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에서 외국 관광객에 역사 설명하며 '장녹수' 노래 불렀죠"

김지원 / 2020-12-04 17:33:05
[화제 인물] 외교관 출신 노래하는 문화관광해설사 안내규씨
그리스, 남미, 러시아 등 세계 각국 다양한 노래 번역해 소개
"은퇴 후 살 날 많아…본인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 찾아야"
평균수명이 길어지며 은퇴 후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필요성이 커졌다. 제2외국어 익히기, 노래 배우기 등 취미를 가지는 것과 새로운 경력 쌓아가기가 권장되는 시대다. 이런 오늘날, 인생 제2막을 풍성하게 채워가는 이를 만났다. 외교관 이력을 가진 '노래하는 문화해설사' 안내규(59) 씨다.

▲ 외교관 출신 서울문화관광해설사 안내규 씨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안 씨는 4년 차 문화관광해설사다. 서울문화관광해설사회에 속해 있다. 문화관광해설사는 궁궐, 북촌, 남산성곽, 성균관, 성북동, 남산골 한옥마을 등을 외국인 관광객과 함께 돌아다니며 관광지를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서울에는 230여 명, 전국에는 3000여 명이 넘는 문화관광해설사가 있다. 서울에 있는 코스만 28여 개에 달할 정도로 다양하다.

서울에는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말레이시아어, 인도어, 태국어, 베트남어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한다. 2시간여 코스를 관광객과 함께하는 자원봉사에 가까운 일이다. 그는 '중국어' 안내를 맡고 있다. 외교관으로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던 경험 덕분이다.

안 씨는 89년 외교부에 들어가 8년 반을 근무했다. 중국과 수교하며 상하이 공관을 창설하는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이후 말레이시아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그는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을 보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회고했다. 중국어 실력은 상하이 근무 때 다졌다.

"제 스타일이 자유스러운 사람이다 보니 (외교관 생활을) 오래 하기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지요. 외교관 생활을 하며 영어 가사 노래뿐 아니라 이탈리아, 그리스, 남미, 프랑스 등 각국의 노래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안 씨는 외교관 생활을 하며 익힌 넓은 세상과 외국어에 대한 감각을 '음악'을 통해 더욱 발전시켰다. 12살부터 기타에 꽂혔다는 그다. 그렇게 배운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그는 직접 부른다. 한국어로 직접 번역하기도 한다. 그는 40년 지기들과 함께하는 '월드뮤직연구소'를 차렸다며 웃었다. 최근엔 폴 매카트니가 주도한 앨범에 실려 유명했던 'those were the days'라는 러시아 집시 노래로 '올워크 실버스타' 콘테스트의 해외 노래 부문에 참가해 본선에 진출한 상태다. 본선에서 앞부분은 러시아어 그대로, 뒤 소절은 한국어로 부를 예정이다.
▲안내규씨가 비대면 음악 콘테스트에서 'those were the days'를 열창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1920년대 집시들의 노래입니다. 삼두마차를 타고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며 이별의 아픔에 대해 말하는 곡이죠. 1968년 영국에서 유행하기도 했죠. 저는 이 곡을 10년 만에 한국어로 4절까지 완성했습니다."

안 씨는 이런 노래 실력을 다양한 곳에서 발휘한다. 통일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행사 때 고려인들이 부르는 '고려 아리랑'을 소개하며 부르는 식이다. 전 세계 음악을 뒤져서 행사 주제에 맞는 거로, 취지에 알맞은 노래를 한다.

그의 노래 실력은 문화 관광지에서 해설을 할 때도 발휘된다. 궁에서 역사적 설명을 곁들이며 '장녹수'라는 노래를 부르는 식이다.

"(설명을) 재밌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감동을 주고, 노래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저부터가 재미가 없습니다. 무미건조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사람 마음에 스며들 수 있게 예술을 곁들입니다. 언어도 정확하게 하죠.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문화관광해설 일은 '잠시 멈춤' 상태다. 이 시간 동안 그는 중국 고사성어, 역사책 등을 공부한다. 설명을 더 잘하기 위해서다. 음악에도 매진한다. 인사동에서 기타를 가르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한다. 먼저 문화관광해설사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중국어를 더 깊이 공부할 계획이다. 음악에 대한 계획도 진행형이다.

"얼마 전에 스페인 집시의 플라멩고와 국악을 매치한 걸 봤습니다. 국악을 좀 더 공부해 이전의 월드뮤직과 섞어 한국어 가사를 뽑아내는 등 다방면으로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좋은 기타 교재도 내고 싶고요."

은퇴 후 계획을 설계하는 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을 물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본인이 잘하는걸 찾아봐야 합니다. 앞으로 살날이 하루 이틀 남은 게 아니잖아요. 40년을 더 산다면 본인이 좋아하는 걸 가능한 한 해야 합니다. 돈을 벌고 바쁘게 살다 보면 우울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본인이 늘 하고, 봐와도 지루하지 않은 게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음악이 지루하지 않아요. 밥 먹다가도 좀 있으면 또 궁금해져요. 사람마다 다 이런 게 있으니 찾아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래를 잘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그는 "호흡 근육이 중요하다. 보통 사람들이 호흡 근육을 쓰지 않는다. 말할 때 목소리와 노래할 때 목소리가 다르다. 말할 때는 되는데, 노래할 때는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호흡 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 노래할 때 입을 위아래보다 가능한 옆으로 크게 벌려야 한다. '미미미미, 메메메메' 등 발성 연습도 하면 호흡근이 익숙해진다"고 쉽고 자세한 설명을 들려줬다.

▲ 안내규 씨가 '호흡근육'에 대해 설명하며 미소 짓고 있다. [문재원 기자]

쉬운 설명에 감탄하자 안 씨는 자신의 '제자 1호'를 소개했다. 가수 '자이로'다. '히든싱어'와 JTBC 오디션프로인 '슈퍼밴드'등에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그는 "가수 '자이로'가 내 육신의 아들이자, 내 음악의 아들이에요. 앞으로도 세계 여러 음악을 가르칠 겁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외교관은 화려해 보이지만 외로운 직업입니다. 그래도 국가와 국가 간 교류 때 노래, 공연, 바둑처럼 문화적인 콘텐츠가 있으면 분위기도 많이 부드러워질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보람을 느끼고, 계속 연구하는 그에게서 멋진 '인생 이모작'의 모습이 선명했다.

KPI뉴스 / 김지원 기자 kjw@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지원

김지원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