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 사용 인증제 추진해야 한다"

김들풀 / 2020-11-29 15:28:03
[우리말 바르게] ⑫ 공문서 우리말 사용 인증제 시행 서둘러야
각국 공공언어 정책, 정부 신뢰와 국민 시간과 비용 절감
한글은 우수하다. 일찍이 벽안 이방인이 알아봤다.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뉴욕 트리뷴을 통해 한글 우수성을 알린 게 1889년이다. 헐버트는 "한글은 완벽한 문자"라고 극찬했다. "최소 문자로 최대 표현력을 갖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한글의 주인'은 그 가치를 망각하고 사는 듯하다. 바른 한글 사용을 선도해야 할 정부부터 그러하다. 정부부처 공공문서엔 오염된 언어 투성이다. '공문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국어기본법을 정부가 앞장서 위반하는 꼴이다. 이런 행태가 국민과 소통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UPI뉴스는 43개 정부 부처의 공공언어 실태를 취재, 분석해 기획보도 [우리말 바르게]를 연재했다.
▲ '쉬운 영어쓰기운동본부(PEC, Plain English Campain)'를 설립한 크리시 메이어(Chrissie Maher). [출처: PEC]

1970년대 영국 맨체스터 지역 기초생활수급 대상이었던 한 노부부는 지역정부의 난방비 신청에 관한 글을 이해하지 못해 알맞은 양식을 정부에 신청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온기가 없는 차가운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곧 영국 전역에서 분노를 일으켰다. 이후 쉽고 분명한 말글살이가 절실함을 느낀 '크리시 메이어(Chrissie Maher)'라는 여성이 '쉬운 영어쓰기운동본부(PEC, Plain English Campain)'를 만들고 어려운 말을 쓰지 말자는 운동에 나섰다. 스스로 쉬운 영어로 마을신문을 만들었는데 이 신문이 인기를 얻자 이같은 신문이 50여개나 늘어나 이 운동이 영국 전지역으로 퍼졌다.

이를테면 '강수 가능성(probabilities of precipitation)'이라는 문구를 '비가 올 것 같음(rain is likely)'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자는 운동이다. 이 민간단체는 쉬운 영어쓰기를 잘하는 웹사이트에 '크리스털 마크'라는 것을 달아준다.

이렇게 현재 영국에선 시민단체 주도로 공공기관 언어사용이 감시되고 있다. 1980년대 대처 총리 정부는 쉬운 영어 운동과 함께 대국민 소통 방법 개선 차원에서 법률용어 및 행정용어 등 공공문서를 적극 정비했다.

▲ 크리스털 마크(Crystal Mark). 대중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장 기준을 통과한 문서(왼쪽)와 누리집(오른쪽)에 넣을 수 있는 인증 마크로 전 세계 국가 2만3000개 이상 문서에 찍혀 있다. [출처: PEC]

미국, 스웨덴, 프랑스  등 주요국 공공언어 정책 

미국도 1970년대 카터 행정부가 "쉬운 언어는 시민 권리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연방 관보(Federal Register)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영어로 작성토록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 문서를 최대한 쉽게 표현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은 '알기 쉬운 문서 작성에 관한 법(Plain Writing Act)'에 서명을 했으며, 이어서 2011년에는 연방정부 차원 지침서가 마련됐다.

미국 정부는 표준으로 사용되는 영어로 공문서를 작성하는 것은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동시에 국민들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조치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스웨덴 경우 1960년대부터 쉬운 언어 운동이 시작됐다. 1970년대 법률용어 개선을 비롯해 2005년 언어정책 의회 채택, 2009년 제정된 공공기관 언어법 등이다. 이와 같은 정부 활동 중심에는 2006년에 설립된 스웨덴 언어위원회가 있다. 뉴질랜드 정부는 2010년 미국 쉬운 영어 쓰기 관련한 법을 참고로 공식 문서 및 웹 사이트에 쉬운 영어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다. 1539년 프랑소와 1세가 공문서와 법률 문서에 라틴어 대신 프랑스어 사용을 강제하는 '빌레르-코트레 칙령(L'ordonnance de Villers-Cotterêts)'을 선포로 자국어 보호에 나섰다. 현대에 와서는 1975년 프랑스어 사용에 관한 첫 번째 법이 공표됐다. 광고, 게시물, 언론에서 영어 단어 사용을 금지했다.

이 법은 1994년 모든 영역의 프랑스어 사용권, 정보권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프랑스어 사용에 관한 법으로 발전, 법률 문서, 계약서, 회사 문서, 소비자 정보 문서 등에 대한 프랑스어 사용하는 때와 방법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1996년 총리 직속 기관 프랑스어 최초 기구인 프랑스어 고등 위원회(현재 프랑스어와 프랑스의 언어들 총국)가 설립됐다. 특히 이 기관 공공언어 정책은 전문 용어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전문 용어가 전문가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지식 대중화에 있다는 철학에 기반한다.

즉 정보 접근성에 대한 불평등은 언어 접근성에 대한 불평등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국립국어원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바가 크다.

유럽 연합은 1995년 의약품 안내서, 소비자 계약서 등에 쉬운 언어 쓰기를 장려하고, 쉬운 언어 쓰기 운동(Fight the Fog)을 시작했다. 유엔도 2007년 쉬운 영어 쓰기 훈련 과정을 도입했다.

독일에서는 문화부 지원을 받는 '독일어협회'가 의회와 행정부 법령 제정 과정에서 쉬운 언어 사용에 대한 자문을 하고 있다. 캐나다, 멕시코, 남아공 정부에서도 쉬운 언어로 법안 쓰기를 법률로 명시했다.

일본 정부도 공공언어 개선 차원에서 '정보 약자를 위한 쉬운 일본어'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말 중 전문분야와 관련된 외래어에 어려운 용어가 많다고 보고 일본 국립국어연구소에 외래어위원회가 설치되어 운영됐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외래어가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계기로 연구팀이 만들어졌다.

쉬운 영어쓰기 운동(PEC) 본부 크리스털 마크(Crystal Mark)

현재 민간단체인 쉬운 영어 운동(PEC)은 영국의회, 정부 기관과 함께 일했고, 브리티시 가스(British Gas), 브리티시 텔레콤(British Telecom), 브리티시 생활(British Life) 등 통신, 재정 서비스를 다루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대중과 원활한 소통에 힘쓰고 있다. 또한 전 세계 각국을 비롯해 국제기구에서도 쉬운 영어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은행, 유엔 산하 단체, 유럽위원회, OECD 사무국, 국제 표준화 기구 사무국 등이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쉬운 영어쓰기 운동(PEC) 본부가 1990년에 제정한 크리스털 마크(Crystal Mark)다. 수정처럼 깨끗하고 분명하게 뜻이 전달되는 글에 대한 인증 마크다. 대중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장 기준을 통과하면 이 마크를 문서에 인쇄할 수 있다. 현재 영국 및 미국, 호주, 덴마크,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등 전 세계 국가 23,000개 이상 문서에 크리스털 마크가 그려져 있다.

또 쉬운 영어 운동 본부는 유명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경우 '말을 발로하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Foot in Mouth Award)'를 수여하기도 한다. 1982년부터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한 기관을 뽑아 불명예스러운 황금문서상(Golden Bull Award, 허풍 떠는 표현)을 수여하고 있다.

민간 주도 공문서 우리말 사용 인증제 시행해야

현재 한국의 유명무실한 국어기본법 실태는 지난 기사를 통해 충분히 살펴봤다. 앞으로 많은 법률 보완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로 우리도 크리스털 마크와 같은 인증 제도를 추진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주도하면 안 된다. 순수한 민간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 정보취약계층이 누리집(웹 사이트)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웹 접근성 표준지침을 준수한 우수 사이트에 대해 품질마크를 부여하는 웹접근성 인증마크다.

현재 우리 정부 공공기관 대부분 취득한 웹접근성 인증마크는 2013년 4월 11일부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공공기관을 비롯한 주요 민관기관 웹 접근성 준수가 의무화됐다. 그전까지 정보취약계층 당사자들이 오랫동안 개선 목소리를 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2000년 국내 최초 웹접근성 평가 기관인 '웹발전연구소'를 설립해 수천여 개 웹사이트(웹 접근성) 평가를 수행한 숙명여대 문형남 교수는 "강제성 없는 정책은 빈 수레나 마찬가지다. 관련 법률이 제정되기 전까지 공공 누리집을 평가해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라며, "우리말 역시도 인증제를 의무화해야 한다. 다만, 웹 접근성처럼 정부 주도가 아닌 언어사용 주체인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바른 우리말글 사용 인증보람(마크)' 추진위원장인 한글학회 부설 한말글문화협회 이대로 대표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거리에서 올바른 우리말글 사용에 목이 터져라 외쳤고, 정부에 수없이 건의하고, 호소했지만,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라며, "이제부터 한글단체가 나서서 공공기관 누리집과 문서를 감시하고 평가해 무엇이 잘못됐는지 세상에 알리고 스스로 바로잡도록 하겠다. 정부도 이를 의무화해 도와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의무화는 법이 지닌 특성 중 강제성이다. 다른 사회 규범과 달리 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 국가에 의해 제재할 수 있다. 이는 특정 집단이나 개인 이익이 아니라 국민 다수 행복과 이익을 추구하는 공공복리 목적이다. 쉬운 말 쓰기는 세계 흐름이다. 의무화로 우리 말글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KPI뉴스 / 김들풀 IT과학 전문기자 itnews@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들풀

김들풀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