간 문제'라는 것이 주된 관측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농협은행에 이어 국민은행도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타행으로의 '쏠림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며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팔라지기 시작하면, 결국 한도 축소나 판매 중단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음달 발표 예정인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대책'도 요주의 대상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전세대출에 대해 "실수요자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할 것"이라면서도 조심스러운 규제 의사를 표했다. 고 위원장은 "전세대출의 조건이 좋다보니 많이 늘어나는 부분도 있다"며 "여러 가지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하반기 전세대출은 쥐어짤 수밖에 없다"며 규제 강화를 시사했다.
은행의 자율적인 전세대출 총량관리에 금융당국의 공식적인 규제까지 더해질 경우 한도가 대폭 축소될 위험이 제기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전세대출의 한도가 대폭 축소되거나 일부 상품이 판매 중단될 경우 세입자들이 더 이상 고액의 전세금을 마련하기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곧 갭투자를 막아 부동산시장을 떠받치는 한 축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높다"며 "금리 상승세보다 충격이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거품이 꺼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며 "주택 매수의 태반을 차지하는 갭투자 차단은 집값 폭락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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