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모험', 성공할 수 있을까

안재성 기자 / 2021-09-10 16:48:25
중앙화가 기본인 법정통화에 '脫중앙화' 가상화폐 채택…"역사적인 실험"
"경제·재정 최악인 나라에 해법될 수도" VS "높은 변동성·자금세탁 위험"
"비트코인이 12년 역사상 가장 큰 시험을 마주하게 됐다."

엘살바도르가 지난 7일(현지시간)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하자 블룸버그통신은 이렇게 평했다.

모든 국가에서 화폐는 '중앙화'가 기본 원칙이다. 아무나 화폐를 발행할 수 없다. 오직 중앙은행에서만 발행하며, 기준금리, 양적완화 등 통화정책을 이용해 통화량을 조절한다. 통화정책은 정부의 중요한 경제정책수단이다.

그런데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이런 화폐의 기본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기본 개념이 탈중앙화다. 누구나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으며, 자유롭게 거래 가능하다. 비트코인의 유통량을 통제하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다는 것은 국가의 주요 정책수단 하나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정부가 스스로 '절름발이'를 자처하는 행위, "역사적인 실험"이라 할 만하다.

우크라이나·쿠바 등 비트코인 상용화 추진

엘살바도르가 이토록 비상식적이고 위험한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엘살바도르에는 이미 자국 통화가 존재하지 않은 점이 컸다.

엘살바도르는 2001년 자국 통화 '살바도란 콜론'을 포기했으며, 현재 미국 달러화를 법정통화로 쓰고 있다. 엘살바도르는 1990년대에 물가상승률이 40% 가까이 치솟으면서 화폐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국가 경제가 망가졌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고통은 자국 통화를 포기함으로써 간신히 해결됐다.

대신 엘살바도르는 통화정책 수단을 잃었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에 따라 화폐 가치가 휘청대고 있다. 비트코인이 새롭게 법정통화가 돼도 크게 바뀔 점이 없는 셈이다.

경제·재정이 너무 취약해 국내총생산(GDP)의 23%(2020년 기준)를 해외에서 일하는 국민의 송금에 의존하고 있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해외에서 일하는 엘살바도르 국민의 송금은 글로벌 송금업체인 웨스턴유니언을 거쳐서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약 10%를 수수료로 지불한다.

그러나 비트코인으로 송금할 경우 전자지갑에서 전자지갑으로 비트코인이 실시간으로 옮겨지며, 수수료가 전혀 들지 않는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비트코인 법정통화 채택을 통해 연간 약 4억 달러의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며 "이는 엘살바도르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엘살바도르가 법정통화로 채택한 비트코인. 세계 최초의 시도인데, 성공할 것인가. [셔터스톡]

한 마디로 '최악'의 상황에서, 더 잃을 것도 없기에 '차악'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엘살바도르처럼 경제·재정이 취약하고 자국 통화를 포기했거나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들은 이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비트코인 채택 반대 시위가 수도에서 일어나는 등 현재는 혼란 상태지만, 부켈레 대통령은 "모든 혁신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학습기간이 필요하다"며 성공을 자신했다.

중앙아메리카 경제통합은행의 단테 모시 총재는 성명을 통해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이 시민들을 위한 안전한 지불 수단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낙관적인 입장을 표했다.

몇몇 전문가들도 엘살바도르같은 경우에는 비트코인이 충분히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최화인 금융감독원 블록체인 발전포럼 자문위원은 "자국 통화가 공신력을 잃거나 통화 주권을 회복하려는 국가들에게 비트코인은 유효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별다른 기반 산업을 갖추지 못한 엘살바도르는 이번 법정통화 채택을 계기로 채굴업체 등 가상화폐 관련 산업을 국내로 유치할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이미 저소득 국가에서 비트코인 상용화 움직임은 나타나고 있다. 미 경제전문매체 CNBC에 따르면, 지난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의회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합법화 법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놓은 상태다.

쿠바는 오는 15일부터 상거래에서 가상화폐 사용을 허가하기로 했다. 그밖에 파나마, 탄자니아, 가나, 온두라스, 과테말라 등도 비트코인의 상용화 또는 법정통화 채택을 검토 중이다.

월가의 투자가 마크 모비어스는 "재정 문제를 겪고 있는 일부 국가들이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비트코인은 물물교환 수단에 가까워"…극심한 변동성 우려

엘살바도르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엘살바도르 입장에서는 어차피 통화정책 수단이 없었다고 하지만, 최소한 달러화는 연준의 통제를 받고 있다.

그러나 탈중앙화된 비트코인은 누구도 통제하지 못한다. 거대 리스크는 달러화와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하자 국가 신용등급을 'B3'에서 'Caa1'로 떨어뜨렸다.

특히 가장 우려가 집중되는 리스크는 가상화폐 특유의 높은 변동성이다. 지난 1년 간 비트코인 가격은 한화로 1000만 원대에서 7000만 원대까지 크게 출렁였다.

올해 4월 중순경 7000만 원선을 돌파했던 비트코인은 5월 중순에는 3000만 원대 초반까지 굴러 떨어졌다. 7월말부터 반등 전환되더니 9월초에 6000만 원대로 올라섰다.

이처럼 변동성이 극도로 높기에 리스크도 거대할 수밖에 없다. 스티브 행크 존스홉킨스대 경제학 교수는 "비트코인은 통화가 아니라 매우 투기적인 자산"이라며 "결국 위험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네쉬 비스와나트 나트라지 워릭경영대학원의 재무 조교수는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이 엘살바도르에 인플레이션, 소비 저하 등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염려했다.

멕시코 중앙은행의 알레한드로 디아스 데레온 총재는 "비트코인은 화폐라기보다 물물교환 수단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그는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채책 시 국민들의 구매력이나 봉급이 하루에도 10%씩 오르내릴 수 있다"고 걱정했다.

통제받지 않으며, 익명성이 강하니 자금세탁 등 범죄에 악용될 위험도 높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세계은행은 "엘살바도르에서 자금세탁이 횡행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엘살바도르의 경제학자 리카르도 카스타네다는 "이번 선택은 엘살바도르를 '돈세탁의 천국'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결국 엘살바도르 실험의 성공의 열쇠는 향후 비트코인 가격 동향에 달려있을 전망이다. 만약 비트코인 가격이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꾸준히 우상향한다면, 더 많은 엘살바도르 국민들이 해외에서 비트코인으로 송금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가격이 떨어진다면? 가상화폐업계 관계자는 "2018년에 비트코인 가격이 80% 이상 급락했다. 같은 현상이 반복되면, 엘살바도르 국민들의 반발이 커질 테고 실험은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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