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자 "약식 정상회담 합의했지만 일본이 일방취소"
스가 "징용·위안부 약속 안지켜…한미일 회담 없다"
인기 바닥에 관계 개선보다 갈등 확대 집중하는 듯
찬바람 쌩쌩 부는 한일 간 냉랭한 관계가 재확인됐다.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가 열린 다자 외교무대에서다.
특히 한일 정상이 당초 회담하기로 약속했다가 못 만난 것으로 확인되면서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 형국이다. 일본 정부는 우리의 연례 동해영토 수호훈련을 빌미로 한국 정부와 맺은 회담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영국 남서부 콘월 카비스 베이 호텔 회담장. 문재인 대통령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 조우해 "반갑다"고 인사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취임한 스가 총리와 대면한 것은 처음이다.
양국 정상은 당일 G7 공식 만찬장에서도 만나 짤막하게 대화했다. 시간은 1분 정도였다고 한다. 3일 간 정상회의가 이어졌는데 한일 정상이 한 것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한일 정상회담,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았는데 결국 불발됐다. 일제 강제동원 노동자 문제 등 양국 현안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 무역전쟁은 강제동원·위안부 문제 등과 맞물려 양국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한번 틀어진 사이는 좀체 회복되지 않고 있다. 미·일에서 새 지도자가 나왔으나 아직까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문 대통령은 두번씩이나 먼저 스가 총리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관계 개선을 위해 나름대로 성의를 표한 것으로 비친다. 스가 총리는 손을 잡아주긴 했으나 '화답'하지는 않았다. 나중엔 "한국은 약속을 안 지킨다"며 '뒤끝'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스가 총리와 공식 혹은 약식 회담을 갖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영국을 떠나 다음 방문지인 오스트리아로 향하던 13일 SNS 글을 통해서다.
문 대통령은 "스가 총리와의 첫 대면은 한일관계에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면서도 "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른 정상들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매우 의미 있었다"고 평가하며 "우리는 국격과 국력에 맞는 역할을 약속했고 특히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가교 역할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이제 우리는 우리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나라가 됐다"며 "많은 나라가 우리와의 협력을 원한다. 참으로 뿌듯한 국민들의 성취"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에 두 정상 간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과 배석자가 제한되는 약식회담 성격상 갈등 현안을 깊이 있게 논의할 수는 없지만, 스가 총리 취임 이후 첫 회담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두번이나 스가 총리에게 먼저 다가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14일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한일 외교 당국은 G7 정상회의 기간 한일 정상이 약식 정상회담을 하기로 잠정 합의한 상태였다.
당국자는 "우리측은 처음부터 열린 자세로 일본측의 호응을 기대했다"며 "그러나 일본측이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동해영토 수호훈련을 이유로 당초 실무차원에서 잠정 합의했던 약식회담마저 끝내 응해 오지 않은 것은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본 측이 회담 취소 사유로 밝힌 한국군의 동해영토 수호훈련은 '독도방어훈련'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해군과 해경 함정 및 항공기 등을 동원해 1986년부터 매년 상·하반기에 진행되며 올해 상반기 훈련은 이번 주 예정됐다. 그간 일본은 한국이 독도방어훈련을 할 때마다 외교 채널을 통해 반발해왔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당초 합의한 정상회담까지 취소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외교가에서는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판 등으로 인기가 바닥인 스가 총리가 국내 정치적 고려로 한국과 관계 개선보다는 갈등 확대에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스가 총리가 문 대통령과 대면후 영국 콘월에서 열린 동행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을 강조하며 이때문에 한미일 정상회담은 열릴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스가 총리는 영국 콘월에서 열린 동행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한국을 염두에 두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 환경에는 없다"고 말했다.
스가 총리는 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 측의 움직임으로 한일 문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이 강제동원 노동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가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지도력을 발휘해 문제를 잘 정리하길 바란다"고 했다. 한미일 정상회담 시기에 대해선 "구체적인 것은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스가 총리는 "(문 대통령이) 같은 회의장에서 인사하러 와서 실례가 되지 않게 인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비큐(만찬) 때도 (문 대통령이) 인사하러 왔다"고 전했다.
스가 총리는 영국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는 미일정상회담을 10분간 갖고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교도통신은 한일 정상회담 불발에 대해 "삐걱대는 한일 관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KPI뉴스 / 허범구 기자 hbk1004@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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