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빚이 유동성 축소 국면에서 위기 불러…"국내 자산시장과 닮은꼴" 중국 2위 부동산개발업체 헝다 파산위기는 추석연휴를 긴장시킨 악재였다. 그러나 별 충격은 없었다. 연휴를 마친 한국 금융시장은 요동치지 않았다.
23일 국내 증시는 코스피가 0.41%, 코스닥이 0.94% 하락한 정도였다. 원·달러 환율은 장 초반 1186.4원까지 치솟았으나 장 후반 상승폭을 줄어들면서 1175.5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헝다그룹이 지난22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성명에서 위안화 채권 보유자와 개별 접촉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밝히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미 진정세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증시는 1%안팎 뛰었다.
안심하기엔 이르다. 위기는 진행형이다. 헝다그룹은 3000억 달러(한화 약 355조 원) 규모의 막대한 부채로 파산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덩치가 커 글로벌 경제에 미칠 영향도 만만찮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헝다 위기가 '리먼 브러더스 사태'급은 아니라는, 특히 서구권 국가에 미치는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우세하다.
글로벌 유동성 축소 흐름…빚으로 떠받쳐온 국내 부동산에 울리는 '폭락' 경고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헝다는 이날 역외 달러 채권 이자 8350만 달러(한화 약 993억 원)와 위안화 채권 이자 2억3200만 위안(한화 약 425억 원)을 지급해야 하는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안화 채권의 경우 단지 "해결했다"고만 했을 뿐, 이자를 갚았다는 이야기는 없다. 때문에 이자를 전액 지급하지 못하고 부분 지급 또는 시한 연장 등의 미봉책을 썼을 것으로 예측된다. 규모가 더 큰 달러화 채권 이자 지급 계획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결국 헝다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이를 거라는, 나아가 파산까지 직행할 거라는 예상이 힘을 받고 있다.
헝다가 파산할 경우 중국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부동산 관련 부문이 중국 경제의 약 25%를 차지하는 데다 다른 부동산업체들도 과도한 부채를 지고 있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채권 애널리스트 저우촨이는 "중국의 다른 부동산업체들이 헝다가 초래한 쓰나미에 익사하고 있다"며 "큰 규모의 채권 만기가 도래하는 기업에게 향후 몇 달간의 유동성 고갈이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헤지펀드 키니코스 어소시어츠의 창업자 짐 차노스는 "중국의 부동산시장은 매우 과열돼 있다"며 "중국에는 수많은 '헝다'가 존재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헝다 위기가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리먼 사태이상일 수 있다"고 했다.
중국 경기의 둔화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비롯해 신흥국 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미국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전세계 신용 경로 등을 통해 글로벌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경기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중국 영향을 많이 받는 국내 경기와 자산에 좋은 소식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부동산 등 국내 자산시장의 폭등을 야기했다는 점, 한국은행의 금리인상과 가계대출 총량규제 등 부채 축소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 등도 우려를 키운다. 여러 모로 헝다와 '닮은꼴'이란 지적이다.
지난 16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1조5680억 원으로 전년말(670조1539억 원) 대비 31조4141억 원(4.69%) 늘었다.
가계대출 증가액 중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의 합이 21조5019억 원으로, 전체의 68.4%를 차지했다. 이동훈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분은 전세대출, 정책모기지, 집단대출이 대부분"이라고 진단했다.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헝다 위기'가 코로나 19 팽창정책으로 부풀대로 부푼 부동산시장의 거품을 꺼뜨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헝다 문제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라면서도 "글로벌 긴축 기조와 함께 과열된 글로벌 자산시장이 조정되는 과정에서 관련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도 "부동산 관련 부채 누증 문제가 현실화한 것인 만큼 이번 사태의 전개상황에 따라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소지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 역시 "글로벌 통화정책 정상화와 그에 따른 부채 감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헝다와 같은 시장불안 요인이 갑작스럽게 불거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당장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헝다 위기가 세계적인 문제로 커지면 영향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 경우 부동산 하락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헝다 위기가 헝다 한 곳의 문제인지, 중국 부동산 전체의 문제인지가 중요하다"며 "파장이 중국 전체에 미치면, 국내 부동산에도 하락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동현 하나은행 부동산자문센터장도 헝다 위기가 어느 정도로 커질 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기원 데이터노우즈 대표는 "부동산 우상향은 결국 시중 통화량이 계속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현재 아파트 가격에 역사상 최악의 거품이 껴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거품이 꺼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 투자)'과 갭투자로 떠받쳐온 부동산시장에 신규 투자금 유입이 멈출 경우 순식간에 폭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증시 단기 조정 불가피…'빚투' 꺼질 시 장기 조정 위험도
전문가들은 증권시장의 단기 조정은 피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헝다 위기는 국내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코스피 200일 이동평균선(3110선) 지지력 테스트 또는 일시적인 하향 이탈 가능성은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헝다 위기 영향이 올해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조정 국면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상승 국면에서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나아가 장기 조정 위험도 거론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헝다 위기는 신흥국 시장의 매력을 떨어뜨려 외국인투자자의 자금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며 "여기에 금리인상 등으로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까지 축소될 경우 장기 조정을 겪을 수 있다"고 염려했다.
그간 국내 증시는 사실상 빚이 떠받쳐 왔다는 점이 '적신호'를 울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증권사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역대급인 25조4562억 원으로 집계됐다. 연초(19조3522억 원)에 비해 31.5% 폭증한 수준이다.
예탁증권담보융자 역시 크게 늘었다. 3개월 전 18조4000억 원 수준이었던 예탁증권담보융자 잔고는 지난 8일 기준 20조 원을 넘겼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한 투자자도 다수"라면서 "신용대출 규제 강화 등이 유동성 축소를 일으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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