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서에 일본어투 표현 수두룩

김들풀 / 2020-11-05 23:35:36
[우리말 바르게] ⑨ 일본어투 남용하는 공공언어
일본어투 표현…우리말글 발달 막아
한글은 우수하다. 일찍이 벽안 이방인이 알아봤다.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뉴욕 트리뷴을 통해 한글 우수성을 알린 게 1889년이다. 헐버트는 "한글은 완벽한 문자"라고 극찬했다. "최소 문자로 최대 표현력을 갖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한글의 주인'은 그 가치를 망각하고 사는 듯하다. 바른 한글 사용을 선도해야 할 정부부터 그러하다. 정부부처 공공문서엔 오염된 언어 투성이다. '공문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국어기본법을 정부가 앞장서 위반하는 꼴이다. 이런 행태가 국민과 소통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UPI뉴스는 43개 정부 부처의 공공언어 실태를 취재, 분석해 기획보도 [우리말 바르게]를 연재한다.
▲ 경기도의회 친일잔재청산특별위원회는 일제강점기 잔재 용어 청산을 위해 경기도 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일본어 투 용어'를 순화용어로 사용할 것을 요청했다.[출처: 경기도의회]

"간부와의 소통" "업무능률 개선에서의 혁신적인 전기(轉機)마련" "경쟁제한적 규제가 근절됩니다." "국민적 요구가 큰 분야의 협약체결" "복원사업의 지연 및 사회적 갈등이"

이는 정부가 국민에게 알리는 공문서에 등장한 일본어투 표현들이다. 해방된 지 75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말글 속에 일제 잔재인 일본어투 표현이 많이 남아있다.

''~의, ~에서의, ~으로서의, ~적' 등 일본어투는 당시 일본 유학을 경험한 많은 지식인들로 인해 강제로 들어왔다. 그들은 일본어로 고등 교육을 받았고, 그 가운데는 일본어 기초 위에 우리말을 사용한 경우도 많았다.

이를테면 현대문학을 시작한 많은 작가들이 처음에는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 14세에 일본 유학길에 오른 이광수를 비롯해 정비석, 이무영 등 유학파도 모두 일본어로 첫 작품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10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고등 교육을 받은 염상섭과 전영택, 현진건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로 인해 해방 이후 일본 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일본어투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2020년 공공문서 사용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43개 정부 부처 대부분 일본어투를 많이 사용했다. 일본어투를 많이 쓴 기관은 '외교부, 국가인권위원회, 국세청' 순이며. 적게 쓴 기관은 '환경부, 국가보훈처, 산업통상자원부' 순이다.

이번 조사에서 일본어도 대상 범위에 넣었으나 경찰청 자료에서 조끼(일본어, chokki) 1건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일본어투 '~의, ~에서의, ~으로서의, ~적'을 적용해 조사 평가했다.

해당 보고서는 UPI뉴스와 한국어인공지능학회가 함께 정부 부처·청·위원회 43곳 주요 문서를 수집해 조사, 분석한 공공언어 실태 조사 보고서다. 수집한 문서를 한국어인공지능학회가 개발한 한국어 사용성 평가 자동화 도구 '한글누리미'로 로마자와 한자, 외국어, 일본어투 등 국어기본법 위반과 어려운 낱말 사용 등을 자동 평가했다. 또 평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국어 전문가들 검수 과정을 거쳤다.

우리말글살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일본어투는 '~의'와 '~적' 남용이다. ~의'는 일본어에서 많이 쓰이는 소유격 'の'(노)가 흔히 우리말 '의'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가감 없이 그대로 번역돼 우리 문장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

'~적'도 우리가 많이 쓰는 일본어투 표현이다. 가령, "사적, 공적, 사실적, 낭만적" 등이다. 주로 한자어 뒤에 붙는 접사다. 근대 일본어에서 영어 접미사 '-tic' 번역을 통해서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그 대표적인 단어가 'Romantic → 낭만적(浪漫的)'이다.

이 '~적'은 붙이려고 하면 온갖 군데에 남발할 수 있기 때문에 오죽하면 "적(的)은 우리말글살이 '적(敵)이다"라고 말을 할 정도다. '사실적 표현'을 '사실 표현'으로 써도 될 말에 우리는 '-적'을 붙이고 있다.

이밖에도 일본어투 표현은 수두룩하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하고 있다' 또는 '~하는 중이다'를 '한다', '했다'로 써도 의미 전달이나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 '~시키다'는 '하다'로 간결하게 의미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바꾸어주면 된다.

일본어투 표현은 억지스러운 면이 많다. 하지만 우리말글은 전하고자 하는 의미 전달이 잘 되고 문장도 더 세련되게 구사된다.

독일에서 우리말글살이 운동에 힘쓰고 있는 서범석 씨는 "토씨(助詞) '-의'는 일본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의'를 버리지 못 한 것은 일제 잔재가 그대로 남았기 때문이다"라며, "'한글날'을 '한글의 날'로 '설날'을 '설의 날', '어린이날'을 '어린이의 날'로 쓰자는 것이냐. '-의'를 빼야 줏대 있는 우리말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어투 표현은 오래 전부터 우리말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어서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뜻만 통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일본어투 표현으로 인해 다양한 우리말글이 발달하는 기회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KPI뉴스 / 김들풀 IT과학 전문기자 itnews@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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