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고성에 시민들 피로감…'맹탕 국감' 여전 올해 국정감사장의 풍경은 예년과 많이 다르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국정감사를 받는 피감기관장과 그들을 보좌하는 공무원, 그리고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로 북적이던 국회 본관 복도는 한산하다.
오는 26일까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화상으로 진행되는 상임위원회도 제법 있었다.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종이 없는 국감'이 시행되기도 했다.
이처럼 새로운 형식이 도입되면 무엇하나. 막말과 고성으로 얼룩진 '구태 국감'은 그대로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책 국감'보다는 '정쟁 국감'을 만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 4년차, 21대 국회 첫 국감으로 기대감이 컸지만, 아직까진 작년에 국감에서 불거진 사립유치원 회계비리와 같은 '한 방'도 보이지 않는다. '구태 국감'이자 '맹탕 국감'이란 오명을 달고 끝날 판이다.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 곳은 법제사법위원회였다. 지난 12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의혹을 두고 여야 의원들은 고성 섞인 설전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3선 중진인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과 초선 김남국 의원이 '반말' 여부를 두고 충돌하면서다. 장 의원이 김 의원을 향해 "끼어든 거 사과 좀 하라고!"라고 지적하자, 김 의원은 "반말하지 마시라고요!"라고 맞받아쳤다. 이 장면을 본 누구는 "초딩들 말싸움 같다"는 촌평을 날렸다.
이와 같은 '구태 국감'의 원인으로 국민의힘 일부 의원 보좌진 사이에서 공유된 '원내대표 요청사항'이라는 제목의 문자메시지, 이른바 '국감 지령'이 꼽힌다. 해당 문자에는 국감 질의는 '문재인 정권 실정 비판'에 집중하고, 의원들이 협심해 집중 질문으로 의혹을 규명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정책 질의는 가능하면 오전, 오후보다는 심야에 할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이를 두고 국감의 본래 취지인 정책 점검은 후순위로 미루고 정쟁을 부추기는 게 제1야당의 역할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 초선 의원은 14일 UPI뉴스에 "국감 지령 사건은 해프닝으로 지나가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지령이 실천됐다"고 귀띔했다. 그는 "야당 의원들이 지령 이후 하나같이 첫 질의에서 '옵티머스'를 거론했다"며 "묘하다. 증거는 없지만 의심은 간다"고 설명했다.
소위 국감은 '야당의 무대'라고 불리지만 특히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기존에 나온 이슈를 반복하는 수준의 질의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민의힘은 절대적인 숫자가 적고, 상임위원장 자리까지 없다. 기본적으로 정책 국감이 제대로 운영되기 힘든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그럼에도 제1야당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정책 국감으로 이끌고 나가야 한다"면서 "원론적으로도 정책 국감이 되는 것이 맞지만, 지금처럼 숫자에서 밀리는 상황에서는 정치적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정책에 올인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야당 주도의 '정책 국감'으로 정부의 실책을 따져 묻는 동시에 대안을 제시해 대안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각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 국감'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 이번 국감에서도 제대로 된 국감이 없지 않았다. 13일 국회 행정안전위 소방청 국정감사는 국회가 원래 취지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행안위 위원들은 이날 정문호 소방청장에게 국회에서 여야가 뜻을 모을 테니 예산을 증액해 부족한 소방장비 등을 구비하라고 주문했다. 예산 부족으로 필요한 장비를 구비하지 못해 돌발상황 시 대비가 늦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더디지만 변화는 시작됐다. 민주당 소속 과방위원은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전했다. "우리 상임위에서 수준 낮은 정치 공방은 없다. 새겨들을 만한 야당 의원들의 정책 질의가 많이 나오고 있고, 국감 자체가 순조롭고 의미있게 진행되고 있다. 역대 가장 졸린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좋은 의미에서."
K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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