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몰래카메라냐 불법촬영이냐

김지원 / 2020-06-05 14:01:42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특수교육 전공자에게 혼이 났다. 장애는 병이 아니니, '앓는다'는 표현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장애에 대한 낮은 인식이 잘못된 용어로 나왔음을 알았다. 반성했다.

어떤 용어와 표현을 사용하느냐는 중요하다. 기저에 깔린 인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용어를 쓰느냐는 듣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 불법촬영카메라가 있을까 두려워 구멍을 휴지로 막아둔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여자화장실의 한 칸 모습. [김지원 기자]

KBS 건물 화장실에서 카메라가 발견됐다. 혹 카메라가 있을까 빈틈을 휴지로 꽉꽉 채운 여자화장실 칸이 더는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화장실 불법 카메라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KBS 건물 여자화장실에, 그것도 공채 개그맨이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사실에 연일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기사에서 카메라를 지칭하는 표현은 다양했다.

가장 먼저 관련 기사를 썼던 언론사는 계속해서 '몰래카메라'라고 썼다. 몰래카메라, 몰카 영상과 같은 단어를 쓴 몇 개 매체가 눈에 띄었다.

'몰래카메라', '몰카 영상'은 잘못된 용어다. 정부는 2017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에서 몰래카메라라는 용어가 이벤트나 장난 등 유희적 의미를 담고 있기에 불법성을 드러내는 불법촬영이라는 용어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역시 20년간 통용되던 '몰카 범죄' 용어 사용을 공식 중단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유래된 탓에 이벤트 등 유희적 의미가 있고, 범죄의식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게다가 공식 용어도 아니다. 서혜진 더라이트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몰래카메라는 공식용어가 전혀 아니며 법률에서도 불법촬영이라고 명확하게 규정돼있다"며 "이런 표현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보도를 냈고, 몰래카메라라고 쓴 매체 측에서는 "내부에서 정해진 표현이 있어 그에 따라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몰래카메라는 기기고, 불법촬영은 행위이기 때문에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몰래카메라'는 기기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 대상이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단으로 촬영하는 행위 자체도 포함돼 있는 개념이다. 

▲지하철 4호선 상록수역에 지난 2월 붙어있던 구판 부착물. '몰래카메라'라는 용어와 '신고'가 예방이라는 표현이 성인지 감수성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김지원 기자]

여성가족부에서는 2018년 한국 기자협회와 함께 언론에 관련 참고자료를 만들어 배포한 바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해당 자료에 몰래카메라와 몰카는 불법행위의 심각성을 희석하므로 잘못된 표현이니 불법 촬영물이라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더 와닿고 익숙한 표현'이라는 언론의 주장도 있다. 하지만 용어는 '어떤 식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음란물과 성착취물. 불법 성유포물과 리벤지 포르노. 각기 용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정부가 몰래카메라라는 용어를 불법촬영이라고 바꾼 데에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엄격성과 해당 행위가 범죄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겠다는 정책적 판단이 깔렸다.

용어가 단순히 '용어'에 그쳤다면, 굳이 정부, 경찰, 전문가가 나서서 바꾸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거다. 용어는 곧 인식이다. 나날이 심해지는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 인식을 위해서라도, 성범죄와 관련한 용어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KPI뉴스 / 김지원 기자 k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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