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급식 선택권 주세요"…인권위 진정 나선 청소년들

권라영 / 2021-06-04 17:51:50
"비건 걸림돌은 급식…동물성 반찬 빼면 거의 맨밥"
변호사 "비건 학생들, 건강권 심각하게 침해받아"

고등학교 3학년 김서진(18) 씨(성별 이분법적 호칭을 지양하는 당사자 요청에 따라 씨로 표기)는 3년 전 수평아리가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갈리는 영상을 봤다. 식탁 위의 고기는 그에게 더 이상 음식이 아니라 생명이었다. 그렇게 비건(완전 채식)이 되었다.

김 씨는 "우리의 식탁에는 동물들의 죽음이 당연한 것처럼 만연하다"면서 "이 현실을 보는 것이 괴롭다"고 했다. 그러나 비건으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 급식이 최대 걸림돌"이었다.

▲ 4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학교에서의 채식선택권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에서 진정 당사자인 이승주(왼쪽에서 2번째) 씨가 발언하고 있다. [권라영 기자]

"비건 급식이 제공되지 않고, 급식 성분표가 공개되지 않아요. 알레르기 성분표는 있지만 알레르기 유발 성분만 적혀 있고, 그마저도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이라 정확하지 않기에 실제로 무엇이 비건 메뉴인지도 부정확해서 비건 추정 메뉴를 골라 먹는 수밖에 없어요."

김 씨는 "어느 날에는 비건 추정 메뉴가 단 한 가지도 없기도 하고, 평소에는 맨밥이나 생과일 등 한 가지만이 비건 메뉴인 경우가 가장 많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비건을 실천 중인 초·중·고교 학생들과 이들의 부모는 4일 학교에서의 채식선택권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또 다른 진정인인 고등학교 3학년 이승주 씨는 "급식 시간은 고난과 좌절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이 씨는 "음식이 식판에 오르는 동안 우리 역시 신념의 시험대 위에 오르게 된다"면서 "과연 이게 비건일지, 먹어도 되는 것일지, 혹시나 다른 재료가 섞여 들어가지는 않았을지 우리의 내면에서 끊임없는 의심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진정 대리인을 맡은 지현영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비거니즘은 단순히 먹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상품 소비나 취미, 직업을 비롯한 모든 개인적 선택에 있어 동물과 환경 착취를 거부하는 신념과 철학"이라면서 "일률적인 급식 문화는 학생들이 신념과 철학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기, 생선, 달걀, 우유 등 동물성 식재료가 들어갔거나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 음식을 제거하고 나면 맨밥에 반찬 한 가지로 식사를 하기 일쑤"라면서 "학생들은 헌법상 권리인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화의 바람은 불기 시작했다. 울산시교육청은 2021학년도 학교급식기본방향을 통해 학교 채식급식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월 1회 채식의 날, 매주 돼지, 소, 닭, 오리 등을 제한하는 식단을 제공하는 '고기없는 월요일', 상시 채식 선택 급식을 운영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는 지난 3월 25일부터 서울시장이 채식생활 실천을 위해 교육기관 등에서 채식의 날을 지정해 운영하도록 권장할 수 있으며, 어린이 및 학생들에게 채식 식단 등에 대해 교육하고 실천하도록 교육기관과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채식환경 조성 지원에 관한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채식급식시민연대는 이러한 사례를 소개하며 "학교 내에서 채식선택급식을 실시하는 것은 교육청의 의지만 있다면 지금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학교장에게 비건 학생들을 위한 채식선택급식 보장을, 교육청과 교육부에 관련 정책 개선을 촉구했다.

KPI뉴스 / 권라영 기자 ry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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