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아무 이름 없이 한세상 살다 가는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1-03-03 16:55:59
11년 만에 장편 '아버지에게 갔었어' 펴낸 신경숙
흙먼지 같은 일생 살아온 아버지, 단독자로 접근
표절 파문 이후 처음으로 기자들과 온라인으로 만나
"제 발등에 찍힌 쇠스랑 내려다보는 심정으로 지내"

"이 소설은 독자 한 분 한 분에게 편지를 쓰는 감정으로 썼던 작품입니다. 젊은 날에 저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 때문에, 제 발등에 찍힌 쇠스랑을 내려다보는 심정으로 지냈습니다. 그동안 제 작품을 죽 함께 따라 읽어준 독자 분들을 생각하면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 미어지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제 부주의함에 대해 깊이 사과를 드립니다."

▲새 장편을 펴내고 표절 파문 이후 처음으로 기자들과 3일 온라인으로 만난 소설가 신경숙. 그는 "30년 동안 제가 써왔던 제 글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창비 제공]

 

소설가 신경숙(58)이 지난 2015년 표절 파문 이후 처음으로 기자들과 간담회 형식으로 만났다. 3일 열린 온라인 간담회에서 신경숙은 "과거의 허물과 불찰을 무거운 짐으로 지고 앞으로 제 작품을 써나가겠다"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번 작품에 다 담겨 있다"고 운을 뗐다. 장편으로는 11년 만에 펴낸 '아버지에게 갔었어'(창비)에 지금 단계에서 하고 싶은 말들은 모두 녹여냈다는 말이다. 

 

전작 '엄마를 부탁해'(2008년)가 국내에서만 지금까지 250만부 가량 판매됐고, 해외 41개국에서 번역 출간됐으며 미국에서는 드라마 판권으로도 판매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엄마'에 이어 '아버지'를 조명한 새 장편은 화자로 등장하는 딸의 깊은 상실을 배경으로 글쓰기를 성찰하는 동시에 일률적으로 거칠게 정의된 한국사회 '아버지'를 새롭게 탐색한다.

 

소설 속에서 작가인 화자는 오랜만에 아버지 혼자 거처하는 'J시'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울고 있는 아버지를 만난다. 무엇에 쫓기는지 악몽을 꾸고 자다 일어나 도망다니는 아버지. 딸은 그 아버지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전쟁을 겪고 가난과 혁명을 통과해온 허름한 익명의 존재를 햇빛 아래 드러낸다. 열네 살 때 부모를 잃고 홀로 소를 몰고 쟁기질하며 논에서 살았다. 학교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한 채 생존이 아닌 다른 이유로는 그 집을 떠나본 적이 없는 '흙먼지 같은 일생'을 살아온 아버지다.

 

젊은 아버지는 줄줄이 나온 여섯 명의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한 생을 바쳤다. 장남의 이야기를 통해서 중동에서 노동하는 세대의 아버지도 드러내고, 조카를 등장시켜 이즈음 젊은 아버지들까지 아우른다. 아버지는 좌우의 대립 속에서 낮에는 국군이 밤에는 빨치산들이 살육의 판을 벌일 때 용케 시체구덩이에서 살아남은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이 와중에서 서로 구해주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지만 자식을 매개로 다시 만나 아버지와 형제처럼 지내온 '박무릉'은 화자에게 말한다.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삶이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숨을 받은 자의 임무이기도 하다는 것, 그 곁에 있는 것과 듣는 것과 보는 것이 있기도 하다는 것, 그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라고. 

 

"대한민국에서 힘든 현대사를 통과한 아버지들, 자기 자리를 지키고 살아온 분들은 대체로 '내가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말을 안하는 것으로 긴 시간을 통과한 분들이 많아서 저는 아버지 심중에 숨은 말들이 무엇인지 찾고 싶은 작가적 욕망이 있었습니다. '말할 거 없다'는 말에 응축시켜놓은 아버지의 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길게 들으려고 했습니다."

 

신경숙은 그렇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어 진설하면서 "이 아버지는 참 현대적인 아버지였고, 전형적으로 알려진 그 시절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다정하고 외롭고 그런 아버지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신경숙은 "이런 아버지조차 단독자로 보는 눈을 갖지 못하고 '아버지'라는 틀에 묶어 생각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의 심장에 쏘아버렸을지 모를 화살을 뽑아드리고 싶었다"고 작가의 말에도 썼다.

 

"보통 한국사회에서 아버지는 특히 농어촌에서는 더더욱 가부장적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폭력적인 모습으로 많이 나타납니다. 저는 이 소설 속에서는 아버지의 내밀한 부분에 집중했어요. 우리가 미처 아버지라고만 생각했기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그런 내면들을 다시 한 번 깊이 들여다 보는 그런 마음으로 쓴 작품입니다. 익명으로 살았는 데도 그 아버지의 시간들은 너무 도저해서 다 듣고 써내고 성찰해내기에는 부족해서 우두망찰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만큼 하나의 아버지로 묶을 수 없는 개별자, 하나하나 존재론적 시각으로 아버지를 접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깊은 좌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아버지의 집이 있는 J시로 내려가 그 공간과 아버지로부터 위무를 받는 설정이다. 아버지를 보살피려는 명분으로 내려갔지만 정작 그곳에서 치유와 화해의 모티브를 찾는 건 딸이기도 하다. 신경숙은 작품 말미에 아버지와 딸이 산보하는 장면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쓰러져 죽어 있는 나무 밑둥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걸 보면서 "죽음과 새로 돋아나는 것은 한순간에 같이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신경숙은 딸의 죽음을 겪고 나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맞는 설정과 관련해 "자신의 깊은 내상을 통해서 다른 존재에 더 가까이 가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깊은 상처의 시간들이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는 "이번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아냈고, 앞으로도 작품에 반영하겠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이번 소설 속 곳곳에는 그의 심정을 반영한 듯한 구절이 보인다.

▲신경숙은 새 장편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마음을 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큰 나무 같은 존재에 바치는 서사시"라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22살에 중편 '겨울우화'로 등단했을 때 기쁜 마음에 고향 집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등단'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아버지는 '좋은 것이냐'고 물었고 딸은 '하고 싶은 것'이라고 답했다. 이 에피소드에 신경숙은 자신의 심정을 얹는다. '아버지가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 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하마터면 아버지,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할 뻔했다. 나는 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라고.' 소설 속 작가의 자책과 다짐은 계속된다.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채 쏟아져나온 비탄과 차마 나를 다 내려놓지 못해서 발생한 남의 탓과 무엇과도 연대하지 못해 고립된 개인적인 원망들. 차마 없애지 못하고 파일을 따로 만들어 저장해 놓은 맥락이 닿지 않은 메모들. 삭제도 수정도 하지 못한 채 파일을 만들어 저장해놓으니 새로 시작할 수가 없었다. 다시 시작할 수조차 없다는 두려움에 눈꺼풀이 떨렸다. 아버지, 나는 부서지고 깨졌어요. 당신 말처럼 나는 별것이나 쓰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나는 그 별것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해요.' 

 

1933년생 아버지를 중심에 놓고, 정년퇴직한 그의 장남, 다시 그 장남의 아들인 조카로 이어지는 우리시대 아버지들 이야기는 위무와 치유와 화해와 다독임으로 이어진다. 신경숙은 "우리는 같은 참나무 밑에 떨어진 잎사귀들"이라며 "마음을 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어떤 참나무 한그루에게 바치는 서사시"로 보아달라고 '작가의 말'을 썼다. 소설 속 동네 할머니들의 말. 

 

'오래 슬퍼하지는 말어라잉. 우리도 여태 헤맸고나. 모두들 각자 그르케 헤매다가 가는 것이 이 세상잉게.'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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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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