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부작위 의한 살인 적용 가능성 있어" '살아온 날의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는 언제나 그림자 남아 있고, 결코 아름답지 못한 삶의 방편이라 변명하기엔, 남아 있는 가슴 한곳 양심만은 속일 수 없음이 사람이고 싶음이 아니겠는가' -'삶, 미필적 고의' 장현수의 시(詩)
2020년 6월 1일 오후 7시 25분께 충남 천안 백석동의 한 아파트에서 A(9) 군이 여행용 가방 안에 갇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A 군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4일 오후 6시 30분께 결국 숨졌다.
A 군이 7시간 동안 가로 50㎝·세로 70㎝ 여행용 가방과 이어 그보다 더 작은 가방(가로 44㎝·세로 60㎝ 크기)에 갇힌 이유는 충격적이었다.
계모 B(43) 씨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A 군을 여행용 가방에 가뒀다. 심지어 A 군을 가방에 가둔 뒤 3시간 정도 외출까지 했다.
A 군을 치료한 의료진은 가방 안에서 산소가 부족해 의식을 잃은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 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전분소에서 이뤄진 A 군에 대한 부검에서도 "질식 때문에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구두 소견이 나왔다.
경찰은 매정한 계모 B 씨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했다.
현재까지 수사로는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찰은 B 씨에게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해 10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아동학대치사죄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형, 살인죄는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검찰, 추가 수사로 고의성 입증하면 '살인죄' 가능
경찰은 B 씨가 가방에 갇힌 A 군이 숨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밝힐 수 없어 살인죄를 적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이를 입증할 경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해 기소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현행법은 살인의 고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이 있지 않았더라도 본인의 행위가 타인의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나, 위험을 인지 또는 예상했다면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바로 '미필적 고의'다.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가로 50㎝, 세로 70㎝ 여행용 가방과 이어 그보다 더 작은 가방(가로 44㎝·세로 60㎝ 크기)에 가둔 A 군을 장시간 혼자 두면 숨질 수 있다는 것을 B 씨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는 판단(미필적 고의)을 내릴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면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례로 지난해 6월 2일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태어난 지 7개월 된 아기를 홀로 방치해 사망케 한 부모가 경찰 수사단계에서는 아동유기방임 혐의를 적용했지만,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죄명을 살인으로 변경해 구속 기소한 바 있다.
검찰이 이들 부부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추가 조사에서 부부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엄마 C(19) 씨가 딸을 혼자 방치하고 집에서 나간 뒤 3일쯤 지난 5월29일 '3일 지났으면 죽었겠네. 무서우니까 집에 가서 확인 좀 해줘'라고 남편 D(22) 씨에게 수차례 보낸 문자메시지가 살인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고 판단했다.
경찰 수사단계에서 적용하지 못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부천 초등생 살인사건·세월호 부작위 살인 적용
이번 여행 가방 감금 사망 사건의 경우 미필적 고의 가운데 '부작위에 의한 살인' 적용 여부가 관건이다.
부작위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즉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아 자녀가 숨졌다면 살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2016년 7살 아들을 학대하다 다치자 그대로 방치해 사망케 한 '부천 초등생 살인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인정했다.
범인이었던 부모 최모(36) 씨 부부는 2012년 10월 자신의 집 욕실에서 초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당시 7세)을 때려 실신케 하고 집에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 부부는 아들이 숨지자 대형마트에서 믹서기와 칼, 고글 등의 도구를 구입해 시신을 훼손했으며 사체 일부는 냉장고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공중화장실에 유기했다.
당시 수사당국은 시신이 훼손되면서 피해자의 직접적인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재판부는 이들의 범행을 살인죄로 판단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어라'고 지시하고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 나왔던 이준석 선장에게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됐다.
2015년 11월21일 대법원은 살인 등의 혐의로 이 선장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선장이 300명이 넘는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는 등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봤다.
법조계 "부작위에 의한 살인 적용 가능성 있어"
9살 A 군을 여행가방에 방치해 사망케 한 계모 B 씨도 증거만 확보된다면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대가를 치를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형법에서는 '고의성'을 조금 넓게 해석하는 편이다. 보이는 의도가 없더라도, 행위자가 자기의 행위로 인해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한 상태라면 죄를 물을 수 있다.
재경지법 출신 한 변호사는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정황 증거 등을 찾아 입증할 수 있다면 B 씨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받을 가능성도 있다"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될 텐데 이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모는 당연히 자식이 죽지 않도록 돌봐야 할 책임이 있다"며 "작은 가방에 아이를 가둬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을 보이는 데다가, 심지어 3시간 넘게 외출까지 했다는 점 등에 비춰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B 씨가 아이가 죽기 전에 치료를 하거나 119에 신고하는 등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 했음에도 아이가 사망했다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적용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다만, A 군이 좁은 가방에 갇혀 홀로 방치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KPI뉴스 / 주영민 기자 cy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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