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매각하면 배임, 자회사 편입부담 모두 덜어 KDB산업은행이 보유한 HMM(옛 현대상선)의 3000억 원 규모 전환사채(CB)의 만기가 다음달말로 다가오면서 산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출자전환(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배임 시비에 휘말릴 수 있고, 출자전환하자니 지분율 15% 이상이 돼 은행법에 따라 자회사로 편입해야 한다. 이쪽도 저쪽도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그렇다고 전환사채를 몽땅 팔아버리는 선택도 쉽지 않다. 이는 사실상 HMM 민영화인데,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게 정부와 산은내 기류다. 주식 전환가격은 1주당 5000원, HMM 현재 주가는 4만 원대여서 전환사채 3000억 원은 수조 원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이유로 산은이 만기 전에 전환사채를 일부 매각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배임 논란, 자회사 편입 부담, 민영화 이슈를 모두 피해갈 수 있는 묘안일 수 있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산은은 HMM 전환사채의 일부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잠재적인 투자자를 물색 중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전환사채는 상환가가 아니라 출자전환을 통해 얻어지는 주식 가치로도 팔 수 있다"며 "HMM 전환사채에 해당 가치 이상을 지불할 투자자는 얼마든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산은의 고민을 깊게 하는 부분은 해운업 초호황을 타고 HMM이 매우 뛰어난 실적을 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주가도 고공비행 중이라는 점이다.
HMM은 지난해 매출액 6조4133억 원, 영업이익 9808억 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10년 만에 흑자전환했다.
올해는 더 성황이다. 1분기에만 매출액 2조4208억 원, 영업이익 1조193억 원을 시현했다. 지난해 연간 수준보다 더 많은 영업이익을 한 분기만에 올린 것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의 올해 HMM의 실적 전망 평균치는 매출액 9조4500억 원, 영업이익 3조1000억 원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요새 해운 운임은 부르는 게 값"이라며 "세계적인 소비 확대 흐름을 타고 물동량이 폭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적이 크게 개선된 데다 미래까지 밝으니 주가는 폭등 추세다. HMM의 17일 종가는 4만2850원으로 3500원 수준에 머물렀던 지난해 5월초 대비 약 12배에 달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에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한국 지수 구성 종목에 새롭게 편입되기도 했다. MSCI 지수에 편입되면 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패시브 자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어 주가 흐름에 긍정적이다.
출자전환 안하면 배임, 하면 은행법 규제 대상…고민 깊은 산은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산은이 출자전환이 아닌, 상환을 택할 경우 자칫 배임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은이 HMM 전환사채를 출자전환 후 현재 시가로 매각에 성공하면, 2조 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두게 된다. 이를 포기할 경우 훗날 배임으로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출자전환에도 걸림돌이 있다. 현재 산은의 HMM 지분율은 11.9%이며, 전환사채를 모두 출자전환할 경우 약 26%까지 치솟아 지분율이 지나치게 커진다. 은행법에 따라 지분율 15% 이상일 때는 산은이 HMM을 자회사로 편입해야 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산은은 언젠가는 HMM을 민영화할 계획"이라며 "그러나 자회사로 편입하면, 절차가 훨씬 더 복잡해지고 민영화 의지까지 의심받을 우려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은은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HMM이 뚜렷한 회복세이므로 이쯤에서 산은이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해 민영화를 추진할 수도 있지만, 정부와 산은 모두 민영화는 아직 시기상조란 입장이다. 해운업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의문인 데다 아직 재무구조가 불안하다는 이유다.
대규모 투자로 인해 HMM의 부채비율은 2018년말 296.42%에서 지난해말 455.11%로 상승했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현재의 운임 상승 흐름이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며 "HMM은 장기적 차원의 수익 구조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호 해양수산부 해운정책과장은 "반짝 호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신용등급도 여전히 낮아 자생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민영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산은 관계자 역시 "아직 HMM 민영화 계획은 없다"며 항간에서 도는 민영화 설을 일축했다.
따라서 산은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선택하기가 난감한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런 때에 전환사채 일부 매각은 좋은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출자전환 후에도 산은 지분율이 15% 미만을 유지하는 선에서 매각하면, 은행법 규제를 피할 수 있다.
또 제 가치만큼 받으면, 배임 위험도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산은이 보유한 전환사채는 5000원에 1주씩 받는 형태로 출자전환이 가능한데, 현재 HMM 시가는 그 9배에 가깝다"며 "주가가 계속 오르는 추세라 9배 이상을 지불할 투자자도 충분히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산은이 손을 떼지 않는다는 증거로 전환사채를 여러 투자자에게 쪼개 팔 가능성이 있다"며 "기존에 거론된 포스코, 현대글로비스, 현대중공업 그룹 등 외에도 많은 투자자가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국가계약법에 따라 매각공고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민영화에 비해 전환사채 매각은 훨씬 절차가 간편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일각에서는 산은이 지분율이 너무 높아지는 걸 감수하고, 일단 출자전환한 뒤 한동안 보유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경우 15% 이상 지분을 소유할 수 있다'는 은행법 단서조항을 활용할 거란 시각이다.
산은 관계자는 HMM 전환사채 처리 방안에 대해 "여러 안을 놓고 고민 중"이라며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다음달 주가 흐름까지 지켜본 뒤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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