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 펀드 '셀프 위험평가'…검증은 어디에도 없었다

박일경 / 2020-10-23 17:30:51
투자 위험 낮은 '5등급'…검증 기관·절차 없이 옵티머스가 자체 판정
판매사·수탁사·감독당국 모두 法상 검증 권한 없다며 검찰 조사 진술
2015년 규제완화 사모펀드 개선안 허점 노린 계약·명세서 위조 사기
"관급공사는 정부 예산을 받기 때문에 시공사인 건설사나 발주처인 공공기관이 매출 채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다. 실제 '공공기관 매출 채권'이란 게 존재하는지 한 번만 의심했어도 이런 사기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 옵티머스자산운용 [정병혁 기자]

5000억 원대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와 관련, 한 금융권 인사는 이같이 지적했다.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는 상당히 안정적인 금융투자 상품으로 포장됐다. 투자 위험 등급은 전체 6단계 가운데 두 번째로 위험성이 낮은 '5등급'에 해당하는 '저(低) 위험' 상품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등급은 옵티머스 스스로 매긴 '셀프 위험평가'로 이를 검증하는 외부 기관이나 절차는 전혀 없었다.

23일 법조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제54호까지 팔린 '옵티머스크리에이터' 시리즈 펀드를 판매한 NH투자증권 실무 담당자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상 판매사는 펀드 운용 및 자산에 대한 감시 권한과 방법이 없다"고 진술했다.

NH투자증권은 매월 운용사를 방문해 사무수탁사 사이트에서 직접 다운받은 펀드자산명세서를 확보하고, 펀드 수익 구조의 근거가 되는 계약서를 요청·확보하는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노력을 했다는 입장이다.

NH투자증권이 매달 운용사를 찾아 사무수탁사 사이트에서 직접 다운받았다는 '펀드자산명세서'는 믿을 수 있나.

사무수탁사인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수사팀에 '펀드 공시는 운용사에서 제출한 수익률 등 펀드 운용 상황을 전산망을 통해 공개할 뿐이며, 운용사 제공 정보들이 진실한지 여부를 조사 및 검증할 권한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쉽게 말해 운용사가 자료 주는 대로 받아쓴다는 얘기다.

▲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옵티머스 펀드 금융사기, 책임 방기한 금융당국과 금융사를 규탄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아무도 감시 안 해…대놓고 허위서류 꾸며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50·구속기소)가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한다며 증권사 등의 펀드 가입 권유를 등에 업고 투자자 2900여 명으로부터 1조2000억 원을 끌어 모으는 동안 판매사는 물론 사무수탁사·수탁은행 그 어느 곳도 펀드의 투자처가 부실한지, 실제 투자가 이뤄졌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감독 당국도 뒷짐 지고 있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융위원회는 운용사 투자설명서의 기재 사항이 진실 또는 정확하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그 증권 가치를 보증 또는 승인하지 않는다"며 업무 권한 밖이라고 밝혔다.

아무도 투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사모펀드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김 대표는 투자하지 않았음에도 투자한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 매출 채권을 대범하게 만들어 낸다.

뒤늦게 금감원이 올해 4~5월 옵티머스자산운용에 대한 현장실사를 진행하고 수탁은행인 KEB하나은행으로부터 자산 내역을 확보했지만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우물쭈물 거리면서 이후로도 3회 차가 더 발행됐다. 결국 막을 수 있었던 고객 피해까지 막지 못한 셈이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우리가 확보한 펀드자산명세서는 운용사의 요청에 따라 사무수탁사인 예탁결제원이 사모사채 명을 공공기관 매출채권 명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에 위조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펀드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은행인 하나은행도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95% 이상 투자한다는 펀드제안서와 달리 사모사채만 있는 상황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고, 문제 발생 뒤 당사 요청에도 자산 내역 공개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 지난 7월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열린 옵티머스 펀드 투자 피해자들의 피켓 항의 시위 모습. [정병혁 기자]

규제 개혁한다며…'셀프 설계·운용' 내부통제는 어디로

결국 사모펀드에 대한 허술한 규제 완화가 '화'(禍)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4월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이라며 사모펀드 설립 관련 규제를 대대적으로 풀었다.

일반적으로 펀드 판매사는 운용사와 상품 중개와 관계된 계약을 맺는다. 운용사는 수탁사에 펀드 운용을 지시하고 수탁은행은 이를 이행하면서 펀드 재산 관리 및 운용 행위의 적정성을 감시한다. 사무수탁사는 운용사의 운용 내역을 받아 기준가를 산출하고 펀드자산명세서를 작성하며 동시에 수탁은행의 자산 내역에 대해서도 펀드자산명세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2015년 10월 사모펀드 특례가 시행 된 후 운용사는 자산운용보고서 교부의무가 면제되고 수탁사는 운용사의 운용 행위 감시의무가 면제됐다. 판매사는 운용사에 대해 단순 협의 이외의 모든 협의가 금지되며 운용사의 독단적 운용이 가능한 상황이 됐다.

김종민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 선임연구위원은 "부실·부적격 운용사를 상시 퇴출하도록 감독당국은 적시에 선별·검사할 수 있는 조직과 인원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면서 "사모펀드 운용사나 판매사의 부당·불법행위로 인해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운용사나 판매사에 강한 징벌적 배상의무를 부여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KPI뉴스 / 박일경 기자 ek.par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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