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평등한 미래 만들고자 모였다"
"언제까지 당연한 것을 위해 애써야 하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이하 B 교수)가 제자에게 성추행과 갑질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44개 대학 학생회·학생단체가 22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B 교수의 파면을 요구하고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서울대 음대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특위)와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해별을 위한 대학가 공동대응'은 이날 회견에서 "B 교수는 피해 호소인의 숙소에 강제 침입했고 수차례 원치 않는 신체접촉과 사적인 연락을 강요했다. 교수라는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학생에게 행하는 성희롱 및 성추행, 갑질은 근절돼야 한다"고 파면을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피해 호소인은 자신의 신고로 조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교육공동체에서 배제당하는 등 2차 가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학생의 교원징계위원회 참여 보장,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 보장 등 제도 개선 필요성도 제기했다.
특위는 서울대 학내단체와 재학생·졸업생 1049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징계위원회에 전달했다.
도마에 오른 B 교수는 지난해 7월 유럽 학회 출장길에 동행한 대학원생 제자의 방에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등 성추행과 갑질을 해왔다는 의혹으로 서울대 인권센터의 조사를 받았으며 인권센터는 지난 3월 B 교수에게 정직 12개월 이상의 중징계를 내려달라고 대학본부에 요청한 바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단순히 가해 교수 한 사람의 비위나 일탈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지금까지 수많은 알파벳 교수들이 고발돼 왔다는 사실이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피해 사실을 고발한 학생의 앞길이 아니라 학생에게 인권침해와 성폭력을 저지른 교수의 앞길이 막히는 대학을 원한다"고 밝혔다.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해결을 위한 대학가 공동대응' 홍류서연 기획단장은 "대학은 또다시 알파벳 교수를 만들어냈다"면서 "참담한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2019년 권력형 성폭력과 인건비 갈취 등의 가해행위를 저질렀던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A 교수의 파면을 요구하기 위해 바로 이곳에서 2000여 명의 서울대 학생들이 모여 전체학생총회를 열었다"면서 "하지만 서울대 교수들은 그 순간에도 반성은커녕 또 다른 가해를 저질렀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은 2020년이다. 당신들의 행위는 폭력이고, 인권침해이고, 위계를 이용한 범죄라는 것을 모두가 똑똑히 알고 있는 시대가 왔다"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 정도는 감당해야 하지 않겠냐고, 졸업하고 싶지 않냐고, 음악을 그만두고 싶냐는 당신들이 틀렸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난 몇 년간의 미투 운동을 거치면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구호를 수도 없이 외쳤던 기억이 난다"면서 "우리는 안전하고 평등한 미래를 직접 만들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음대 내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 김서정 위원장(서울대 음악대학 학생회장)은 "학생들은 단지 공부하러 온 대학에서 인권침해를 받지 않기를, 갑질을 당하지 않기를, 그리고 그런 가해를 저지른 교수를 학교에서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면서 "언제까지 우리는 당연한 것을 위해 애써야 하냐"고 되물었다.
김 위원장은 "B 교수가 우리 학교에, 우리 음대에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학교에서 그 누구도 B 교수를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귀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학생회장은 "작년 이맘때 저는 성폭력과 갑질을 일삼은 서어서문학과 A 교수를 파면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A 교수의 빈 연구실에 들어가 있었다"면서 "우리는 비록 파면은 아닐지라도 가해자가 학교에서 해임되는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난해 이뤄낸 A 교수 해임이라는 성과는 자신의 위력을 다른 구성원에게 부당하게 행사하는 자는 더 이상 이 서울대에 남아있을 수 없다는 하나의 선언으로 읽혀야 한다"면서 "연구실에 들어갔다 나온 지 1년이 지났는데 이런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또 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교수들을 향해 "본인들의 위치와 그에 수반되는 위력을 객관화해야 하고, 학업 이외의 이유로 학생의 삶을 침범하려는 모든 시도를 멈춰야 한다"고, 학교에는 "사건당사자들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한 뒤에 사건이 처리될 수 있도록 징계위 학생 참여를 이루는 데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국회와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개별 대학의 역량으로 떠넘기지 말고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여야 한다"면서 "3년을 연속해서 줄기차게 말해왔는데 이 정도면 들어줄 때도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윤정 계원예대 부총학생회장은 "(예술대) 학생들이 졸업 이후 주로 교수의 인맥을 통해 현장에 나가게 되거나 진로가 결정되기 때문에 예술 계열 대학에서 교수가 가지는 권력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위 라인을 타기 위해서 교수의 무리한 지시를 군말 없이 수용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인권침해나 성폭력이 일어나도 참을 수밖에 없는 구조는 언제나 학생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전다현 성신여대 총학생회장은 "우리가 아니라 가해교수가 떠나는 대학을, 학계를 만들어낼 것"이라면서 "엄격하고 진정성 있는 처벌을 통해 안전한 대학교를 만들어내는 것이 대학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인천대학교 A 교수 사건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알파벳 가해 교수들이 계속해서 재생산된다는 것은 가해의 원인이 해당 교수들의 개인적인 일탈이나 나쁜 성품 때문만이 아님을 의미한다"면서 "대학 그리고 사회의 위계적인 구조가 가해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끝까지 연대하고 지지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KPI뉴스 / 권라영 기자 ry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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