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랜선여행] 중국 항일투쟁 후손들은 '김정은 후계' 미리 알았다

김당 / 2020-11-10 17:37:10
[북한 랜선여행] 3. 김씨 3代 국제친선전람관의 이색 선물
代이은 중국 빨치산 후손들, '후계자 수업 김정은'에 선물
빨치산 후손의 선물…항일투쟁 정통성 계승 징표로 활용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에 전시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선물 중에서 김정은 위원장 선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공여자들이 있다. 김일성 주석이 중국 북만주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함께 했던 이른바 '항일혁명투쟁 연고자'의 가족과 자녀들이 그들이다.

 

▲ 중국 항일혁명투쟁 당시 '88여단' 여단장 주보중의 손녀 주해교의 금도금공예 '대전굉도', 주보중의 딸 주위의 수정공예 '길상송재', 대대장 시세영의 증손자 채룡의 자기 꽃병, 대대장 왕명귀 가족의 금도금공예 '용'(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


항일독립운동사에 따르면, 만주사변(1931년)과 중일전쟁(1937년)을 거치는 가운데 중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대(군)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었다면, 조선과 국경을 맞댄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이른바 '동북항일연군'으로 대표되는 조-중 연합 항일무장부대가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이들은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소련 땅으로 이동해 조선·중국·소련 연합부대인 동북항일연군 교도려(東北抗日聯軍敎導旅, 국제홍군특별독립88여단, 일명 '88여단')를 조직해 형식적으로 소련 극동군 산하에 편제된다. 관련 기록에 따르면 1942년 8월 당시 동북항일연군 551명과 요하에서 귀순한 만주국군 71명, 소련군과 소련의 중국인, 조선인 등을 합쳐 모두 1500여명으로 구성되었다.

▲ 소련 극동군사령부 산하 제88독립저격여단 조직도를 보면 조·중·소 연합군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단장 주보중(周保中, 저우바오중)이 이끈 '88여단'에서 김일성 당시 제1대대장과 생사를 함께 한 동지들이 바로 '항일혁명투쟁 연고자'들이다. 이들은 일제 패망 후에 각각 중국과 조선(북한)으로 돌아가 국가 건설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았고, 그 후손들 간에도 '항일 빨치산 출신'이라는 끈끈한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위의 '88여단' 조직도와 아래의 지휘부 사진 참조).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김정은 선물 53점 중에서 '항일혁명투쟁 연고자'의 가족과 자녀들이 제공한 선물은 △금도금공예 '대전굉도'(주보중의 손녀 주해교) △수정공예 '길상송재'(주보중의 딸 주위(周偉)의 가족) △자기 꽃병(시세영의 증손자 채룡) △금도금 공예 '용'(왕명귀의 가족) 등 4점이다.

 

▲중국 항일혁명투쟁 연고자 주보중(周保中)의 손녀 주해교가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앙위원회 위원'이라는 첫 공식 직함을 갖기 6개월 전인 2010년 3월에 선물한 금도금 공예품 '대전굉도(大展宏图)'.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


이 가운데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국 항일혁명투쟁 연고자 주보중(周保中)의 손녀 주해교가 김정은에게 선물한 '대전굉도(大展宏图)'라는 명칭의 금도금 공예품이다.

 

노동신문은 지난 7월 24일자 '만민의 다함 없는 지성이 깃든 선물들'이라는 연재물에서 이 공예품을 "300년의 역사를 가진 중국 복건성 남부의 전통적 공예품인 금도금공예 '대전굉도'는 중국의 3대 전통공예기법 등을 결합시켜 제작한 것으로 공예보물로 불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날개를 치며 날아오르는 매의 웅장한 자태가 부각된 '大展宏图(대전굉도)'는 '휘황한 설계도를 펼쳤다'는 뜻이며, 주보중 동지의 손녀는 이 선물을 전달하면서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을 사회주의강국으로 일떠세우시기를 충심으로 축원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휘황한 설계도를 펼쳤다'는 축원을 담은 이 선물을 증정한 시기가 2010년 3월 11일이라는 사실이다. 이때는 북한 내부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한 뒤이긴 하지만 후계 구도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시기는 아니었다.

 

김정은은 내부적으로 '후계자 수업'을 받는 가운데 2010년 9월에 인민군 대장·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라는 첫 공식 직함으로 공식적으로 '후계자'임을 알렸다. 

 

이후 이듬해인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자 김정은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등극한 뒤에 2012년 4월에 비로소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노동당 제1비서·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공식 집권했다.

 

▲ 동북항일연군 시절 김일성의 동지이자 민생단 사건 당시 '생명의 은인'으로 유명한 주보중(周保中)과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을 맞이해 평양을 찾은 주보중 가족 [노동신문 캡처]


즉, 항일혁명투쟁 동지 주보중의 손녀는 김일성의 손자(김정은)가 '노동당 중앙앙위원회 위원'이라는 첫 공식 직함을 갖기 6개월 전에 이미 '휘황한 설계도를 펼쳤다'는 축원을 담은 선물을 증정한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발자욱'이란 김정은 찬양가와 "청년대장", "샛별대장" 같은 소문으로만 '후계자 김정은'을 인지한 때였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2세 후계 구축에는 김정일 자신의 노력과 항일 빨치산 원로그룹 및 당 고위간부들의 추천이 있었다. 반면에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세 후계 구축에는 친인척과 측근들이 이른바 '백두혈통'(또는 만경대 혈통)을 추천하고 김정일이 위에서 후계를 정비하면서 이뤄졌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투쟁 동지이자 '생명의 은인'인 주보중의 손녀가 김일성의 손자에게 '대전굉도'를 선물한 것은 생전에 한번도 김일성을 만나지 못했던 김정은에게 정통성을 부여해 주려는 김정일의 후계 정비사업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선물 목록을 보면, 항일혁명투쟁 연고자 후손들은 그 이후에도 △자기 꽃병(2010. 12. 26. 시세영의 증손자 채룡) △금도금 공예 '용'(2012. 4. 15. 왕명귀의 가족) △수정공예 '길상송재'(2012. 12. 17. 주보중의 딸 주위의 가족) 등을 순차적으로 선물했다.

 

▲ 김일성의 소학교·중학교 동창이자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장울화(張蔚華)와 국제친선전람관을 방문해 감상 소감을 쓰는 손자 장기의 모습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


홈페이지 선물 목록에는 없지만, 항일혁명투쟁 연고자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일성의 소학교·중학교 동창이자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장울화(張蔚華, 장웨이화, 1913년 2월 13일~1937년 11월 4일 또는 10월 27일)이다.

 

장울화는 1932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 지하사업단 대원으로 활동했으며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에 비밀 지원을 하다가 발각돼 체포되었으나 진술을 거부하고 자살했다.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후, 북한 정부는 김일성 주석을 대신해 죽은 그를 혁명열사로 추대했다. 이런 각별한 인연으로 장울화의 후손들은 해마다 북한을 방문해 평양과 친선전람관을 찾곤 한다.

 

그의 딸 장금록은 지난해 7월 친선전람관을 찾아 "만민의 뜨거운 지성이 깃든 수많은 진귀한 선물들을 고스란히 인민의 재부로 돌려주신 김일성 주석님과 김정일 장군님, 김정은 원수님의 위인적 풍모에 감동을 금할 수 없다"면서 "국제친선전람관은 세계에 유일무이한 위인칭송의 대보물고이다"라고 감상문을 남겼다.

 

그의 손자 '장기'도 2015년 4월에 친선전람관에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현명한 영도 밑에 진행되고 있는 조선의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위업을 위해 적은 힘이나마 적극 기여해 나가겠다"고 감상문을 남겼다.


88여단의 조직도와 지휘부가 야전 훈련 후 촬영(1943년 10월 5일)한 사진을 보면, 이들과 김일성 및 후손들의 끈끈한 관계가 잘 나타나 있다.

 

우선 88여단 조직도를 보면 편제상으로는 '소련 극동군사령부' 산하이지만 소련과 중국, 그리고 조선 출신 인사들이 균등하게 편제된 조·중·소 연합군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1943년 10월 5일 야전 훈련 후 촬영한 제88독립저격여단(88여단) 지휘부. 노란색 원의 3인이  주보중의 부인 왕일지(王一知), 여단장 주보중(周保中), 제1대대장 김일성(金日成)이다. [중국 지린성 도서관 자료]


실제로 88여단 지휘부 촬영 사진을 보면 △앞줄 좌로부터 바탈린(N.S. Batalin, 巴达林, 소련), 정치 부여단장 이조린(李兆麟, 중국), 왕일지(王一知, 주보중의 부인), 여단장 주보중(周保中, 중국), 김일성(金日成, 제1대대장, 조선), 부여단장 시린스키(T. N. Shirinsky, 什林斯基, 소련) △제2열 좌로부터 장광적(张光迪, 중국), 풍중운(冯仲云, 중국), 왕효명(王效明, 중국), 왕명귀(王明贵, 중국), 팽시로(彭施鲁, 중국) △제3열 좌로부터 양청해(杨清海, 중국), 서철(徐哲, 조선), 강신태(姜信泰=강건, 조선), 김광협(金光侠, 조선), 수장청(隋长青, 중국) △제4열 좌로부터 안길(安吉, 조선), 박덕산(朴德山=김일, 조선), 최용진(崔勇進, 조선), 도우봉(陶雨峰, 중국), 김경석(金京石, 조선) 등으로 3국 출신들이 고루 섞여 있다.

 

관련 기록에 따르면, 제1대대장(영장)인 김일성을 제외한 왕효명(王效明, 왕샤오밍), 시세영(柴世榮, 차이스룽), 왕명귀(王明贵, 왕밍꾸이) 등 나머지 영장 중에서 시세영은 1944년 소련에서 사망했고, 왕효명과 왕명귀는 1955년 중국군에서 소장 계급장을 달았다.

 

김일성과 생사를 함께 한 이들의 후손들이 모두 김정은에게 선물을 증정했는데, 특히 주보중(周保中, 중국명 저우바오중)은 동북항일연군 시절 김일성의 동지(상관)이자 민생단 사건 당시 '생명의 은인'으로 유명하다.

 

민생단 사건이란 1932년 10월경부터 1936년 3월경까지 중국공산당이 지도하는 동만주 지역의 항일유격대와 공산당·대중조직, 유격 근거지(소비에트·인민권력) 내에 침투한 일제의 앞잡이인 민생단원들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인들을 처형한 사건을 말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민생단 사건의 비교사적 연구〉 등에 따르면, '반민생단 투쟁'의 광풍으로 최소 500명에서 많게는 2000여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이 처형 당했는데, 당시 근거지 주민의 수가 2만여 명에 지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민생단 사건으로 김명균, 김성도, 주진 등 유격대의 조선인 최고위급 군사 지휘관과 정치위원급 인물들이 대부분 희생되었다. 동만 지역 4개 유격대(왕청·훈춘·연길·화룡) 중 하나였던 왕청유격대 정치위원으로 있던 김일성도 한때 민생단으로 몰려 정치위원에서 해임되고 감금되어 처형될 뻔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유격대 활동을 하는 가운데 돈독한 관계를 맺은 당·군 책임자 주보중과 중국인 간부들의 도움을 받아 다행히 민생단 광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 김일성이 민생단 사건 혐의자들의 기록을 불태우는 북한의 기록화 [노동신문 캡처]


김일성은 이후 민생단으로 몰려 감옥에 갇혀 있던 100여명의 혐의자들 문서를 불사르고 전투가 가능한 사람들을 모두 유격대원으로 받아들여 부대를 편성하게 된다. 이때 편입된 이들은 나중에 국내 진공작전인 보천보 전투에서 맹활약하는 등 '김일성부대 신화' 창조의 주역이 된다.

 

김일성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평생 잘한 두 가지 결단으로 국민부 계통의 '화성의숙'을 그만두고 길림의 명문 '육문중학'에 입학한 것과 마안산에서 민생단 문서보따리를 불태운 것이라고 회고했다.

 

민생단 사건으로 처형 직전까지 몰렸던 김일성은 그후 북한으로 돌아와 북한 정권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고, 민생단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거나 이때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김일성과 함께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북한으로 돌아와 지도적 역할을 맡게 된다.

 

▲ 동북항일연군 시절의 동지였던  주보중(周保中)과 김일성 가족의 기념촬영. 왼쪽부터 주보중, 왕일지(王一知, 주보중 부인), 김정숙, 김일성. 앞줄 왼쪽부터 주보중의 딸 주위(周偉)와 김정일.


해방 이후 김일성이 주보중 가족과 찍은 사진에는 주보중, 왕일지(王一知, 주보중 부인), 김정숙(김일성 부인), 김일성, 그리고 주보중의 딸 주위(周偉)와 김정일이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두 집안은 세교(世交)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기에 김정은이 후계 수업중인 2010년에 이어, 집권 이후인 2012년에도 '길상송재'라는 수정공예품을 선물한 것이다.

 

출신 계급과 성분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항일혁명투쟁 연고자의 가족은 최고의 '출신성분'이다. 김일성과 함께 '항일 빨치산 3총사'로 부른 김책·최용건과 최현, 오중흡 등이 그들이다.

 
김책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249회나 등장한다. 김책은 광복 후 1945년 9월 김일성과 함께 원산항을 통해 귀국해 최용건과 함께 김일성을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옹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6·25전쟁 때 군사위원회 위원과 전선사령관으로 임명되어 활약하다가 1951년 1월에 사망했다.


김책이 사망하자 김일성은 그의 고향인 함경북도 학성군과 성진시를 각각 김책군과 김책시로 개명하고, 기존 대학과 공장을 김책공과대학(현 김책공업종합대학)·김책제철소 등으로 개칭해 그를 기리고 영웅칭호 및 국가훈장 제1급을 추서했다. 노동당 검열위원장을 지낸 김국태와 1.21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사건 당시 민족보위성 정찰국장을 지낸 김정태가 김책의 아들들이다.

▲ 해방 후 북한 군부를 장악한 항일 빨치산 출신들이 평양에서 최초로 생산된 따발총을 들고 기념 촬영했다. 왼쪽부터 최용건, 김책, 김일(박덕산), 김일성, 강건


동북항일연군 제1단장으로 김일성과 함께 1937년 보천보 전투에 참가한 '백전노장 최현'은 '세기와 더불어'에 무려 321회 등장한다. 최현은 6·25전쟁에 사단장으로 참전하고 장기간 인민무력부장을 맡으면서 김정일 후계구도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현재 북한 서열 2위인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겸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최현의 아들이다.

김일성의 측근으로 '세기와 더불어'에 216회 등장하는 오중흡의 집안은 '세기와 더불어'에 "일가가 항일전에 몸을 바친 혁명가의 가문"으로 기술돼 있다. 오중화, 오중흡, 오중기, 오중철, 오중식의 '유격대 5형제'가 그들이다. 오중흡은 인민군 원수를 지낸 오진우와 4촌 관계다.

'오중흡7연대'는 1930년대 항일 빨치산 투쟁 당시 김일성의 지휘부를 사수했던 부대로, 당시 7연대장 오중흡은 북한에서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발휘한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오진우가 죽은 뒤로는 오중흡의 5촌 조카로 오중성의 아들인 오극렬이 북한군의 실세 노릇을 했다.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1996년 '오중흡7연대 칭호 쟁취운동'이 시작됐고, 1997년 1월 청진사범대학 명칭을 현재의 오중흡청진제1사범대학으로 변경했다.
 

김일성은 1947년에 일찌감치 만경대혁명학원을 세워 항일 빨치산 유자녀를 돌봤다. 김정일도 아버지의 동지이자 각 여러 분야의 요직에 진출한 빨치산 1세대를 극진히 대접하고 그 자녀들까지 특혜를 제공해 이들이 자신의 권력세습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후견인이 되게 함으로써 대를 이어 '유격대 국가'를 구축했다.

 

국제친선전람관에 전시된 '중국 항일혁명투쟁 연고자' 가족과 후손들이 김정은에게 증정한 선물들은 항일혁명투쟁 정통성의 계승을 상징하는 징표로 선전되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만인칭송의 전람관 감상문과 사라진 남측 선물' 편이 이어집니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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